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피지컬100′의 한 장면. 참가자들이 100kg짜리 공을 굴리며 언덕을 오르고 있다. /넷플릭스

“레슬링 무섭다, 진짜 무서워.” “레슬링 절대 못 이겨요.”

최근 비영어권 TV 부문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 3회.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 장은실이 특전사 출신 깡미를 가볍게 제압하자, 다른 참가자들이 이렇게 속닥거린다. 같은 경기에서 전직 국가대표였던 20년 경력의 레슬링 선수 남경진은 190㎝에 112㎏의 몸무게인 교도관 박정호를 손쉽게 뒤집어 버린다.

지난달 24일 처음 공개된 ‘피지컬 100′은 최강 피지컬(physical)이라 자부하는 100인이 최후의 1인을 가려내기 위해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 예능이다. 스켈레톤, 이종격투기, 복싱, 씨름 등 스포츠 선수들은 물론이고 산악구조요원이나 교도관, 보디빌더처럼 몸을 쓰는 데 특화된 100인이 출연해, ‘3분 동안 모래사장에서 상대로부터 공 지키기’ ‘다리를 만들어 반대편까지 모래 옮기기’ 등의 경기를 통해 승부를 가린다. 국적, 인종은 물론 성별과 체급도 가리지 않는다.

최근 이 예능이 인기를 얻으면서, 레슬링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다는 시청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두 명의 선수가 맨몸으로 붙어 힘을 겨루는 ‘레슬링’은 과거 올림픽에서 메달밭 역할을 하며 사랑받았지만, 최근엔 출전한 선수 이름을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잊힌 종목이 됐다. 그랬던 레슬링이 이 예능을 통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몸 쓰는 일이라면 지지않는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강한 종목으로 인정받는 데다, 경기장에서 유일한 여자 팀장인 장은실 선수가 ‘언더독(약자)’의 반란을 일으키면서다.

◇결국 맨몸 운동이 강하다

방송 초반만 해도 관심은 보디빌더 등 화려한 근육의 소유자들에게 쏠렸다. 경기를 진행할수록 달라졌다. 맨몸 운동을 통해 실전압축근육(내장형 근육)을 기른 참가자들이 지구력이나 순발력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시작했다. 레슬링이 대표적이다.

KBS배 전국 레슬링 대회에서 2위를 차지한 김영준 골드 레슬링 체육관 관장은 “레슬링은 소위 겉 근육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속 근육을 기르는 훈련을 하기 때문에 실제 경기를 해보면 보기보다 훨씬 강하다”며 “평소 단순히 기구를 들고 놓고 하면서 근육을 기르는 게 아니라, 밧줄 타기나 자기 체급과 비슷한 무게를 들고 뛰는 등의 맨몸 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근육의 가동 범위 자체가 다르고, 훨씬 날렵하다”고 했다.

실제 레슬링 선수들은 자신의 체급과 같은 사람을 메거나 어깨에 앉힌 다음 400m를 뛰거나, 계단을 오르는 ‘지옥 훈련’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루지 국가대표로 ‘피지컬100′에 참가한 박진용이 “태릉에서도 레슬링이 제일 무서웠다”고 할 정도다.

‘레슬링 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성호 전 레슬링 국가대표 선수는 “레슬링의 기본은 상대방을 넘어뜨려서 제압하는 것”이라며 “비슷한 스포츠로 유도나 주짓수가 있지만, 아무래도 두 스포츠는 도복을 입고 하는 경기라 옷이 없으면 당황하게 된다. 레슬링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몸 대 몸으로 하는 원초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맨몸으로 하는 싸움에선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했다.

실제 종합격투기 선수 중엔 레슬링을 배우거나, 레슬링을 하다 종합격투기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상대를 넘어뜨려 위에서 누르고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래에 깔린 사람보다 체력 소모가 덜해, 결국 이길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UFC284에서 랭킹 1위에 오른 마카체프 선수도 레슬링을 했다.

◇장은실처럼 되고 싶다

‘피지컬 100′에서 여자 참가자 중 유일하게 팀장을 맡은 장은실 선수의 인기도 레슬링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장 선수는 지난해 전국체전에서 여자일반부 레슬링 62kg급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방송에선 신체 조건상 열세인 팀을 승리로 이끌며 화제를 모았다. 남자들과 동등한 자리에서 대결하기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 참가자가 나동그라지는 상황에서도 팔팔하게 뛰어다닌다. 장은실의 인스타그램은 최근 팔로어가 24만명까지 늘었고, 전 세계 팬들이 각자의 언어로 쓴 ‘롤모델이다’ ‘진정한 승리자다’와 같은 댓글이 1000여 개 달려있다. 직장인 손모(34)씨는 “지금까지 요가나 필라테스 등 정적인 운동을 주로 해왔는데, 장은실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레슬링에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체험 수업을 받아 볼 생각”이라고 했다.

여자 레슬링 선수 장은실이 자신과 비슷한 체급의 남자 선수를 어깨에 메고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유튜브

실제 레슬링은 생활 체육으로 배워도 좋은 운동이다. 김영준 관장은 “레슬링을 위험한 운동이라고 오해를 많이 하는데,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안전하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며 “레슬링은 자세를 잡는 것만으로도 전신 운동이 되고, 직장인 회원들의 경우 야근이나 회식을 해도 지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성호 선수 역시 “피지컬100을 보고 하루 5~6통씩 체육관에 문의 전화가 오고 있는데, 그중엔 여성분도 많다”며 “레슬링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