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포장기를 샀다. 마늘 한 근을 사면 반 정도 먹을 때쯤 나머지가 시들시들해지고 결국 10%가량은 곰팡이가 피어 버리게 된다. 진공 포장을 해놓으면 다 먹을 때까지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 먹다 남은 과자를 밀봉하는 기능도 있어 눅눅해지는 걸 막아준다. 진공 포장기는 무엇보다 커피 원두를 소분해서 보관하는 데 최적의 수단이었다. 커피를 200g 단위로 사면 다 먹을 때까지 풍미가 유지되지만 1kg 단위로 사는 것보다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다. 200g씩 진공 포장해 보관하면 바닥날 때까지 갓 볶은 것 같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진공 포장기는 몇 만원짜리부터 몇 백만원짜리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비싼 것은 덩치가 큰 것으로 보아 식품 공장 같은 데서 쓰는 것 같았다. 가정용으로 분류되는 것도 비싼 것은 30만원 가까이 됐고 5만원 안팎짜리도 있었다. 진공만 되면 그만이지, 하며 싼 축에 끼는 것으로 장만했다. 진공 포장용 비닐이 따로 있어서 이것도 기계는 싸게 팔고 비닐을 비싸게 파는 장사인 모양이다 했다.

싼 게 비지떡이었다. 진공 포장을 해놓고 며칠 지나니까 공기가 비닐 안으로 새어 들어가 펑퍼짐해졌다. 기계를 잘못 조작했나 싶어 사용법을 읽고 다시 포장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진공 포장을 하면 커피 알갱이가 서로 바짝 달라붙어 옴짝달싹하지 않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흐물흐물해졌다. 혹시 불량품인가 싶어 인터넷에서 사용 후기를 검색해 봤다. 5만원 안팎 저가 기계를 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경험인 것 같았다. 중고 시장에 내다 팔고 좋은 걸로 다시 살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저 정도만 포장이 유지돼도 그냥 지퍼백에 넣어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진공 포장기 사용 후기를 검색하다가 ‘빨대 진공’이란 방법을 알게 됐다. 지퍼백에 남은 식재료를 넣고 빨대가 들어갈 공간만 남겨둔 채 지퍼백을 잠근다. 빨대로 봉지 안에 남은 공기를 힘껏 빨아들여 빼낸 뒤 재빨리 지퍼를 닫는다.

커피 원두를 지퍼백에 넣고 이 방법대로 해봤더니 내가 산 기계로 포장한 정도의 진공 상태가 됐다. 다만 빨대를 세차게 빠느라 혈압이 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폐활량에 자신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5만원대 진공 포장기를 사느니 다이소에 가서 빨대 100개 들이 한 봉지를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주부들은 대단한 사람들이다. 30만원짜리 진공 포장기는 부담스럽고 5만원짜리는 미덥지 않으니 빨대로 진공 포장을 한다. 살림은 생활의 어떤 영역보다 창의력이 필요한 분야임을 새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