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건물. 외벽에 파란색 천막이 덮여 있고, 입구에는 ‘안전제일’이라는 표지판이 놓여 있다. 누가 봐도 공사장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부서진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 곳곳에 세워진 철골, 덕지덕지 붙은 테이프. 그런데 묘하게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미국 힙합 가수 아미네의 ‘캐럴라인’과 잘 어울린다. 여기서 크롭티에 넓은 통바지, 일명 Y2K 세기말 패션을 입은 20대 남녀가 앉아 커피와 버터바(버터로 만든 디저트)를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이 앉은 의자는 부도난 사무실에서 막 버린 듯 초라하다. 음료가 담겨 나오는 쟁반도 ‘결재를 바랍니다’란 글씨가 적힌 결재판. 이곳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힙하다고 소문난 ‘에이리아 공구이’다.

#2. 구독자 152만명의 국내 1위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 그의 별명은 ‘폐허 덕후’다. 전 세계 관광객이 몰리는 태국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서 그를 설레게 하는 건 맛있는 태국 음식도, 화려한 쇼핑몰도 아닌 버려진 오래된 빌딩이다. 그는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 경비원에게 따로 비용을 주기도 한다. 이 영상을 본 사람만 108만명. 그뿐 아니라 유튜브에는 ‘폐가 캠핑’ ‘흉가 체험’ 등을 떠나는 이,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하는 이가 넘쳐난다.

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 누구나 편안하고 아늑하고 깨끗한 공간에서 생활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최근 서울 성수동·을지로 등에서 ‘힙하다’는 칭찬을 듣는 카페들의 특징은 ‘허름함’, 인기 있는 여행 콘텐츠의 주제는 ‘고생’이다. 왜 Z세대는 ‘이토록 불편한’ 것들에 끌리는 것일까.

서울 연희동에 있는 공사장 카페 ‘에이리아 공구이’의 외부(왼쪽)와 내부. 인스타그램에서 ‘미래에서 온 카페’라고 불리는 이곳은 부서진 벽과 철근으로 폐허처럼 보이는 게 특징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낡음이 새롭다

유튜브 코미디 채널 ‘킥서비스’의 콘텐츠 ‘2032년 카페’. 영상 속 카페 주인은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일부러 벽에 곰팡이를 만들고, 건물을 부순다. 커피 종류도 요즘 유행하는 ‘더티 플레이팅(더러운 장식)’이다. 갈수록 허름해지는 카페 트렌드에 “2032년에는 진짜 공사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다. 일종의 ‘밈(인터넷 유행)’인 셈이다.

오순석 에이리아 공구이 대표가 공사장 카페를 만든 것도 이 ‘밈’ 때문이었다. 원래 오 대표는 카페를 이렇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 친구들과 연희동에 있는 한 가정집을 사서 카페로 만들기 위해 공사하던 중, 한겨울 추위가 닥치면서 콘크리트가 얼어 작업할 수가 없었다. 그때 이 영상을 보게 됐고, ‘놀면 뭐 하냐’는 심정으로 공사 중이던 공간을 카페로 바꾼 것이다. 오 대표는 “날카로운 모서리는 긁어내고, 콘크리트 위에는 투명 마감재를 발라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며 “석면 검사 수치나 공기 질도 모두 매우 좋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애초에 왜 이런 ‘밈’이 탄생하도록 허름한 카페들이 유행한 것일까. 요즘 세대에게는 ‘낡음이 오히려 새로움’이기 때문이다. 이건후(24)씨는 “청담동에 있는 화려한 인테리어의 카페는 손님들 나이대도 높은 편이고, 어쩐지 격식을 차리고 가야 할 것 같아 불편하다”며 “빈티지를 좋아하는 것처럼 낡은 공간이 더 신선하고 재밌다”고 말했다.

한국의 카페는 원래 다방 문화였다. 편안하게 앉아 대화하던 공간, 그래서 1999년 스타벅스가 국내 진출할 때 가장 신경을 쓴 것도 소파였다. 그러나 요즘 세대에게 카페는 더 이상 다방이 아닌, 호기심을 채우고 사진을 찍고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다.

이런 폐허 인테리어는 미국 브루클린과 독일 베를린에서 먼저 유행했다. 버려진 공장이나 빌딩에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이들은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시간의 흔적은 남겨둔 채 공간을 꾸몄다. 이런 감성이 최근 을지로와 성수동 등에서 유행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는 인테리어 비용도 적게 들고, 인스타 감성의 사진도 잘 나온다. 건축가 양진석은 “시간이 쌓인 것에 대한 존중은 지금 세대의 주요 특징”이라며 “목욕탕을 안경점으로, 주택을 카페로 만드는 등 극적인 용도 변경에서 오는 충격의 기쁨도 있다”고 말했다.

◇폐가가 주는 도파민

<아무튼주말>공사장카페 AREA 092_ 카페어니언-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이런 낡음에 대한 자극은 ‘폐가 투어’로도 이어진다. Z세대가 태어난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은 선진국이다. 이들에게 새것은 오히려 재미가 없다. 이들에게 자극이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아닌 낡고 허름한 폐가다.

특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재미가 없다. 이들에게 편하고 아름다운 장소는 누구나 갈 수 있는 평범한 곳. 그러나 폐가나 흉가는 아무나 갈 수 없으면서도 많은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놀이 공원에서 귀신의 집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를 쾌락·욕망·동기부여·감정·운동 조절 등에 작용하는 뇌의 신경 전달 물질 도파민으로 설명했다. 그는 “기쁘고 아름다운 것을 봐도 도파민이 나오지만, 무섭고 황당하고 두려운 것을 봐도 도파민이 나온다”며 “지금 세대에게는 폐가를 가거나 볼 때 발생하는 도파민이 더욱 강하게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