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인 월레스와 반려견 그로밋이 휴일을 맞아 느긋하게 쉬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유유자적하게 차나 마시려는데 치즈가 똑 떨어져 버린 것이다. 차도 크래커도 있는데 치즈가 없다니! 월레스는 치즈가 없으면 삶이 난감해지는 애호가. 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하늘을 쳐다보니 천창 너머로 달이 빛난다. 그렇다. “모두가 달이 치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달에 가면 원하는 치즈를 실컷 먹을 수 있다. 더군다나 월레스는 발명가. 쓱싹쓱싹 몇 장의 스케치를 그려 뚝딱뚝딱 망치질을 몇 번 하니 바로 달까지 날아갈 수 있는 로켓이 완성되었다. 둘은 크래커를 잔뜩 챙기고 로켓 꽁무니의 심지에 불을 붙여 치즈의 세계 달로 향한다.
아니나 다를까. 달은 예상대로 전체가 치즈였으니 그저 돗자리를 깔고 앉기만 하면 어디에서라도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왜 알면서 진작 오지 않았을까? 월레스는 그토록 좋아하는 치즈를 잠시나마 먹지 못했던 한을 풀기 시작한다. 달의 표면에 솟아오른 돌기를 나이프로 베어내 크래커에 올려 맛을 즐긴다. 오, 이게 무슨 치즈지? 웬슬리데일? 스틸튼? 체다? 카망베르? 그동안 먹은 영국 및 프랑스의 치즈를 열심히 읊어 보지만 달은 비슷한듯 묘하게 다른 맛이 난다.
그렇게 이리저리 옮겨가며 치즈를 즐기던 월레스와 그로밋은 바퀴가 달린, 냉장고를 닮은 로봇을 발견한다. 태생이 발명가라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월레스가 로봇의 동전 구멍에 10펜스를 넣고 다이얼을 돌렸지만 로봇은 꿈쩍하지 않는다. 돈을 먹었거니 생각하며 둘이 지나치고 나서야 움직이기 시작하는 로봇은 달의 관리 담당. 월레스와 그로밋이 피크닉을 즐긴 자리를 치우고 그들이 타고 온 로켓에 불법 주차 딱지를 붙인다. 그러고는 둘이 남기고 간 짐에서 스키 잡지를 넘겨보고 자신이 지구에서 스키를 즐기는 상상을 하기 시작한다.
비록 24분의 단편이지만 2시간짜리 장편을 보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한 ‘월레스와 그로밋의 화려한 외출’(1989)은 이 사랑스러운 듀오의 데뷔작이다. ‘화려한 외출’을 포함한 3편의 단편으로 출범해 ‘거대 토끼의 저주’ 같은 장편까지 확장된 월레스와 그로밋의 세계는 유토(油土·Plasticine) 인형을 활용해 찍은 ‘스톱모션’ 만화영화다. 유토의 신축성을 활용해 인형을 동작별로 움직이는 모양을 잡아준 뒤 이미지를 촬영해 이를 묶으면 마치 연속동작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원리다. 특유의 ‘손맛’을 느낄 수 있기에 스톱모션 만화영화는 독자적인 장르로서 사랑을 받으며, ‘월레스와 그로밋’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나저나 정말 “모두가 달이 치즈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사실 나는 몰랐기에 당황스러운 가운데서도 달에 어울릴 만한 치즈를 생각해 보았다. 영화에서 치즈 애호가인 월레스가 언급한 웬슬리데일이나 스틸튼 등을 빼고 대략 세 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치즈는 프랑스의 콩테(Comté)다. 살균하지 않은 우유로 만드는 콩테는 살짝 단단한 가운데 고소하면서도 끝에 도는 단맛이 매력적이다. 두 번째 치즈는 스위스의 그뤼에르(Gruyère)로 견과류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전통 음식인 퐁듀에도 쓰인다. 마지막으로는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치즈인 에담(Edam)으로, 살짝 무르면서도 특유의 노란색이 만화에 등장하는 달의 색깔과 닮았다. 치즈는 오프라인이라면 백화점 지하 식품 매장이나 코스트코, 온라인이라면 ‘치즈퀸(www.cheesequeen.com)’ 같은 할인 매장에서 사는 게 선택지도 다양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치즈를 실컷 즐기고 달을 떠나려는 월레스와 그로밋에게 관리 로봇이 나타나 어려움을 안긴다. 로봇은 지구로 함께 날아가 스키를 즐길 심산으로 로켓에 무임승차를 시도하다가 점화의 충격으로 튕겨져 나간다. 지구 방문의 꿈이 좌절된 로봇은 잠시 낙담하지만 함께 튕겨져 나온 로켓의 껍데기로 스키를 자작해 달의 치즈 봉우리에서 신나게 즐긴다. 한편 월레스와 그로밋은 치즈를 한 바구니 잔뜩 담아 지구로 향하니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이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