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가장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로 꼽히는 송정제방 뒷골목. 그곳에 흰색과 검정색을 사용한 단순한 인테리어로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가게가 있다. 겉모습만 봐서는 세련된 디자인 쇼룸 같다. 입구 통유리 앞에 적힌 가게 이름은 ‘BONJAK’. ‘본작’이라는 떡집이다.
이국적인 겉모습과 달리 떡 종류는 토속적이다. 완두 배기, 흑임자, 통팥이 들어간 찹쌀떡과 콩고물과 흑임자, 기피고물이 들어간 인절미, 서리태와 밤 등이 들어간 찰떡 등이다. 그러나 그 떡의 담음새가 어느 유럽 백화점에서 파는 디저트 못지않다. 검은색 케이스 안에서 은은한 흰색을 뽐내고 있는 찹쌀떡의 쫀쫀함이 이렇게 아름다울지 몰랐다. 2단 이상 구입하면 검은색 케이스를 흰색 보자기로 한 번 더 감싸준다. 그 매듭이 우아하다.
지난해 이 가게를 연 구본혜(35) 대표는 천안에서 20년 넘게 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떡집 딸’이다. 부모님께 전수받은 오랜 노하우와 F&B 대기업에서 일하며 배운 브랜드마케팅 기술을 접목시켜 ‘본작’을 열었다. 맛의 근본은 지키자는 의미로 이름에 본(本)을 넣었다. 그러다 보니 트렌디한 가게 디자인에 혹해 들어갔다가, 떡 맛에 반해 단골이 된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구 대표는 “부모님의 업을 이어받아 떡 디저트 문화를 젊게 만들고 싶어 성수동에 문을 열게 됐다”며 “그동안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선물떡과 답례 떡으로 특성화시킨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설 명절 연휴, 고향에 내려갈 때 옛 맛을 그리워하시는 할머니·할아버지와, 줄 서서 먹는 트렌디한 디저트를 기다리는 조카들 모두 만족시키고 싶다면 바로 ‘떡’이다. 맛과 포장에서 트렌디해진 떡이 ‘예약 전쟁’, ‘오픈런’을 불러올 만큼 인기가 뜨겁기 때문이다.
임영웅, 나얼, 이종혁, 별...
서울숲 옆 이들 연예인의 단골 떡집으로 유명한 곳은 이름부터 촌스러운 ‘오복떡집’이다. 입구만 봐선 어느 시장 떡집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다르다. 이곳엔 전통적인 떡뿐만 아니라 자체 개발한 트렌디한 떡들이 넘쳐난다.
초콜릿과 티라미슈로 맛을 낸 ‘카카오티라미쑥’, 은은한 얼그레이티와 초콜릿으로 만든 ‘얼그레이 초코라떼떡’,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홍색의 ‘딸기 설기’와 오후에 가면 매진되고 없다는 ‘이티떡’까지 이름만 들어도 궁금한 떡들이 능청스럽게 매대에 올려져 있다.
이곳은 왕십리 대성갈비 맞은편에서 20년 넘게 떡 장사를 하던 이정자(61) 대표와 그 딸인 김민지(35) 대표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22년간 한 자리에서 떡집을 운영하던 이 대표는 갑자기 건물주가 바뀌면서 3년 전 이곳으로 이전하게 됐다. 딸인 김 대표는 “서울숲 상권에서 살아남으려면 트렌디하면서 가게 시그니처가 될 수 있는 메뉴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기존 상권과 온라인 마케팅을 모두 잡을 수 있게 엄마와 협력해 개발했다”고 말했다.
카카오티라미쑥떡은 당뇨 환자가 먹어도 되는 카카오로 현대적인 맛을 주면서 전통의 맛인 쑥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초코맛도, 쑥 맛도 모두 은은하면서 향긋하다. 얼그레이초코라떼떡도 스며 나오는 홍차 향이 매력적이다. 너무 달지 않으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이 존재감을 발휘해 떡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연예인이 좋아하는 트렌디한 떡의 시작은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이북식 인절미집 ‘도수향’이다. 메뉴는 딱 하나 ‘이북식 인절미’. 택배 판매도 하지 않고, 준비된 수량이 다 팔리면 문을 닫아버리는 ‘도도한 떡집’으로도 유명하다. 명절 전이면 예약 전쟁을 뚫고 주문에 성공한 손님들이 떡을 받아 가기 위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떡이지만 만드는 과정엔 정성이 가득하다. 절구로 직접 친 찹쌀떡을 아기 주먹보다 작게 만든 다음 껍질을 제거한 팥고물을 일일이 묻힌 후 하나하나 손으로 꼭 쥐어 만든다. 달지 않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강력한 매니아층을 만들었다.
도수향 강정향(64) 대표는 원래 주부였다. 그는 두 자녀가 조기 유학을 떠나자 적적한 마음에 가장 좋아하는 떡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 도수향이라는 이름은 아들인 도현이와 딸인 수민이에게서 한자씩 따온 것. 메뉴는 이북 출신인 부모님께 배운 이북식 인절미 단 하나다. 원래는 찹쌀떡에 고물을 묻히기만 하면 되지만, 고물이 조금 더 많이 단단히 붙어 있을 수 있게 손으로 한 번 꼭 쥐어 손가락 모양을 낸 것이 이 집의 시그니처가 됐다. 도수향의 인기로 이북식 인절미집이 강남 곳곳에 생겨났을 정도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시루 케이크’는 한겨울에도 줄 서서 먹는 떡 케이크 카페다. 떡을 쌓아 케이크처럼 먹는 건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 집 떡 케이크는 겉으로 봐서는 떡인지 케이크인지 알 수가 없다. 흑임자가 들어간 흑임자 롤케이크, 무스케이크처럼 생긴 블루베리 설기케이크, 프랑스 에끌레어 같은 제주말차 설기 케이크는 그 모양만 봐도 호기심이 든다. 특히 크리스마스에 판매된 초코와 딸기가 올라간 쇼콜라찰설기 케이크와 라즈베리 요거트 흰설기케이크는 입 안에 넣기 전까지는 떡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원래는 인근 떡순이들에게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곳이었으나, 먹방 유튜버 입짧은 햇님의 간택을 받은 후엔 전국구 맛집이 됐다.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에게 맛있으면서도 건강한 간식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떡 케이크를 개발한 김이화 대표는 새로운 떡 디저트를 선보인 공을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