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온가스(CFC)는 1931년 출시될 당시 ‘꿈의 물질’로 각광받았다. 생산 비용이 적고, 냉각 효과가 뛰어난 데다 암모니아·아황산가스 등 다른 냉매와 달리 인체 독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레온 가스는 수십 년 동안 전세계 냉장고·에어컨 냉매, 반도체 세척제 시장을 휩쓸었다. 그러나 1985년 과학자들에 의해 남극 상공의 오존층에 시커먼 구멍이 뚫린 사진이 세상에 처음 공개되면서 프레온가스는 하루 아침에 공공의 적이 됐다. 세계 각국은 바로 움직였다. 프레온가스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대체 물질을 도입해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2016년 북극해에서 녹아내리는 빙하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자 이 같은 퍼포먼스를 했다. /그린피스 스페인

그로부터 40여 년, 인류는 마침내 의미 있는 승전보를 남겼다. 미항공우주국(NASA)과 세계기상기구(WMO)가 이달 초 공동 연구 보고서를 통해 “2040년이면 오존층이 1980년대 구멍이 생기기 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 5년 전인 지난 2018년엔 2060년에야 오존층이 복구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회복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그 시기가 20년 앞당겨졌다. 글로벌 환경 문제에 맞선 전투에서 인류가 국제 공조로 처음 승리를 거둔 사례. 여기에 프레온가스를 감축한 결과 지구 온난화 속도를 늦추는 뜻밖의 ‘전리품’도 손에 넣었다. 사실상 본경기나 다름없는 ‘기후변화’와의 전쟁에 대응할 시간까지 벌어준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인류 생존이 걸린 기후변화 싸움에선 연전연패를 하고 있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27차례 전세계 국가가 참여하는 유엔기후협약총회(COP)가 열렸는데 이때마다 내세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오존층 보호에서 손이 척척 맞았던 나라들이 기후변화라는 회의 탁자에만 앉으면 엇박자만 내는 탓이다.

그사이 지구 기온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상승하고 있고, 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후가 전 지구를 휩쓸고 있다. 이달 초 스위스 알프스는 관측 이래 처음 1월 기온이 20도를 넘는 이상 고온을 보였다. 가족과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고 있는 배우 박진희는 최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개나리가 핀 현지 시내 모습을 배경으로 ‘기후 비상 시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반대로 한국에선 지난 25일 서울 체감 온도가 영하 25도까지 내려가는 한파가 몰아쳤다. 뾰족한 대책 없이 수십 년간 미뤄온 기후변화 문제가 만들어낸 극단적 모습들이다.

최근 개나리가 핀 오스트리아 빈 상황을 알리며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한 배우 박진희. /인스타그램

◇오존층 복구는 일사천리, 기후변화 대응은 지지부진

과거 오존층 문제가 불거지자 세계 각국은 신속하게 대응했다. 프레온가스의 위험성이 처음 공식화된 지 2년만인 1987년 197개 유엔 회원국이 오존층을 파괴하는 1000여 종의 화학물질 생산과 사용 금지를 규제하는 몬트리올 협약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유엔 사상 최대 규모 국제 협약이었다. 오존은 산소 원자(O) 3개가 결합한 기체 분자로 지상에선 유해하지만, 높이 30km 성층권에서는 태양의 강한 자외선을 흡수하는 역할을 한다. 가정·공장에서 방출된 프레온가스가 대기 중 오존 분자를 파괴해 남극 오존층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자 프레온가스 배출을 원천 차단하는 극약 처방에 나선 것. 발 빠른 공동 대응에 힘입어 1980년대 80만톤이었던 프레온가스 소비량은 2020년 기준 100톤 수준으로 감소했다.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던 오존층 회복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은 선진국의 절박함이었다. 오존층이 뚫리면서 유해한 태양 자외선이 가장 많이 쏟아진 지역이 주로 북미와 북유럽 등 극지방에 가까운 국가들이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당시 북미·유럽 백인들의 피부암 발생률은 해마다 4~5%씩 증가했다. 미국, 캐나다, 유럽 국가들은 몬트리올 협약의 성공적 이행을 위해 개발도상국들이 프레온가스를 사용하지 못해 생기는 손실에 대해 매년 수억 달러의 보상금을 지원했고, 대체 물질 연구에도 거액을 쏟아부었다. 1991년 첫 연구 기금 조성 이후 39억달러(약 4조8000억원)를 모금했고, 8600개 연구에 돈을 댔다. 2000년대 들어 중국 등 일부 개도국에서 국제 협약을 깨고 프레온가스를 배출하자 과학 위성을 동원해 추적하기도 했다.

반면 온난화 등 기후변화에는 선진국의 절박함이 없다. 기후변화가 중진국·개도국에 더 큰 타격을 남기기 때문이다. 극심한 가뭄을 겪는 아프리카, 중동이나 홍수에 시달리는 동남아와 달리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온난화 발생 초기에 환경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어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1년간 아프리카·중남미 등 개도국 지역에서 가뭄·폭염·홍수로 인한 사망자가 선진국에 비해 15배 많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탄소 경제’가 온난화에 대한 글로벌 협력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탄소 배출량 세계 2위인 미국은 1997년 상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중국·인도 등 주요 개도국이 미국과 동등한 법적 책임을 지지 않으면 기후 협약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먼 미래의 일인 기후변화보다 당장의 자국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등 전직 미 대통령들은 각각 재임 시절 교토의정서(1997년), 파리기후협약(2015년)에서 탈퇴했다.

이 때문에 결국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선진국이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기후변화 심각성을 대중에 알린 공로로 200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은 최근 다보스포럼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선진국들이)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해야 한다”며 “저소득 국가를 지원하지 않으면 결국 부유한 국가에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출되면 200년 사라지지 않는 CO2

오존층 파괴 물질은 화학 기업들이 100% 공장에서 인공적으로 합성한 물질이다. 전 세계 어느 국가·도시에서 얼마나 생산되는지 훤히 알 수 있어 배출 통제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반면,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메탄 등 종류가 다양하고 산업, 교통 분야 외에도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에 감축량을 통제하기 까다롭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프레온가스를 줄이는 게 동네 편의점 한 곳의 문을 닫는 수준이었다면, 온실가스 감축은 전 세계 편의점 매장 문을 모두 닫아야 하는 것처럼 방대하고 복잡한 일”이라며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에 한 번 배출되면 200년 가량 머무는데 탄소가 이 기간 동안 자연계에서 어떤 형태로 순환하는지에 대해 밝혀진 내용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주요 온실효과 물질인 탄소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하다보니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책도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미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고체화하거나 바다에 녹이는 탄소 포집 기술 개발이 한창이지만 공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1%도 안 돼 효율적인 포집이 어렵고, 모은 탄소보다 포집 설비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맹신도 역효과를 낸다. 문재인 정부 초기 농촌 야산 등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무리하게 늘렸는데 결과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하던 임야를 태양광 발전 부지로 파헤치면서 이산화탄소를 뱉어내는 땅으로 바꿔버렸다.

◇'탄소 중독’ 벗어나려면?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통해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순배출량 제로)을 달성하고, 산업혁명 이후 지구 기온 상승 폭을 1.5도로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지금처럼 각국 정부나 기업에 자율적 참여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목표 달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경제 성장을 위해 탄소 사용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 전문가들은 현재 북미, 유럽 등 일부 지역에 유리하게 정해진 글로벌 탄소 배출량 계산 방식을 바꿔야 지구 차원의 탄소 배출을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만든 자동차를 유럽 소비자가 구매할 경우 현재는 유럽이 아닌 한국의 배출량으로 집계된다. 한국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나온 온실가스라는 이유다. 구조상 유럽에서 한국 차를 많이 타면 탈수록 탄소 배출도 늘어나게 되는 건데 이에 따른 책임을 소비자(유럽)가 아닌 생산자인 한국이 떠안게 되는 것. 정내권 전 유엔 기후변화 대사는 “유럽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철강·조선·자동차 산업을 중국, 한국으로 이전하면서 탄소 배출 책임을 이들 국가에 떠넘긴 것에 불과하다”며 ”결국 석탄 같은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해 탄소 의존도를 낮추거나, 지구 차원의 소비 규모를 줄여 온실 가스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