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희 대표는 “베어베터 캐릭터는 무표정한 발달장애인을 본떠 만들었다”며 “얼마 전 10주년 때 다시 제작한 곰은 입가가 조금 올라갔다. 이 친구들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는 대사다. 자폐성 발달 장애인 우영우가 서울대 법대를 수석 졸업하고도 아무 곳에도 취직하지 못한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베어베터(bear better)’는 우리 사회 속 수많은 우영우에게 일자리를 주고 싶어 만든 회사다. 네이버 창립 멤버였던 김정호(56) 대표와 함께 근무했던 이진희(58) 대표가 2012년 의기투합했다. 발달 장애인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다는 김 대표에게 이 대표가 “가장 필요한 건 일자리”라고 툭 던진 게 사업의 발단이 됐다. 이 대표에겐 자폐성 발달 장애 3급 아들이 있다.

우리나라 장애인고용법엔 직원 50명이 넘는 민간 기업은 근로자의 3.1%를 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고 돼 있다(공공기관 3.6%). 그렇지만 해마다 9000여 곳의 기업·기관이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해 8000억원 가까운 부담금을 낸다. 베어베터는 이 점을 파고들었다. 장애인 직접 고용이 힘든 기업이 장애인 10명 이상을 고용한 장애인표준사업장에 일을 맡기면, 부담금을 최대 50%까지 감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계 고용’ 제도를 이용해 베어베터는 연 매출 100억원에 고객사만 500여 곳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서울 성수동 베어베터 작업장에서 만난 이진희 대표는 “베어베터 같은 회사가 없어지는 게 최종 목표”라며 웃었다. 이곳엔 258명의 ‘우영우’가 근무하며 화환과 쿠키를 만들고, 명함과 기업용 교육 책자 등을 제작해 지하철로 배송한다. 직원 310명 중 80% 이상이 발달 장애인이다.

◇베어베터 10년, 구인난이 찾아왔다

–없어져야 할 회사라니?

“의무 고용이 있는 모든 사업장에서 직접 고용을 하는 날이 오면, 우리 같은 회사는 필요하지 않다. 올해는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경기도 기흥에 ‘희망별숲’이란 장애인 표준 사업장을 만든다. 이곳에서 빵과 과자 등을 만들어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 임직원용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처럼 하고는 싶은데 엄두가 안 나는 회사들과 자문 계약을 맺고, 사업 구상부터 채용·선발과 훈련까지 지원하고 있다.”

–채용할 땐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보나.

“첫째, 대중교통을 이용해 혼자 여기까지 찾아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업무 지시를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의사소통 능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일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면접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어떤 지원자가 이름이 뭐냐고 물어도 대답을 않더라. 그런데 실기 테스트에선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래서 종이를 드렸다. 질문을 하면 여기에 답을 써 달라고. 그랬더니 너무나 완벽한 문장으로 답을 적더라. ‘시급은 얼마입니까?’ 하고(웃음). 마지막에 ‘회사에선 대답하지 않으면, 말을 이해한 건지 알 수가 없다. 대답을 할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그제야 작게 ‘네’라고 하더라. 이런 식으로 우리가 원하는 인재상을 확인해 나간다.”

–베어베터는 올해 구인난을 겪었다더라.

“2021년까진 지원자가 최소 100명 이상 돼, 원하는 만큼 뽑을 수 있었다. 코로나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사람을 뽑았다. 그런데 지난해 지원자가 절반가량 줄었다. 베어베터 말고도 발달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일터가 조금씩 더 생겨 났기 때문이다. 지금 서울의 발달 장애인 30%는 일할 곳이 있다고 한다. 미성년자나 일하기 힘든 상태의 친구들을 빼면 대부분이 일자리를 얻은 셈이다.”

–베어베터의 10년이 일으킨 변화일까.

“발달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다들 안 될 거란 생각에, 채용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발달 장애인 데리고 무슨 일을 하느냐’는 편견을 딛고, 베어베터가 채용 기준을 세우고, 잘해낼 수 있단 걸 증명해냈다고 생각한다.”

tvN 드라마 ‘일타스캔들’에서 자폐인을 연기한 배우 오의식이 베어베터 티셔츠를 입고 있다. 실제 베어베터에서 배송도 하며 틈나는 대로 와서 같이 지냈다고 한다. /인스타그램

◇선의에 기대지 않는다

‘(명함) 담는 사원. 1. 업체에 맞는 통을 준비한다. 2. 전달받은 명함 인쇄 상태 및 오타를 확인한다. 3. 확인한 명함을 통에 담고 고무줄로 묶는다.

베어베터 작업장엔 이런 업무 지시가 곳곳에 적혀 있다. 발달 장애인 50명을 고용한 일본 분필 회사 ‘이화학공업’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발달 장애인에게 ‘불량 분필을 검수하라’고 했더니 잘 해내지 못했지만, 규격과 같은 크기의 모델을 만들어 비교하게 했더니 완벽히 해냈다.

–고객사 만족도 조사에서 늘 평균 4.5점(5점 만점)을 유지한다더라.

“우리는 기업의 선의(善意)에 기대지 않는다. 품질이 떨어지면, 한 번은 사준다. 그렇지만 두 번은 우리와 거래 안 한다. 2년에 한 번 고객사를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한다. 만족도가 0.1이라도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분석하고, 그 사안에 대해 철저하게 다시 교육한다.”

–업무 지시가 정확하고, 구체적이더라.

“발달 장애인들은 라면에 ‘물 많이’ 넣으라고 하면 끓이지 못한다. 그렇지만 500mL를 넣으라고 하면 정확히 해낸다. 띄어쓰기 맞춤법 도사이지만, 흥부전의 교훈은 찾아내지 못한다. 이런 장애로 인한 특징이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했다. 지하철을 타고 하는 배송의 경우, 과거 지하철 노선도를 줄줄 꿰던 아들의 모습에 착안했다. 초창기 사업 소개를 위해 당시 아이가 그린 지하철 노선도를 오랜만에 찾았더니, 아이가 ‘그건 ΟΟ년도 거예요’ 하더라. 노선이 어디까지 가 있는지를 보면 안다고 한다.”

–첫 사업 아이템은 복사집이었다더라.

“뭘 할지 고민하다, 성균관대 앞에 복사집을 열었다. 좋은 기계는 장애인이 누르나, 비장애인이 누르나 품질이 똑같이 나올 테니까. 복사집을 차린 지 한 달 만에 알게 됐다. 요즘 학생들은 종이를 복사하지 않고, 다 PDF 파일로 자료를 받아 온라인으로 보는구나! 몇차례 시행착오 끝에 연계 고용까지 오게 됐다.”

–최근엔 사업 모델을 지방으로 확장했다. ‘브라보 비버’다.

“지방과 서울의 고용 격차가 6배 정도 난다. 일하는 발달 장애인이 5% 조금 넘는다.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지방에 중증 장애인 사업장을 만들어 대기업이 지분 투자액만큼 장애인 의무 고용을 인정받을 수 있게 했다. ‘브라보 비버 대구’를 작년에 시작했고, 올해 인천과 의정부에 사업장을 만들었다.”

◇아들 때문에? ‘덕분에’ 시작한 사업

30개월에 자폐 진단을 받은 이 대표의 아들은 피아노 학원에 보내면 치는 것보다 음표 그리는 걸 좋아했다. 엄마 회사 수첩 뒤 지하철 노선도를 찢어서 그리고 또 그렸다. 비장애인과 같은 일반 전형으로 미대 입시에 도전해 디자인을 전공하고, 캐릭터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브라보 비버’ 캐릭터도 아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졌다.

이 대표 아들의 재능 기부로 만들어진 '브라보 비버' 캐릭터. /베어베터

–아들이 만든 캐릭터라 감회가 남다르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좋은 미술 선생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치료 겸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못 다닐 줄 알았다. 미술 학원이 차 타고 가면 20분 정도로 멀지 않은 거리인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또 내려서 반 정거장 걸어가야 한다. 내가 일하는 엄마니, 차로 데려다 줄 수가 없어 아이가 혼자 가야 했다.”

–어떻게 했나.

“일단 연습을 시켰다. 지하철 몽촌토성 역에서 상계동에 있는 이모집까지 혼자 찾아가게 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을 몰래 붙였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아이를 관찰하되 위험한 상황만 아니면 개입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아이가 잘 도착하더라. 다만 아르바이트생이 전하길, 여러번 탔다가 내렸다가 하더란다. 나중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자기가 원하는 기관차가 아니라서 그랬단다. 우린 잘 모르지만, 아이의 눈엔 헤드라이트나 전동차가 도입된 연도 등에 따라 모습이 달라 보였던 거다.”

–비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도 아이를 혼자 보내긴 쉽지 않을 것 같다.

“엄마가 놓아야 아이가 갈 수 있다. 완벽하게 쥐고 있으면 아이에게 성장할 기회를 줄 수 없다. 장애인을 키우는 어머니 중엔, 아이가 출근 훈련 할 때 매일 쫓아와서 지켜보는 분도 계신다. 엄마가 없는 상황에선 잘하다가도, 엄마가 나타나면 문도 열어줘야 하고, 옷도 입혀줘야 하는 아이로 바뀐다.”

–가장 보람있다고 느낀 순간은.

“사원들이 퇴근하면서, ‘내일 또 봬요’라고 인사할 때. 내일 또 올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말 한마디 못하던 친구가 사회생활 10년만에 ‘명절 잘 보내세요’라고 할 때는 울컥하더라.”

–어려운 때도 많았을 것 같다.

“5년 전까진 직접 회사 인사팀을 찾아가 인사 담당자를 설득해야 했다. 우리와 거래하면 장애인 의무 고용 부담금을 내지 않아 더 이익이라고 해도 그냥 부담금 내겠단 회사도 많았다. 반대로 고용 부담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회사인데도, 우리와 꼭 거래하겠다는 곳도 있었다.”

–아들이 엄마 일에 대해 말한 적 있나.

“언젠가 아들이 ‘엄마가 나 때문에 이 일 하는군요’’ 하더라.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맞아, 네 덕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