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편의점은 오피스 빌딩 안에 있어 손님 대부분이 같은 건물의 직장인이다.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쯤 될까? 편의점 업계에서는 약간 높은 고객 연령대. 그런 가운데 평균을 확 낮춰주는 귀한 손님들이 계시니 건물 5층에 있는 어린이집 꼬마 손님들이고, 또 그런 가운데 평균의 균형점(?)을 찾아주는 손님들이 계시니 꼬마 손님을 모시러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사내 어린이집이라 대체로 부모가 퇴근하면서 아이들을 데려가지만, 부모가 모두 야근하거나 여러 사정으로 조부모가 데리러 오는 경우 또한 많다.
한편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데 꼭 자신이 손주들을 데리러 오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신다. “이것도 운동이라 생각하면서 내가 하겠다고 나선 거야. 이쁜 손주를 빨리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예준이 할머니 말씀이다. “아이들 직장도 볼 겸해서 오는 거지. 집에 가는 길에 가족 외식을 하기도 해.” 딸과 사위가 같은 회사에 다니는 하윤이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이것 사달라 저것 사달라 졸라대는 하윤이 때문에 언제나 난처하다고 말하지만, 그 표정이 어째 달콤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계속 오시던 분이 갑자기 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윤이 엄마에게 조심히 묻는다. “하윤이 할아버지는…?” 요새 몸이 좀 편찮으시다거나 따로 분가하셨다는 대답을 들으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보다 더한 말을 들을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언젠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할아버지 손님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여쭸더니 “왜? 못 본 사이에 황천길이라도 갔을까 봐?”라고 말씀하셔서 껄껄 웃었던 적이 있다. “저세상 가는 티켓은 아직 대기 번호가 남았으니까 걱정 말어.” 건강을 자랑하는 모양으로 팔뚝을 들어 보여주셨다.
손님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때가 있다. 한가한 오후 시간에 편의점 계산대 안에 앉아 있으면, 내심 좀 얄미웠던 손님이라도 ‘요새 그분은 뭐 할까?’ 하며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늘 동료와 짝지어 편의점에 들르던 손님이 한참 뜸하기에 같이 오던 다른 손님에게 물으니 “그 친구요? 회사 그만뒀어요”라고 진상을 파악하기도 하고, 우리 가게에 발길을 끊은 손님이 다른 편의점에 있는 모습을 보고 그윽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아무튼 별일 없어 보이니 참 다행입니다”라고 악수라도 청하고 싶다.
며칠 전엔 계절이 서너 번 바뀌도록 행방불명이었던 손님이 다시 나타났다. 반갑기도 했지만 외모가 너무 달라져 깜짝 놀랐다. 얼굴이 해쓱하고 몸도 홀쭉해졌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걱정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반가운 눈빛으로, 아니 환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죠? 저, 살 많이 빠졌죠?” 다이어트를 꽤 독하게 했단다. 그럼 그렇지. 편의점은 역시 다이어트의 훼방꾼이로구나.
“어머, 머리도 작아지셨네? 비결이 뭐예요?” 추어주려고 물었더니 ‘어머, 그것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표정으로 유튜브를 보고 몇몇 자세를 꾸준히 따라 했다고 역시 뿌듯하다는 목소리로 말한다. 머리가 주먹만 해졌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듣는다나. 손님이 나가고, 우리 편의점 직원에게 “그때 그 손님 있잖아, 한동안 보이지 않던…” 하면서 사연을 전했다. 직원은 그의 무사함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눈망울을 반짝이며 이런 반응부터 보이더라. “그 손님 다시 오시면 그 유튜브 채널 주소 좀 꼭 알려달라고 하세요.”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린다. 매일 손주를 데리러 오는 할아버지 손님을 기다리고, 뭔가 불만을 가졌는지 우리 편의점에 등을 돌린 손님을 기다리고, 얼굴이 작아지는 비결을 남몰래 실천하고 있을 당신을 기다린다.
때로 이별을 고하는 손님도 있다. 하루에 서너 번 편의점에 들러 똑같은 제조사의 똑같은 캔 커피만 꾸준히 사가던 손님이 있었다. 커피 종류가 캐러멜마키아토여서 내 마음속으로 그렇게 별명 붙인 손님이었는데, 어느 날은 계산을 치르며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네요” 하면서 씁쓸히 웃었다. 회사와 계약한 기간이 끝나서 더이상 이 건물을 다시 찾을 일이 없을 것이라나. 군대에 간다면서 앞으로 2년간 못 보게 될 것이라고 ‘입대 선서’를 하러 온 손님이 있고, 다른 회사에서 새 출발을 할 것이라고 ‘이직 신고’를 하는 손님도 있었다. 정년퇴직을 하면서 그동안 고마웠다고 마음 울컥한 인사를 전한 손님이 있고, 이제 유치원에 올라가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꼬마 손님이 ‘편의점 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비뚤비뚤 제목 붙인 그림을 들고 오기도 한다. 숱한 이별과 만남 가운데 시간의 풍경이 흐른다.
나루터의 뱃사공처럼 살아가는 것이 자영업자의 삶이다. 하루종일 손님을 실어 나르면서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웃음으로 소식을 전한다. 한동안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손님을 남몰래 그리워하기도 하고, 다시 찾아온 밝은 목소리에 홀로 반가워하며, 영영 떠나가는 뒷모습에 조용히 안녕의 기도를 건네기도 한다. 부디 평안하시길. 짐작하지도 못했던 사람이 마음으로 보내고 있을 “별일 없으시지요?”라는 안부 인사 가운데 우리는 오늘을 산다. 모두 무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