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업 분석과 채권 가치 측정 등을 토대로 기업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매입과 매각을 추천하는 신용 조사 애널리스트다. 28년이 넘는 월가 경력 중 약 5년간은 기업과 산업 분석을 통해 주식의 가치를 측정하는 주식 애널리스트 일도 했다. 회사채든 주식이든 증시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일을 오랫동안 해서 그런지 주가나 채권 가격이 매일 오르고 내리는 것에 대해 그렇게 심각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기업에 의미 있고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기업의 본래 가치에도 큰 변화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간 오르락내리락하는 증시의 분위기를 보면서 가끔 짜증이 날 때가 있다. 특히 요즘 더 그렇다. 투자자들의 신경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기준금리결정회의)의 미래 금리 결정에 쏠려있다. FOMC가 금리를 몇 번이나 더, 얼마나 더 올릴까? 최고 금리는 과연 얼마가 될까? 또 최고 금리가 몇 달간, 혹은 몇 년간 유지될까? 높은 금리로 경제가 불황에 빠지지는 않을까? 등등.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불황은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들 중에는 미국 금리는 0.25%에서 0.50%만의 상승을 남겨놓고 있고, 올해 연말부터는 FOMC가 금리를 내리기 시작할 거라고 믿는 이들도 있다. 인플레이션이 확실히 수그러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금리를 올리거나, 높은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비롯한 FOMC 관계자들의 경고 메시지를 무시하는 투자자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들의 장밋빛 전망을 접하면서 떠오르는 비유가 있었다.
몇 달 전 칼럼에 언급했듯이 아들 데이비드는 올해 12학년, 즉 한국으로 치면 고3이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또 입학원서 수수료 (30~85달러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대학에 응시할 수 있다. 딸 예진이는 3년 전에 12군데 대학교에 응시했는데, 한 친구가 왜 20~30군데에 원서를 보내지 않았느냐고 나를 나무랐었다. 그래서 데이비드에겐 거의 30개 대학교를 추천했다. 아들은 결국 25군데에 원서를 보냈는데, 우리는 응시 대학교 목록을 세 카테고리로 나누었다. 첫째는 합격 가능성이 낮은 상향 지원 학교 7곳, 둘째는 아들의 성적과 시험 결과 그리고 학업 외 활동 등을 토대로 합격할 만한 적정 지원 학교 12곳, 마지막으로 데이비드의 실력으로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하향 지원 학교 6곳으로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10월 말부터 1월 초까지 아들은 열심히 입학원서를 작성했고, 천천히 통보가 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심리는 참 희한하다. 하향 지원한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합격 통보와 장학금 소식을 보내줬을 때만 해도 나와 아내는 그래도 대학은 가겠다는 생각을 하며 안도했었다. 그런데 하향 지원한 학교 세 군데에서 합격 소식과 장학금 소식이 왔고, 적정 지원 학교들 두 군데에서 합격 소식이 왔다. 적정 지원 학교 중 하나인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는 다른 주(州)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매우 비싼 학비 대신 플로리다 거주 학생들에게 받는 저렴한 학비를 낼 수 있도록 해줬다. 이 소식을 가장 기쁘게 받은 사람은 나다. 하지만 아들 데이비드는 이 모든 긍정적인 소식에 별 반응이 없었다. 자신이 원하는 학교들, 즉 상향 지원한 학교 서너 군데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그런 태도를 보니 나도 벌써 합격 소식을 전해준 학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사실 데이비드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학교는 남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교다. 그리고 나나 데이비드의 고등학교 선생님은 이 학교를 상향 지원 카테고리에 넣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 학교를 포함해 데이비드가 응시한 학교 네 곳은 초(超)상향 지원 학교들이다. 나는 이런 학교들을 ‘로또 학교’들이라고 부른다. 즉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주에 남캘리포니아 학교에서 이메일 두 개가 왔다. 하나는 12학년 1학기 성적을 보내라는 요청, 또 다른 요청은 부모의 세금 보고 기록을 국세청에서 직접 받아볼 수 있도록 서명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각각 이메일에는 학생과 부모를 향한 메시지가 포함돼 있었다. 이런 요청을 미리 보내는 것과 합격의 가능성은 상관이 없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즉 김칫국 마시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 특별히 희망을 걸고 있는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나는 아이에게 그런 경고의 메시지는 혹시 몰라서 다 포함하는 것이고, 둘 다 희망을 좀 걸어도 될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나도 그걸 믿고 싶다. 최근 성적은 대학들이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국세청 기록 조회는 돈과 시간이 드는 절차이기에 더 좋은 조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불합리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FOMC의 미래 결정을 장밋빛 안경을 쓰고 보는 투자자들처럼.
내 투자 철학은 간단하다. 인플레이션, 높아지는 이자율, 일시적인 불황 그리고 다른 경제적 어려움들을 견뎌낼 수 있는 견고한 기업의 증권이 본래 가치보다 저렴하게 거래될 때 매입하고, 반대로 기업의 본래 가치보다 비싸게 거래될 때 매각하는 것이다. 물론 말보다 실천은 훨씬 더 어렵다. 앞으로 FOMC가 오는 몇 달 동안 무슨 결정을 할지 지레짐작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 지원한 학생들의 설레발을 조심스럽게 관리하기 위해 덧붙이는 대학교의 경고 메시지나, 투자자들을 포함한 경제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리를 관리하기 위한 FOMC의 공식 발표를 희망찬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합격·불합격과 금리에 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의 가능성에 대해 준비하는 것이 더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최선을 희망하지만, 최악에 대한 준비도 항상 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