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방송한 '장학퀴즈 50주년 특집'. 최첨단 확장현실 기법으로 1980년대 차인태 아나운서와 현 진행자인 장성규가 공동 진행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EBS

“50원짜리 동전에는 벼가 그려져 있고, 10원짜리 동전에는 다보탑이 그려져 있죠. 그러면 5원짜리 동전에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요?”

1973년 2월 18일 첫 전파를 탄 ‘장학퀴즈’에 나온 문제. 정답은 ‘거북선’이다. 초대 MC로 17년간 장학퀴즈를 진행한 차인태 전 아나운서가 지난 18일, ‘장학퀴즈 50주년 특집’에 나와 그 시대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이야 10원짜리 동전도 흔히 볼 수 없지만, 1960~1970년대에는 1원, 5원짜리도 통용됐어요. 5원이면 버스나 지하철을 탔고, 1원이면 구멍가게 왕사탕을 사먹을 수 있었죠.”

◇시대별 인재상 변화 보여줘

‘장학퀴즈’가 50주년을 맞았다. ‘전국노래자랑’보다 오래된 최장수 프로그램. MBC에서 시작해 1996년 시청률 저하로 폐지됐지만, 이듬해 1월부터 EBS에서 재개됐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인재 양성에 달렸다”는 최종현 선경그룹(현 SK) 회장의 경영 철학에 따라 첫 방송부터 지금까지 SK그룹이 단독 후원한다.

인기가 대단했다. 집집마다 일요일 오전이면 “전국 남녀 고등학생들의 건전한 지혜의 대결”이라는 차인태 아나운서의 오프닝 멘트가 흘러나왔다. 시그널 음악인 하이든 트럼펫 협주곡 3악장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참가자들의 아침 기상곡으로 활용됐다. 고교 평준화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지 않던 시절에는 ‘명문고’들의 자존심이 걸린 대결장이었다. 1977년 제7기 기장원인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월 장원 상금이 10만원이었는데 197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GDP가 10만원이었다.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땀 흘려 번 돈을 상금으로 준 것”이라며 “기장원은 무려 대학 입학금과 4년 등록금을 줬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 파격적인 혜택이라 열심히 배우고 지식을 쌓으면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가 크다는 것을 알려준 방송”이라고 회고했다.

지난 18일 방송한 '장학퀴즈 50주년 특집'의 한 장면. /EBS

‘장학퀴즈’ 50년엔 시대가 요구해온 인재상의 변화도 담겼다. 이은정 PD는 “1970년대는 국력을 키워야 하는 시대라 공부 잘해서 출세할 수 있는 ‘모범생’이 요구됐고, 1980~1990년대에는 문화적인 부분까지 관심 분야가 다양해졌으며, 글로벌 인재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영어 문제도 등장했다”고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한 분야만 잘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발명왕 같은 학생들도 출연한다.

퀴즈 형식도 단순 암기형에서 맥락적 지식을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2021년부터 문제를 맞힌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질문을 던져 동반 진출하는 형식이 추가됐다. 특정 직업에 꿈을 키우는 학생들이 출연해 해당 분야 지식과 지략 대결도 펼친다. 웹툰작가 주호민, 프로게이머 페이커, 건축가 유현준 등이 꿈의 멘토로 등장했다.

◇퀴즈쇼도 진화한다

‘장학퀴즈’는 서바이벌 방식 등 퀴즈 프로의 ‘정형’도 만들었다. 70년대 말에는 방송 3사 퀴즈 프로가 13개까지 늘었고, 90년대에는 대학생 대상 ‘퀴즈 아카데미’도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우승자에게 어떤 보상을 주느냐를 봐도 시대가 보인다”며 “퀴즈 아카데미는 해외여행을 상품으로 걸어 더 넓은 세상에 나가 견문을 넓히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줬고, 배낭여행 트렌드로도 이어졌다”고 했다.

최우승자에게 여의도 아파트 한 채를 주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1991~1995년 SBS에서 방영한 ‘알뜰살림 장만 퀴즈’. 오직 주부들만 참여할 수 있고, 단 한 문제만 맞혀도 냉장고, 대형 TV, 고급 소파 등이 쏟아지는 역대급 스케일로 화제를 모았다.

두뇌 렌털 퀴즈쇼 '내 친구들은 나보다 똑똑하다'의 한 장면. /tvN

요즘 퀴즈 예능은 상식이 아닌 추리력, 창의력 대결을 펼친다. 한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 열풍을 일으켰던 ‘문제적 남자’에 이어 지난달 tvN은 두뇌 렌털 퀴즈쇼 ‘내 친구들은 나보다 똑똑하다’를 선보였다. 연예인들이 각자 자신이 초대한 브레인 친구들과 한 팀을 이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정덕현 평론가는 “이 시대의 인재는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력을 펼치는 사람이라는 걸 영리하게 보여주는 예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