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앙 119 구조견 센터 내부에 있는 ‘건물 붕괴 훈련장’에서 훈련견 ‘나이스’가 철문 뒤에 숨어 있던 훈련관을 발견하고 짖고 있다./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를 이곳저곳 밟고 누비던 두 살배기 셰퍼드 ‘나이스’가 뚝 멈춰 섰다. 철문이 굳게 닫힌 곳에서다. 문을 빤히 쳐다보더니 연신 짖어댔다. 문을 열자 숨어있던 박형진 훈련관이 얼굴을 빼꼼 드러내며 말했다. “옳지, 잘했어!” 나이스가 기쁜 듯 훈련관에게 몸을 연신 비볐다.

붕괴 사고가 막 발생한 듯한 풍경의 이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소방청 중앙119 구조본부에 있는 인명구조견센터 ‘건물붕괴 훈련장’이다. 지진이나 붕괴 사고가 났을 때의 잔해, 파편 등 지형지물을 구현해놓은 공간에서 구조견들을 훈련시킨다. 박형진 훈련관은 “재난 상황을 재현한 공간에서, 사람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짖어 위치를 알리는 훈련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중앙119구조본부에서 훈련받은 ‘토백’ ‘티나’ ‘토리’ ‘해태’ 4총사는 튀르키예 남동부 하타이주 안타키아 일대에 파견된 한국의 해외긴급구호대(KDRT)에 합류해 8명의 생명을 구하고 지난 18일 귀국했다. 그중 토백이는 수색 과정 중 유리 파편 등에 앞발을 다쳤는데도 붕대를 매고 생존자를 구조하는 ‘투혼’을 보여 뭉클한 감동을 줬다.

구조견은 사람보다 50배 이상 뛰어난 청각과 최소 1만 배 이상 발달한 후각을 활용해 재난 현장에서 생존자를 신속하게 탐색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수색 대원 30명 이상의 몫을 너끈히 해낸다. 이토록 중책을 담당하는 ‘네발 달린 구조대원’들은 어떤 훈련을 거칠까. 지금까지 71마리의 구조견을 길러낸 중앙119 구조견 교육대에 다녀왔다.

장애물 훈련 과정에서 A자 판벽을 지나는 모습./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공인인증시험까지... 지덕체를 평가한다

개[犬]라고 해서 모두 구조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생명을 구하는 막중한 임무인 만큼 선발과정에서 지덕체(智德體)를 모두 평가한다. ‘훈련견 후보군’ 선발 과정부터 2년간의 교육과정, ‘인명구조견 공인인증평가’까지 오랜 훈련과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구조견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한국에서 주로 운용되는 구조견의 품종은 독일산 셰퍼드, 래브라도 리트리버, 벨지움 마리노이즈, 보더콜리,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 등 다섯 종(種)이다. 사람과의 친화성, 체력, 성품이 좋은 개체다. 요즘 중앙 교육대엔 18마리의 훈련견이 미래의 구조견이 되기 위해 매일 교육을 받고 있다.

훈련견으로 선발되면 2년간의 양성 과정에 돌입한다. 교육과정에서는 훈련관이 앉거나 엎드리라고 하는 명령에 따르는 복종 훈련, 흔들다리·허들·시소 등을 지나는 장애물 훈련을 거친다. 사람과의 친화력을 기르는 것도 구조견의 필수 덕목. 이 과정에서 다양한 후각 데이터를 학습한다. 이민균 훈련관은 “개의 후각은 아직 그 어떤 현대의 첨단 장비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개들은 마치 냄새를 바코드처럼 인식해서, 여성·남성·노인·아동마다 세세한 체취를 구분한다. 각양각색 사람들을 접하고 체취를 익히는 것도 훈련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기본기를 단단히 다지면 심화 과정으로 들어간다. 구조견센터엔 화재 현장을 본뜬 곳, 가정집이 붕괴한 현장 등 실전과 비슷한 학습장이 있다. 어둡고 컴컴한 공간에 벽돌 더미와 뒤집힌 소파, 의자 등 가구 잔해도 놓여있다. 흡사 미로와 같은 이 공간을 헤치고 사람이 있는 곳을 발견하면 컹컹 짖도록 학습 받는다. 구조견센터 바로 옆에 있는 야산에선 산악 수색 훈련을 하고, 1km쯤 떨어진 낙동강 변에선 수난 사고에 대비한 인명 구조를 실습한다.

2년의 교육이 끝나도 안심은 금물. 마지막 관문인 인증평가가 남았다. 혹독한 교육과정을 밟았지만 10마리 중 2마리꼴로 탈락한다. 소방청 내·외부 유관기관 등 전문 평가위원을 위촉해 평가를 진행한다. 합격하기 위해선 산악·재난 수색 능력과 종합 전술을 평가해 분야별 70% 이상 점수를 취득해야 한다. 마침내 구조견이 된 이들은 ‘핸들러(구조견 운용자)’와 1대1로 짝지어 각종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구름다리를 이동하는 훈련 과정.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삼풍 붕괴 계기로 등장, 튀르키예까지 달려가

한국 최초로 구조견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민간 구조견센터에서 사회공헌 차원으로 인명구조견 2마리를 강원소방본부 원주소방서에 기증하면서부터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계기였다. 당시 특수재난사고를 대비해 중앙 119 구조대를 창설하면서 인명 수색을 위한 구조견 도입이 논의됐다. 이후 2010년엔 소방청 차원에서 ‘인명구조견 관리운용 규정’을 도입하며 본격적으로 구조견 양성 사업과 교육 체계가 정비됐다.

현재 전국에 구조견 35마리가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1998년 이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구조견들은 총 8015회 출동해 554명(생존 234명, 사망 320명)을 구조했다. 평상시엔 산악 사고, 실종 사고 등에 투입되고, 작년 1월 발생한 광주광역시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 현장에도 투입된다. 당시 영남119 특수구조대 소속으로 파견된 구조견 ‘소백이’가 매몰자 6명 중 4명을 찾아냈다.

급기야 튀르키예·시리아 재난 현장엔 ‘구조견 4총사’가 파견됐다. 붕대 투혼을 보인 6년 견생(犬生) 토백이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37회나 현장에 출동한 베테랑. 2020년 인명구조견경진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듬해 소방청장배 경진대회에서도 최우수 성적을 거둬 ‘톱도그(Top dog)’로 꼽혔다.

튀르키예 베이스캠프에서 토백이가 핸들러 김철현씨에게 안긴 모습. /김철현씨 제공

◇구조견에게 신발 안 신기는 이유?

유독 토백이가 조명을 받은 것은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서 붕대를 감고 활동한 모습 때문이었다. 콘크리트와 유리 파편이 뒹구는 현장에서 날카로운 물체를 밟아 다친 것이다. 토백이 소식에 ‘왜 신발 등 보호 장비를 착용시키지 않았느냐’는 질책 섞인 댓글이 이어졌다. 이민균 훈련관은 “개에게 발바닥은 또 하나의 감각기관”이라며 “신발을 신길 경우, 균형 감각이 없어져 붕괴 현장에서 추락하는 등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생사의 기로를 넘나드는 현장에서 함께하는 구조견을 두고 구조대원들은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라고 했다. 2019년부터 토백이와 수색 작업을 같이 해온 핸들러 김철현씨는 산악 구조 현장은 물론 최근 지진이 발생한 튀르키예까지 위험천만한 현장을 늘 함께했다. 귀국 후 건강검진을 마치고 앞발의 붕대를 푼 토백이는 유독 김씨를 따랐다. 김씨는 “사랑과 칭찬은 구조견을 훈련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라고 했다.

“토백이는 수색 준비를 하면 눈빛부터 달라져요. 훈련할 때 너무 재밌어하고, 1분 안에 목표물을 찾아내는 경우도 있죠. 말은 못 하지만 토백이와 저는 현장에서 어디를 수색해야 할지 교감하면서 구조 작업을 진행합니다. 제가 의지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