“심장이 안 좋으니 조심해. 밀가루가 안 맞으니 가려 먹고. 공부는 수학을 잘하겠구먼.”
이 말을 들으러 점집을 간다면 옛날 사람이다. 요즘에는 ‘사주’ 대신 ‘DNA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다. 오늘날 DNA 유전자 검사는 누구나 살 수 있는 의료상품이며, 일상적으로 받는 건강검진에도 포함됐기 때문이다. 서울성모병원 등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강남하트스캔 같은 건강검진 전문 센터에서도 쉽게 할 수 있다.
일반인이 의료 기관을 거치지 않고 손쉽게 DNA 유전자 검사를 하는‘DTC(Direct To Consumer·소비자 직접 의뢰)’도 인기다. 미국에만 23앤드미, 앤세스트리 등 90여 개 업체가 성업 중이고, 국내에도 동원 GNC의 ‘마이 G 스토리’ 등이 있다. 코트라는 글로벌 유전자 검사 시장이 2019년 64억2400만달러(약 8조1649억원)에서 2024년 117억9080만달러(약 14조9861억원)으로 5년간 두 배 가까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건강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는 옷을 사듯 DTC 검사 키트를 인터넷을 통해 해외에서 구매한다.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간단하게 각국 검사 키트를 구입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도 DNA 유전자 검사 후기를 전하는 영상이 인기. 검사 결과에 따라 다이어트와 건강 관리 계획을 세운다. 강남 학원가에서는 DNA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학습 계획을 세워주는 것도 유행이란다.
올해는 인류가 처음으로 인간 유전체의 전체 염기 서열을 밝혀낸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완료 20주년, 제임스 듀이 왓슨이 DNA 구조가 나선이라는 것을 밝힌 지 7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HGP란, 미국과 영국 등 6국이 공동으로 인간 DNA에 있는 염기쌍을 모두 읽어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프로젝트다. 2003년 4월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우리는 신의 펜촉에서 직접 흘러나온 60억 자의 암호를 읽을 수 있게 됐다. 지금 내 유전자는 어디까지 말해줄 수 있을까. 최근 한국어 홈페이지를 오픈한 홍콩 ‘서클 DNA’로 체험해봤다.
◇ ‘21세기 사주’ DNA 유전자 검사
홍콩 서클 DNA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20만~70만원대 가격의 키트를 판매 중이었다. 제품을 선택하면 집으로 긴 면봉과 뚜껑 달린 시험관, 페덱스 배달 케이스가 온다.
방법은 간단하다. 양치질을 하고 물을 마신 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30분을 보낸다. 배달된 면봉을 입안 깊숙이 넣어 상피 세포를 10번 정도 긁어낸다. 액체가 든 시험관에 이를 넣어 밀봉한 뒤 10번 정도 흔들어 실험실 주소가 찍힌 페덱스 케이스에 넣어 보내면 끝이다. 3주 정도 지나니 이메일로 보고서가 왔다.
먼저, 나의 뿌리. 동아시아인 100%로 나왔다. 이건 뭐, 굳이 검사를 안 해봐도 알 수 있는 팩트다. 미국에서는 DTC 검사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조상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성격은 활발하고 외향적이지만 스릴을 추구할 가능성은 낮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정확히 맞혔다. 식단은 단것을 좋아할 확률이 높고, 알코올 민감도는 높은데, 안면 홍조 반응은 낮다. ‘밥 대신 디저트를 먹는 걸 어떻게 알았지?’ 싶다. 신체는 피부는 희고, 귀 돌출은 작고, 눈동자는 갈색이며, 마른 체형은 아니고, 허리 둘레는 평균일 가능성이 크다. ‘이 회사, 내 상피 세포가 아니라 사진을 들고 간 것 아냐?’
그 다음은 재능. 댄스와 음악에 재능이 없고, 근력도 낮지만, 지구력은 높다. 그나마 교육 성취도와 수학 능력 등이 우수하다고 나왔다. 학창 시절, 예체능이 아닌 이과를 선택한 것은 내 유전자를 스스로 따라간 셈이 됐다.
마지막 가장 떨리는 질병 검사. 40여 개의 암, 100여 개의 유전병 위험 등에서 특별한 이상은 나오지 않았다. 6개의 치매 위험 요인이 모두 없다고 나오자 옆에 있던 부모님이 안심한다. “네 유전자가 내 유전자이니 우리도 괜찮겠지?” 탈모 유전자도 없다고 나오자 남동생도 안심한다. 이제 내가 병에 걸리면 조상 탓이 아닌 내 탓이다.
◇유전자 분석 20주년, 어디까지 왔나
DNA 유전자 검사는 크게 진단과 비진단으로 나눈다. 비진단 검사는 범인을 잡는 법의학 테스트, 친자 확인 검사, 계보 DNA 검사 등이다. 최근 택시기사 살인범 이기영 집에서 나온 DNA를 대조하는 것 등은 미국 드라마 CSI에서도 쉽게 보던 장면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DNA 검사로 친자 여부를 확인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진실토크 머레이쇼’ ‘로렌 레이크의 친자 법원’ 등이 인기다. 2014년 영국 방송사 채널 4는 사망한 유명인의 DNA를 분석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데드 페이머스 DNA’를 방영하기도 했다.
진단 분야는 암과 유전병 분야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 중이다. HGP 초안이 나왔을 때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이제 우리 자식들은 ‘암’이라는 말을 성단(星團)처럼 아득히 먼 존재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암이 정복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싼값에 내 몸에 있는 암 발병 가능성을 편히 알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DNA에 유방암 발병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안 뒤 양쪽 가슴을 절단했다.
그렇다면 소설 ‘멋진 신세계’나 영화 ‘가타카’처럼 인공 수정 과정에서 유전자를 변형해 내가 원하는 아기를 갖는 것은 가능할까? 일단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 2020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를 통해서다. 서정선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석좌교수(마크로젠 회장)는 “미국에서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마음대로 조작은 안 되지만, 유전병 등에 한해서는 승인을 통해 어느 정도의 시술을 허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맹신은 차별로 이어져
유전자 변형을 통해 병을 고치는 유전자 치료는 현재 태동기에 있다. 유전자교정연구센터 김용삼 센터장은 “현재 한국도 치료제가 없거나 시각장애, 근위축증, 혈우병, 백혈병 등 10여 개 질병에 대해서는 유전자 치료가 승인돼 있다”고 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유전자 변형에 대한 규정이 없다. 심지어 유전자 변형 도구를 인터넷 쇼핑몰에서 179달러 정도에 구입해 사용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런 키트를 구입해 유튜브를 보고 직접 개나 자신의 몸에 유전자 변형을 시도하는 사람을 ‘바이오 해커’라고 한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부자연의 선택’은 이런 바이오 해커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유전자가 모든 것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HGP 프로젝트가 끝나고 20년이 지난 지금, 과학자들이 내린 가장 분명한 결론은 “DNA 유전자 서열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는 것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문화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하이네는 저서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전체는 우리 사진과 세상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전망대가 되어준다. 그러나 그 전망대 망원경의 렌즈가 왜곡돼 있다면 우리는 실제와 다른 모습밖에 볼 수 없을 것이다. 유전자에 타고난 신비로운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종차별, 성차별, 우생학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유전자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개인의 능력과 의지를 고려하지 않고 우주비행사 시험에서 탈락시켰던 1997년 영화 ‘가타카’를 현실화시킬 수도 있다. 이에 미국은 2009년 유전적 정보로 고용, 해고, 직업 배치, 승진 등에서 차별하는 걸 금지하는 ‘유전 정보 차별금지법’을 만들었다. 서정선 교수는 “유전자 검사나 치료가 남용되지 않으면서도,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전 세계적인 움직임에 발맞춰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