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6월의 어느 일요일, 서로 얼굴과 이름을 다 알 정도로 작은 웨일스의 한 변두리 마을. 그 마을에 작지만 큰 소동이 벌어졌다. 잉글랜드에서 온 측량사 레지날드 앤슨(휴 그랜트) 일행 때문이다. 정확한 지도를 만들기 위해 마을 뒷산 ‘피넌가루’의 높이를 재야 한다는 것이다. 피넌가루는 웨일스의 첫 번째 산이며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자랑거리다. 그런데 측정을 마치고 돌아온 영국인 측량사들이 내뱉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 “984피트(300미터)에요. 결과는 언덕입니다.”

당시 영국은 1000피트(305미터) 이상의 고도를 가진 지형을 산으로 분류했다. 그러니 웨일스의 첫 번째 산은 갑자기 언덕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을의 정신적 지주 존스 목사는 ‘멘붕’에 빠진 사람들을 불러 런던으로 청원서를 보내자고 한다. 하지만 주점을 운영하는 호색한 모건의 생각은 다르다. “1000피트가 돼야 한다면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요. 언덕을 16피트만 쌓으면 산이 돼요.” 어느새 설득된 마을 사람들은 삼삼오오 삽과 양동이를 들고 피넌가루로 향한다. 크리스토퍼 몬거 감독의 1995년작 <잉글리쉬 맨>의 내용이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야기의 화자 역할을 하는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설명해주는 바에 따르면 이렇다. 웨일스는 현재 잉글랜드와 한 나라가 되어 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웨일스는 늘 함락되지 않는 독립국이었다. 로마, 앵글로색슨, 바이킹, 노르만족을 모두 물리쳤다. 어째서일까? 웨일스 인들이 먼 옛날부터 자랑스럽게 여기던 산 덕분이다. 산은 웨일스의 민족적 자존심의 근거인 셈이다.

게다가 당시는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사지가 멀쩡한 남자라면 전쟁터의 참호로, 혹은 광산의 갱도로 떠밀려가, 폭탄에 맞아 죽거나 석탄에 깔려 죽던 시절이었다. 친밀했던 공동체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니 영국인 측량사가 올라가서 우리의 산을 빼앗고 언덕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 답은 단 하나 뿐. 자동차를 고장 내고 기차가 안 다니는 척 하면서 저 영국인 측량사 일행의 발을 묶어두고, 재빨리 언덕 위에 흙을 쌓아 피넌가루를 명실상부한 산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잉글리쉬 맨>은 실화가 아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바꾸거나 전통을 창조하는 일은 현실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동료 학자 다섯 명과 함께 쓴 책 <만들어진 전통>을 통해 주장한 내용이다. 홉스봄에 따르면, “통상 낡은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전통들(traditions)’은 실상 그 기원을 따져 보면 극히 최근의 것일 따름이며, 종종 발명된 것이다.”

여기서 홉스봄이 말하는 ‘최근’은 언제일까? 유럽의 경우 ‘전통’은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까지 만들어졌다. 이유는 두 가지, 국민국가와 민주주의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이전까지 부족, 가문, 마을 단위로 생각하던 이들을 국가라는 새로운 단위로 포섭했다. 민주주의는 그 국가를 다스릴 지도자를 평범한 이들의 투표로 뽑는 정치 체제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가 단위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홉스봄은 19세기 이탈리아 온건파 정치가인 다젤리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이제 이탈리아 인들을 만들어야 할 차례다.”

이탈리아인의 자부심인 식문화만 해도 그렇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를 요리에 사용한 문헌 기록은 1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지금처럼 널리 먹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남자도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한다. 마치 수백 년 넘게 사랑받은 전통 같지만 그렇지 않다.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통합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갈구하기 전까지 그러한 ‘하이랜더’의 풍속은 오히려 저급하고 꺼림칙한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전통이 그렇다. 실은 ‘만들어진 전통’인 것이다.

설 명절을 하루 앞둔 오늘 독자 여러분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다. 전통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더 잘 가꿔나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매년 설과 추석을 앞두고 언론에 등장하는 ‘올바른 상차림’ 등도 그렇지만, 설날을 정하는 ‘전통 달력’ 역시 그 기원을 따지고 보면 그리 먼 과거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쓰는 음력 자체가 1653년에 시행된 시헌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시헌력은 청나라에 온 예수회 신부 아담 샬이 기존 음력에 서양역법을 적용하여 만들어낸 달력이니 말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음력을 철폐하고 모든 명절을 양력에 맞췄다. 그러나 한일 양국을 비교하자면 일본은 명절을 기존의 형식 그대로 고수하는 편에 가깝고, 우리는 좀 더 유연하다. 가령 요즘 차례나 제사상에서 알록달록하고 단단한 옛날 사탕인 옥춘당(玉春糖)을 보기가 쉽지 않다. 때로는 한국화된 마카롱인 ‘뚱카롱’을 올렸다는 인증샷이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과거에 얽매이고 짓눌려 있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렇지 않다. 우리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이라 한탄하는 대신, 더 좋은 전통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다이내믹 코리아의 ‘진짜 전통’ 아닐까.

<잉글리쉬 맨>으로 돌아가 보자. 앤슨은 월요일에 떠나야만 한다. 피넌가루를 높이려면 거룩한 안식일인 일요일에 삽을 들고 일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의 전통과 교회의 율법이 충돌하는 상황. 존스 목사는 교회에 모인 이들에게 설교한다. “이것은 기도입니다. 흙으로 빚은 기도죠. 흙더미를 쌓을 때 분명히 주께서 저와 함께 하실 겁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오길 바랍니다. 위에서 봅시다.”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진정한 전통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국인은 언덕도 아닌 황무지를 물려받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 손색없는 민주국가라는 높은 산을 쌓아올렸다. 평범한 사람 모두가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적 전통이라면, 아무리 큰 권력을 쥔 사람이라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민주적 전통일 것이다. 설 명절을 맞아 우리가 되새겨보아야 할 ‘진짜’ 전통이다. 우리에게는 그것을 이어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노정태·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