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국수 줄인가벼? 우리 예산이 국수가 유명하긴 하지.” “시장에 사람 많은 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

지난달 28일, 예산상설시장 중앙골목을 지나던 지역 주민 둘이 ‘선봉국수’를 쳐다보며 놀라운 듯 말을 주고받았다. 국숫집 앞에는 손님 50여 명이 오전 11시 가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섰다. 사정은 ‘신광정육점’ ‘금오바베큐’ ‘시장닭볶음’ ‘시장중국집’ 등 시장 내 다른 식당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식당에서 구입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원형 스테인리스 테이블 50개를 배치한 ‘장옥 마당’은 먹는 이들과 자리 나길 기다리는 이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활기는 시장 밖으로도 흘러넘쳤다. 시장 앞뒤 주차장은 전국에서 몰려온 가족·연인·친구 단위 손님들이 타고 온 자동차로 가득했다. 호떡·핫도그·어묵·순대 등을 파는 노점상은 그야말로 ‘호떡집에 불난 듯이’ 바빴다. 노점상 주인은 “오늘은 역전에 오일장이 서는 날인데, 거기 안 가고 여기 왔다”며 신나게 호떡을 뒤집고 순대를 썰었다.

◇지역시장 살리기 프로젝트 1호

전국 수많은 골목식당을 살려내던 ‘백종원 마법’이 방송 밖에서도 통한 걸까. 충남 예산군에 따르면,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달 9일 ‘지역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10만명이 예산시장을 찾았다. 하루 평균 3300여 명으로, 예산군은 “최근 하루 방문객이 5000명까지 늘었다”고 했다. 프로젝트 시작 전 하루 20~30명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최대 250배로 늘어난 셈. 예산시장 상인회는 “설 연휴에는 2만명이 시장을 찾았고, 방문자 90%가 외지인으로 자동차가 하루 400~500대씩 밀려들어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였다”며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예산시장은 1981년 개설한 상설시장이다. 예산오일장과 함께 2000년대 초까지 번성했지만 지금은 110개였던 점포가 50여 개로 쪼그라들었을 만큼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다. 백 대표는 2017년 자신의 이름을 딴 국밥거리를 조성할 때부터 예산시장 활성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시장 건물을 허물고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려는 군(郡)을 설득해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하자고 제안했다. 시장 일부 시설을 개선하고 공실로 방치됐던 상가 5개를 사들여 뜯어고친 뒤 입점시킨 새로운 업장 5곳이 지난달 9일 오픈했다. 매장은 백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예덕학원 수익용 재산으로 매입했다. 백 대표는 “‘골목식당’ 방송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손님이 몰리니까 건물 임대 비용이 턱없이 올라 나중엔 음식 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예산시장에 새로 들어선 ‘선봉국수’의 진한멸치국수(왼쪽)와 파기름비빔국수./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신광정육점’은 돼지 특수 부위인 도래창(횡격막)과 뒷고기, 삼겹살을 판다. '불판 빌려주는 집’에서 불판을 빌리고 쌈야채, 주류 등을 사다가 장옥 마당에서 구워 먹는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새로 문 연 가게 다섯 곳은 더본코리아에 월세를 내고 입점한 형태다. ‘금오바베큐’는 예산 사과로 만든 소스를 바른 닭 바비큐 전문점이다. ‘신광정육점’은 돼지 특수 부위인 도래창(횡격막)과 뒷고기, 삼겹살을 판다. ‘선봉국수’는 멸치 기름으로 진한 맛을 낸 멸치국수와 쪽파로 만든 파기름·양념장에 비벼 먹는 비빔국수를, ‘시장닭볶음탕’은 꽈리고추를 넣어 차별화한 닭볶음탕을 내세웠다. ‘불판 빌려주는 집’은 불판을 빌려주고 쌈야채와 주류, 음료 등을 판다. 메뉴 개발, 인테리어 공사를 모두 더본코리아에서 맡았다.

기존에 장사하던 가게 6곳은 리모델링을 도왔다. 건어물을 팔던 ‘대흥상회’는 먹태와 쥐포를 안주로 팔아 부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구이 시설을 설치해줬다. ‘예터칼국수’는 ‘마라 칼국수’, ‘고려떡집’은 다진 고기를 넣은 ‘고기떡’이라는 새 메뉴를 더본코리아 도움을 받아 추가했다. 앞으로 튀김, 꽈배기, 피자, 전 등을 하는 점포 5곳이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분위기는 근대적, 시설은 현대적

시장 내 식당에서 구입한 음식은 ‘장옥 마당’에서 먹을 수 있다. 가족과 주말 나들이 삼아 서울에서 왔다는 김지수(41)씨는 “전통시장 테마 푸드코트에 온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점포(장옥)들을 예산군이 매입해 탁 트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50㎝ 높이 스테인리스 테이블 50개와 의자를 뒀다. 상인회에서 고용한 직원 8명이 식사를 마친 테이블을 바로바로 정리해준다. 기존 전통시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편리함이다.

백 대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예산시장 활성화의 콘셉트를 “분위기는 근현대적으로, 디테일은 초현대적으로”라고 설명했다. 예스러운 분위기는 고스란히 살렸다. 낡고 오래된 간판은 버리지 않고 떼뒀다가 가게 내부 시설 수리를 마친 뒤 다시 달았다. 중앙골목에는 기존에 없던 함석판 지붕을 덧붙였다. 골목 상단에 삼각형 모양의 목조 처마를 만들고 함석판을 씌웠다. 함석판은 일부러 부식시켜 오래된 느낌을 냈다. “어두컴컴하면 장사 안 된다”며 반대하는 상인들을 설득해 통로 위를 검은 천으로 덮고 노란 전구 조명을 달아 아늑한 분위기를 냈다.

‘고려떡집’은 백종원씨의 도움을 받아 고기 소를 넣은 신 메뉴 ‘고기떡’을 개발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초현대적인 디테일’로는 시장 곳곳 설치된 LED 패널을 꼽을 수 있다. 장옥 마당 지붕 아래 대형 LED 패널을 설치했고, 중앙골목 등 시장 통로 기둥 곳곳에 LED 패널을 매달았다. 패널을 통해 ‘새로운 맛의 탄생, 고기떡!’ ‘골목식당에 나온 그 유명한 막걸리’ ‘시장닭볶음 꽈리고추닭볶음’ ‘당신만 모르는 맛! 도래창 구이!’ 등 식당 메뉴, 위치 등 정보를 제공한다.

화장실은 기존 전통시장과 비교해 월등하게 깨끗하고 편리했다. 백 대표는 “요즘 사람들은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가지 않는다”며 공용이던 화장실을 남녀로 구분하고 비데를 설치했다. 연세대 미래교육원 미식문화 최고위 과정 명욱 교육원장은 “깨끗한 화장실과 넓은 주차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예산시장이 반짝 인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도 화장실이나 주차장 등 요즘 방문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국 전통시장 프랜차이즈화 우려도

전국에서 찾아온 방문객들은 백 대표가 탈바꿈시킨 예산시장이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다. 대전에서 왔다는 20대 커플은 “골목식당 방송을 현실에서 체험하는 듯한 기분”이라며 “음식 맛도 괜찮고 크게 비싸지 않은 듯하다”고 했다. 반면 천안에서 온 40대 주부는 “먹는 것 말고는 볼거리나 즐길거리, 살거리가 딱히 없어서 단조롭다”며 “궁금해서 와봤지만 재방문할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명욱 원장은 “차로 30분 거리인 수덕사나 사과 증류주 ‘추사’로 유명한 예산사과와인, ‘백련막걸리’로 이름 난 충남 당진 신평양조장 등 주변 명소와 연결된다면 인구 소멸 위기에 몰린 지방 소도시 살리기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전국의 모든 전통시장이 천편일률적으로 ‘백종원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백 대표도 “지역 발전을 위한 사회 공헌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이것 자체가 앞으로의 사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지방의 세금을 경험이 있는 기업에서 잘 쓸 수 있게 컨설팅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잇따라 예산시장을 찾고 있다. 외식 창업 컨설턴트 A씨는 “지자체들은 무엇이든 한 곳에서 성공했다고 하면 똑같이 해달라고 요구한다”며 “지역이 가진 고유의 역사와 특성을 살려서 다른 곳과 차별화된 전통시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프랜차이즈 식당처럼 전통시장도 프랜차이즈화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