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광화문의 한 치킨집. 그런데 매장 한가운데 뷔페가 차려져 있다. 쌈 채소, 보쌈, 국, 배추 겉절이, 봄동 나물, 깻잎장아찌, 순대 볶음 등 각종 반찬이 수북하다. 식당은 10분이 채 되지 않아 꽉 찼다. 인근 회사원들, 건물 청소를 한다는 중년 여성 8명, 택시 기사까지 손님이 다양했다.
치킨집에 뷔페 손님들이 찾아오는 건 8000원에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치킨집으로 저녁 장사만 하던 이곳에서 장석경(56)씨가 점심 뷔페를 시작한 건 지난해 1월. 장기화한 코로나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져 시작한 점심 장사였는데, 최근 외식 물가가 치솟으면서 값싼 뷔페를 찾는 직장인이 크게 늘었다. 회사원 서모(35)씨는 “직장에서 지원해주는 한 끼 식대가 8000원인데, 요즘 물가로는 김밥천국 같은 분식집 아니면 선택할 곳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며 “8000원 뷔페가 생겨 반가웠다”고 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연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2022년 소비자물가 지수는 107.71(2020년=100)로 2021년에 비해 5.1% 올랐다. 이는 외환 위기 때인 1998년(7.5%) 이후 2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한 것이다. 가팔라져만 가는 고물가 시대, 시민들은 어떻게 살아내고 있을까.
◇중·장년층 가득한 고시촌 식당
6000~6500원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신림동·노량진 고시촌 한식 뷔페는 요즘 중·장년층이 몰려 성황이다. 고기 반찬, 국, 채소는 물론 후식으로 식혜나 주스도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신림동 고시촌의 한 식당을 찾았을 때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작업복을 입은 사람, 수리 기사 조끼를 입은 중·장년 남성 10여 명이 식사하고 있었다. 6년간 이곳에서 장사한 주인은 “이제 고시 식당이 아니라 일반 식당”이라며 “인근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이 주 고객이 됐다”고 했다.
노량진 고시촌도 마찬가지. 장승배기역에서 자영업을 하는 박모(47)씨는 10장짜리 식권을 끊어 사흘에 한 번꼴로 노량진까지 걸어와 점심을 먹는다. 편의점 말고는 6000원에 한 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곳이 없는 탓이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김모(65)씨도 30분 정도 무료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에 와 점심을 해결한다. “기초연금을 받고 있지만, 나보다 형편 안 좋은 사람이 많고, 내 돈 내고 한 끼 떳떳이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며 “동년배도 보여 일주일에 세 번은 오게 된다”고 했다.
◇무료 급식소 찾는 청년들도
구내식당도 인기다. 한 대형 급식 업체에 따르면 지난해 본격적으로 물가가 오르기 이전 시점인 1분기와 비교했을 때 4분기 매출이 15.5% 늘었다. 특히 서울 강남·여의도 등 회사 건물이 밀집해 있고 물가도 높은 지역의 매출은 같은 기간 39.35%나 올랐다. 다른 회사 구내식당으로 원정 가는 직장인들도 있다. 온라인 홈페이지 ‘밥풀닷컴’에서는 서울의 구별 식당 목록을 올려놓고 매주 식단을 공유한다. 가격은 5000~7000원 선이다. 양재역의 캠코양재타워와, 영등포 전경련회관 구내식당 이용 후기가 가장 많다. ‘강남에서 이 가격? 못 참는다 봐야지’ ‘제육이나 불고기 같은 걸 감히 자유롭게 퍼 갈 수 있다니, 이 가격에 이 퀄리티면 많이 먹어줄 수밖에’라는 호평부터 ‘식단만 제때 올려주셔도 직장인들한텐 선택에 큰 도움이 될 텐데’라는 아쉬움 담긴 반응까지 두루 나온다.
노인들의 무료 급식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탑골공원에 20·30세대가 쭈뼛거리며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종로구의 무료 급식소 사회복지원각에서 8년 넘게 총무 업무를 본 강소윤(56)씨는 “새해 들어서 사흘에 한 번꼴로 누구든지 밥을 먹을 수 있냐고 묻는 청년들의 전화가 온다”고 했다. 실제로 무료로 밥을 먹으려고 찾아온 청년도 있었다. 강씨는 “지난주 금요일엔 만화를 그린다고 밝힌 한 20대 청년이 알바도 못 구하고, 식비도 너무 올라서 끼니를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나 같은 사람도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있냐고 묻더라”고 했다. 결국 청년에겐 하루 급식소 자원봉사를 시키고 밥을 먹인 뒤 후원 물품으로 들어오는 간식 등을 넉넉히 챙겨 보냈다. 검은색 롱패딩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덮어쓴 채 황급히 밥을 먹고 급식소를 빠져나가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강씨는 “밥 먹으러 나온 게 큰 용기이고, 배고픈데 젊고 늙고가 있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