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상도식 소고기 콩나물 뭇국 8000원, 장어 강정 1만원, 무생채 우렁 강된장 비빔밥 8000원...”
부산에 사는 주부 김모(64)씨는 매일 오후 8시면 소셜미디어 앱 네이버 밴드를 켠다. 동네 반찬 가게인 ‘밥만하소’에서 다음 날 팔 반찬 메뉴를 미리 올리기 때문이다. 매일 바뀌는 반찬 종류는 국, 일품 요리, 밑반찬 등 12가지 정도. 밴드에 가입한 동네 사람들이 메뉴판을 보고 인터넷으로 주문서와 방문 시간을 제출하면, 다음 날 아침 주문량만큼만 장을 보고 요리해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1만6000원 이상 구매하면 1000원에 배달도 해준다. 김씨는 “매일 다른 반찬에 당일 아침에 만들어 신선하고 조미료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자주 이용한다”며 “자녀들도 장성해 따로 살고, 남편과 둘이 있다 보니 집에서 만들기보다 사 먹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고 했다.
#2. 워킹맘 남모(35)씨는 올해 남편 생일상을 동네 반찬 가게 도움을 받아 해물 냉채와 구절판, 갈비찜으로 푸짐하게 준비했다. 남씨의 단골 가게는 메로 구이, 제주 갈치 조림 등 식당에서도 보기 어려운 일품 요리 메뉴를 잘 만들기 때문이다. 제철 식재료에 따라 바뀌는 메뉴는 문자 메시지로 보내준다. 지난달 정월 대보름에는 고사리, 취나물, 시래기 등으로 만든 나물과 오곡밥도 반찬 가게에서 샀다. 남씨는 “나물은 정말 손도 많이 가고 빨리 상해 집에서 만들어 먹기 어려운 음식인데 반찬 가게 덕분에 온 가족이 정월 대보름을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국내 1위의 드라마 ‘일타스캔들’의 주요 무대는 남행선(전도연)이 운영하는 ‘국가대표 반찬 가게’. 동네 일타 수학 강사든, 변호사 워킹맘이든, 교육 인플루언서든, 전업주부든 모두 이곳에서 반찬을 사 한 끼를 해결한다. 가게는 이들을 위해 도시락도 만들고, 배달도 하고, 특식도 준비한다.
요즘 반찬 가게는 이보다 한 수 위로 진화하고 있다. 미리 앱으로 메뉴를 공지하고, 무인 판매 시스템으로 24시간 운영하며, 체인점도 생겼다. 미쉐린 스타 셰프가 직접 반찬을 만들어 정기 배송 서비스도 운영한다.
집 반찬을 동네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1인 가구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 배달 앱의 등장으로 동네 반찬 가게의 인기는 시들기 시작했다. 비슷한 종류의 반찬보다는 식당에서 갓 배달한 한 끼가 더 편하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반찬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대량생산하는 공장형 반찬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들의 손길을 식당 음식 배달로 돌리게 했다.
그러나 최근 배달비 인상과 물가 상승, 건강한 밥상 선호로 반찬 가게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반찬 가게도 이에 맞춰 매일 아침 시장에서 산 제철 식재료로 반찬을 만들어 정해진 만큼만 판다.
‘반찬 가게의 돌아온 전성기’를 만든 건 1958년생 이후인 신(新)노년층이다. 베이비붐 세대인 이들은 합리적 사고방식과 미래 지향적인 생활 의식으로 더 이상 요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주방을 닫는 ‘키친 클로징’ 열풍도 반찬 가게 부활에 한몫했다.
젊은 층은 건강과 친(親)환경적 삶을 생각해 반찬 가게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저염, 비건 중심의 반찬 가게가 많이 생기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 운동이 유행한 것도 이에 일조한다. 식당에서 음식 배달을 시키면 남는 음식도 버리는 용기도 많다. 반찬 가게들은 이런 소비층에 맞춰 대부분 소용량만 판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 필요한 만큼만 딱 맞춰 구매하고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펼치는 사람들을 ‘체리 슈머’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들은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고, 팀 구매나 공동 구매를 적극 활용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