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에서 도시계획과 부동산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김경민(51) 서울대 교수는 대한민국을 두 번 놀라게 했다. 코레일과 서울시가 ‘단군 이래 최대 개발 프로젝트’라며 밀어붙이던 31조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파산’을 경고한 것이 그 첫째다. “시장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한국판 롯폰기 힐’ 같은 피상적 구호에 함몰된 대형 개발에 머지않아 큰 파고가 닥칠 것이란 두려움”에 펴낸 <도시 개발, 길을 잃다>는,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왜 파산할 수밖에 없는지 그 개발 구조를 낱낱이 밝혀 코레일과 오세훈의 서울시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의 예견대로 용산 프로젝트는 2013년 좌초했다.
두 번째 충격은 지난해 대한민국 집값의 대폭락을 예고한 일이다. 꺾일 줄 모르고 폭등하던 전국 아파트 값이 2021년 하반기 이후 인플레이션과 함께 최고 20%까지 폭락할 것이라는 그의 전망이 적중했다. 고금리, 고환율 속에서 한국 부동산 시장은 최대 암흑기로 빠져들었다.
쇄도하는 방송 출연 요청으로 “3월 개강 후 잠수”를 선언한 그를 삼일절을 하루 앞두고 만났다. “부동산 아니라 ‘건축왕’ 정세권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라 설득했다. 학자 김경민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일제 때 20세기형 조선 한옥을 서민들에 대량 공급해 일본인들의 북촌 진출을 막은 민족 자본가 정세권(1888~1965)을 발굴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세권을 기리기 위해 2년 전 개관한 북촌한옥역사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개인 연구실이 있는 창신동에서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청계천 자전거 도로로 오면 15분? 얼마나 빠른데요.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은 진짜 잘한 일입니다, 하하!”
◇아파트 값 폭락 100% 확신했다
-부동산 상담이 줄을 이을 것 같다. 특히 서울대 동료 교수들.
“그렇지도 않다. 내가 좀 내성적이라 친한 교수님이 많지 않다. 아, 얼마 전 본부 보직자분이 전화하셨더라. 무조건 버티고 기다리시라고 했다(웃음).”
-모두가 상승장이라 믿었던 2021년 12월, 집값 폭락을 예견했다.
“나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는 사람이다. 2021년 7월에 수요, 공급, 임대료, 투자 수익률 등을 갖고 모델링을 해보니 이미 가격 하락이 시작됐고, 그해 하반기부터는 본격화할 거란 분석이 나왔다. 가장 큰 요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처할 때보다 더 막대한 규모의 돈이 시장에 풀린 점, 미·중 무역 전쟁, 코로나 사태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문제 등으로 거대한 인플레이션이 올 거라 생각했다. 미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 엄청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이 경제에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주는지를 진저리치게 경험한 나라다. 따라서 미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거고, 금리 인상은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IMF 때나 2008년 금융 위기 때처럼 1~2년 내 반등, 급등할 거란 전망도 있다.
“그때와 지금의 위기는 다르다.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하고 착각해선 안 된다. 그땐 중앙정부에서 개입할 여지가 있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지금은 경제 위기인데도 금리 인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때는 인플레가 없었지만 지금은 시장에 천문학적인 돈이 풀리면서 물가가 폭등하고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전 세계 공급망에도 엄청난 차질이 발생했다. 일개 국가의 개입으로 풀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용산국제업무지구의 파산은 어떻게 예견했나.
“초고층 건물에 대한 환상에 빠져 공익 가치를 무시한 섣부른 계획이었고, 부동산 시장을 분석하는 데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명품 수변 도시’라는 표현처럼 그저 미적인 것으로 도시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20세기 미국 도시 미화 운동의 짝퉁이랄까. 공익을 일정부분 우선하는 디벨로퍼(개발자) 없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들어온 주체들이 자기들만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쌈박질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에 파산은 당연했다.”
-공익을 우선하는 디벨로퍼?
“도쿄의 롯폰기 힐을 재개발한 모리 미노루 같은 디벨로퍼가 한국엔 없었다. 그는 재개발을 ‘진심의 싸움’이라고 보고, 넓은 녹지 공간 확보, 문화와 미디어를 개발과 연계하는 전략 등 도시의 비전을 그려 주민들을 설득했고, 결국 100% 동의를 얻어내 개발해 착수했다. 우리나라에도 공적인 영역의 디벨로퍼가 필요하다. 미국 허드슨 야드 개발공사(Hudson Yards Development Corporation·뉴욕시정부 산하의 개발공사)처럼 마스터플랜을 짜고 개발에 참여한 민간 업자들을 관리하고 원주민과 소통하는 공공 회사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례로 보스턴의 재개발청과 싱가포르 재개발청을 들 수 있다. 이들이 하는 역할을 SH(서울주택도시공사)도 할 수 있다고 본다.”
-뉴타운 사업에도 비판적이더라.
“서울 같은 국제 도시에서 원주민들의 뉴타운 재정착률이 잘해야 20%라는 건 비난받을 일이다. 롯폰기 힐의 재정착률은 80%에 이른다. 원주민들 잘 살게 하려고 뉴타운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 이들을 쫓아내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개발에 부정적인가?
“그럴 리가. 다만 사회적 약자들을 보듬으면서 하라는 거다. 미국도 다 그렇게 한다. 뉴욕의 20/80 프로그램같이 어포더블 하우징(affordable housing·중산층과 서민 대상의 임대아파트)을 넣는 경우 인센티브를 주거나, 도심 오피스 지구 개발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을 반드시 공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임대아파트를 넣으면 집값 떨어진다고 난리 치지 않나. 내가 진행하는 최근 연구에 의하면, 10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에서 임대아파트의 유무와 가격 상승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 “익선동은 반드시 뜬다”
용산국제업무지구 파산, 부동산 20% 대폭락을 비롯해 김경민 교수가 업계를 놀라게 한 ‘사건’이 또 하나 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 일대를 MZ세대 성지(聖地)로 만든 시작점이 바로 그다. 2010년대 초 뉴타운 개발의 하나로, 1920∼1930년대 지은 한옥 지구를 철거하고 초고층 복합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그는 방송에 출연하고 신문에 기고하며 익선동 지키기에 나섰다. “1930년대 대규모로 모듈화해서 지은 익선동 조선 한옥 단지를 보면 외국인들은 거의 기절합니다. 미국만 해도 2차 대전 후에나 시도한 거거든요. 우리 도시사(史)에 남겨야 할 귀중한 자산이었죠. 무엇보다 익선동에 수십 년 정착해 살아온 어르신들이 삶의 터전을 빼앗길 위기였습니다.”
-익선동은 어떻게 알게 됐나.
“도시계획 역사를 가르치다 현장 답사를 가게 됐다. 작은 한옥 100여 채가 처마를 이어가며 어우러진 모습을 보고 여긴 100% 뜬다, 확신했다.”
-도심이지만 흉물스러운 미개발 지역 아니었나.
“거리에 쥐똥이 구르고, 쪽방도 많았다. 배우 윤여정이 ‘박카스 아줌마’를 연기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 배경이 탑골공원과 익선동 일대다. 그러나 도시와 공간의 가치는 콘텐츠와 스토리에서 나온다. 예쁘고 쾌적한 외형이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친구들은 주차할 데도 없는데 사람들이 여길 왜 오겠느냐 했지만 중국 상하이의 ‘티엔즈팡’은 미로처럼 이어진 허름한 동네여도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결국 재개발이 해제되고 MZ세대의 명소로 떠올랐다.
“상권은 지하철 접근성이 제일 중요한데, 익선동은 종로3가역 바로 앞이다. 차별적 경험 공간이란 측면에서도 한옥이 모여 있는 익선동은 젊은 세대의 복고 취향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주민들, 부동산 중개인들까지 보존에 앞장섰다.”
-무조건 옛것을 보존하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은가.
“보존과 개발의 균형점이 중요하다. 창신동은 동대문 패션 산업의 기지 역할을 해온 곳이라 2013년부터 서울시가 도시 재생 사업을 펼쳐왔는데, 언덕 쪽 주택들은 진작에 재개발해야 했다. 그 동네 아이들이 한여름 냄새가 진동하는 공동 화장실을 쓴다. 보존이든 개발이든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은 주민들의 삶이다.”
-박원순 시장의 도시 재생 전략은 외형 보전에 치중해 실패했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남기고, 주민들 삶을 위해 필요한 공간은 개발해야 한다. 박 시장의 노원구 백사마을 보존 같은 건 엉터리다. 골목이라고 무조건 보존해서는 안 된다. 거긴 과감히 부수고 아파트를 올려야 했다. 그 반대가 박원순 시장이 부순 세운상가다. 도심 한복판에 제조업 현장이 있고, 고려 시대 골목길도 남아 있었다. 반드시 보존해야 할 유산을 없애버린 것이다.”
-종로 피맛길을 철거한 것도 비판했다.
“조선시대 백성들이 말 탄 고관대작들을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避馬)이었고, 빈대떡 생선구이를 팔며 서민들 애환을 달래주던 길이었는데 무자비한 개발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골목길이 돼버렸다. 지혜로운 디벨로퍼가 있었다면 피맛길을 보존할 테니 용적률을 조금만 더 달라거나 재산세를 삭감해달라고 협상했을 것이다.”
-초고층 건물이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박원순 시장이든 오세훈 시장이든 싱가포르만 다녀오면 거대 개발 프로젝트를 발표하더라. 용산과 여의도를 통합 개발한다? 미친 짓이다. 싱가포르는 역사가 일천한 도시국가이고, 서울은 1000년 도시인데 싱가포르와 비교한다는 게 말이 되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북촌이나 명동, 동대문을 보러 오지 63빌딩이나 롯데타워를 보러 한국에 오지 않는다. 그런 건 어디서나 볼 수 있으니까. 도시의 경쟁력은 콘텐츠이지 용적률이 아니다.”
◇20세기 최초의 한국인 디벨로퍼
김경민이 ‘건축왕’ 정세권에게 빠져든 건 2012년 익선동을 연구할 때다. 30평대 이하의 서민 한옥들이 집적된 익선동 한옥 지구를 누가 건설했을까 추적하다, 정세권을 만났다. 당시 집장수로 매도됐던 정세권은 도시형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해 조선인들의 거주권을 확보했고, 조선물산장려회와 조선어학회의 재정적 후원자로도 활동했다. “교과서에 없는 민족자본가였죠. 조선물산장려운동은 정세권이 없었으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기록이 거의 없어 정세권 연구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한글학회엔 재정적 후원자로, 건축학회에는 집장사로만 기록돼 있다. 다행히 증손자와 연결돼 정세권의 따님인 정정식 이화여대 교수를 2012년 여름 만났다. 정 교수가 전해준 부친의 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람 수가 힘이다. 왜놈들의 북진을 막아야 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단다. 당시 청계천 이남에 살던 일본인들이 조선인 모여 살던 북촌으로 진출하려는 시도가 빈번해 정세권이 몰락한 양반들의 땅과 한옥을 사들여 서민 한옥을 지은 거다.”
-건축학적으로 멋진 한옥은 아니다.
“물론이다. 고관대작들이 살던 전통 한옥을 다섯 채, 여섯 채로 쪼개 현대화한 것이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함석 챙을 잇대는 식으로 변형한 퓨전 한옥이었다. 미적 가치는 떨어졌지만 경성에 살던 조선인들이 주거권을 뺏기지 않도록 한옥을 일종의 조선 물산으로 장려한 셈이다. 그 일로 탄압을 받았고 결국 모든 재산을 잃는다.”
-1929년 정세권의 건양사가 조선일보와 주택 개선 현상 공모전을 개최했다. 조선인의 생활 방식을 반영하되 현대 문화 생활이 가능한 주택으로 6인 가족이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정세권은 조선일보 사장으로 민족 언론의 사표였던 민세 안재홍과 평생의 동지로 독립운동을 했다. 이극로의 조선어학회, 신간회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시인 한용운은 조선물산장려회가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전 장소를 마련해준 정세권을 치하하며 <장산>지에 ‘백난중분투(百難中奮鬪) 하는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에 정세권이란 이름은 반드시 실려야 한다.”
◇땅과 집과 도시의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
아버지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역삼동 꼭대기로 올라갔다. 삼성동 쪽을 향해 아이를 딱 세우더니, 말했다. 잘 봐라, 저기가 천지개벽할 거다. 우리나라 경제 기능이 이곳에 집적되고, 초고층 건물들이 들어설 거다. 아이는 피식 웃었다. 친구들과 스케이트 타는 저 논밭이 빌딩 숲이 된다니, 동네서 가장 높은 곳이 태권도 학원 있는 5층짜리 건물인데 20~30층 빌딩이 이 촌동네에? 그러나 아버지 예언은 현실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낯선 건물이 올라가고, 창문 밖 풍경이 휙휙 달라졌다. 1983년, 강남 개발의 시작이었다.
사주팔자는 믿지 않지만, 운명 비슷한 건 있다고 믿게 됐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나와 GIS(지리 정보 시스템)을 만들 때 IMF외환위기를 겪었고, 2000년 UC버클리대에서 정보통신 석사과정을 밟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테크 버블’이 터졌다. 하버드 박사과정으로 보스턴의 상업부동산 리서치 회사에서 세계 주요 도시의 오피스를 연구할 때 글로벌 금융 위기가 덮쳤다. “한국이 망하고 실리콘밸리가 망하고 전 세계가 망하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땅과 집과 도시의 생태계를 파고드는 연구자가 됐다.
-부동산에 안목이 대단했던 아버지는 뭘 하시던 분인가.
“피부과 의사였다. 명피부과 김풍명 선생이라고 TV에도 자주 나오던 유명한 의사였다(웃음). 서울대 의대 나와 우리나라에서 모발 이식 수술, 가슴 성형 수술을 제일 먼저 시도한 분이다. 한번은 미국에 다녀오시더니 그 나라에선 건물 맨 꼭대기 층이 제일 비싸더라며 우리도 곧 그렇게 된다고 하시더라. 아파트 중간 층이 제일 비쌀 때였다. 근데 곧 아버지 말씀대로 되더라, 하하!”
-IMF와 테크 버블, 글로벌 금융 위기를 목격한 것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큰 공부’였다고 했다.
“박사과정 때 다닌 부동산 리서치 회사 PPR에서 세계 주요 도시의 오피스와 상업용 부동산 분석 모형을 개발하고 컨설팅을 담당했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공실률, 임대료 가격, 투자 수익률, 거래 건수를 데이터로 가지고 있는 회사라 박사 논문을 쓸 때 큰 도움이 됐다. 골드만 삭스, 리먼 브러더스가 이 회사 고객이었는데, 2008년 말 부동산 거품으로 미국 전체가 흔들리는 걸 보면서 시장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내재적 감시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총평한다면?
“무능의 절정이었다. 당시 상승장을 안정화시키긴 힘들었겠지만, 그렇더라도 정부 정책엔 원칙이란 게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주택 보유를 늘리는 게 좋은 나라다. 그런데 수요를 잡겠다는 목적으로 LTV(주택 담보대출 비율)를 규제하는 등 시장을 왜곡해 그 피해를 서민과 중산층이 봤다.”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능한 한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LTV, DTI(총부채 상환 비율) 같은 정책도 함부로 바꿔선 안 된다. 뭣보다 임대차 3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 문 정부 때 만들었다고 흔들면 안 된다. 서민을 위한 주거 복지 확충 관점에서 임차인을 돕는 제도는 꼭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잘한 것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로 주거 복지 대상을 중산층으로 확대한 것이다.”
-역대 대통령 중 누가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평가하시나.
“노태우 대통령. 1988년 강남 아파트 값이 100%씩 급등할 때 분당 신도시를 개발해 집값을 안정시켰다. 도시 광역적 차원에서 신도시를 개발해 연결할 계획을 세우고 밀어붙인 대통령이다. 서민 주거 복지 차원에서 당시 전세 계약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도 노태우다.”
-아파트 값은 언제까지 얼마나 떨어질까.
“적어도 올해는 계속 떨어진다. 내년까지 강남을 비롯한 서울의 입주 물량도 많아서 반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당신이 무주택자라면 언제, 어느 지역을 주시할까.
“일단 올해는 안 산다. 조심스럽지만, 내년 중후반이 바닥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없이 떨어지는가 싶다가도 주택 거래량이 한번 터지는 시점이 온다. 그때를 기다려도 늦지 않다. 먼저 바닥을 치는 건 강북일 확률이 높다.”
-타격이 큰 ‘영끌족’은 어찌 해야 하나.
“팔지 말고 버텨야 한다. 전세를 줘서 주거 금융 비용을 줄이고 자기는 빌라나 교외로 나가서 투 잡을 뛰어서라도 견뎌야 한다.”
-최근 펴낸 <부동산 트렌드 2023>에서 핫플 지역을 7곳 꼽았더라.
“상권으로는 6호선 라인, 그리고 을지로 신당 왕십리 성수동으로 이어지는 2호선 상권이 굉장히 좋아질 거다. 특히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신당동은 중앙시장이란 콘텐츠와 적산 가옥, 한옥들이 남아 있다. 이효리도 샀다(웃음). 2~3년 내 100% 핫플 된다.”
-교수 하지 말고 부동산 컨설팅을 하시지.
“나는 학생들 가르치며 함께 연구하는 게 즐겁다.”
-부동산 부자인가.
“내 신조가 주택으로 돈 벌지 말자다. 주거 복지, 혁신 주장하는 인간이 집 많이 갖고 있으면 웃기지 않나. 청년 주거 복지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 셰어하우스(공유 주거)를 지어 운영 중이다. 내가 한국에서 셰어하우스를 가장 처음 도입한 사람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