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다닌다고 했으니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어린아이 하나가 쭈뼛거리며 편의점에 들어왔다. 뒤이어 아이를 떠밀 듯 30대 초반쯤 되는 여성이 들어왔다. “사장님이세요?” 그렇다고 했더니 여성은 주머니에서 작은 장난감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초콜릿 과자 안에 들어있는 장난감이다. “이거 여기서 파는 거 맞죠?” 아이에게 왜 이런 걸 팔았느냐고 따지려는 엄마인가 했더니 이어지는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 “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아이를 내려보며 채근했다.

두 사람이 나가고 CCTV를 확인했다. 아이들 네댓명이 몰려 들어와 떠들썩한 화면에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아이들끼리 편의점에 오면 으레 그런다. 이것 들었다 저것 만졌다 조몰락거리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가, 서로 권했다가, 밀치고 당기고, 넋이 나갈 정도다. 내 근무 시간이 아니었지만 화면 속 풍경에 음성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아이들은 앞다퉈 계산을 치렀고, 먼저 뛰어나가는 아이를 뒤따라 다른 아이가 뛰어나갔다. 저녁에 엄마랑 다시 찾아온 아이는 마지막 아이였던 것 같다. 손에 무언가를 든 것 같은데 화면이 흐릿해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들고 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나가니 마음이 급해 그랬겠지. 계산 같은 건 바람결에 잊었을 것이다.

일러스트=김영석

엄마는 초콜릿 값을 치렀다. “죄송합니다.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니 마트에서 샀다고 하는데 돈은 그대로 있어서요.” 그래서 아이를 앞세워, 그날의 행적을 좇아 편의점까지 왔던 것이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텐데요, 뭘….” “다시 죄송하다고 말씀드려!”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내가 겸연쩍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색하기만 했다.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여성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하고 가게를 나갔던 것 같다. 젊은 엄마인데 꽤 다부진 인상이었던 것만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10년 전 천호동 주택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때 겪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 이유는 엊그제 비슷한 일을 또 겪었기 때문이다. 네 살짜리에게 돈을 주며 편의점에 보냈는데 5천원권 지폐를 고스란히 다시 들고 왔다며 “사장님, 저희 아이가 실수를 한 것 같아요” 하고 찾아온 엄마가 있었다. 지금 운영하는 편의점엔 이런 일이 좀 잦다. 식당 옆에 있는지라 부모가 식사하는 사이 아이들에게 ‘편의점 투어’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은데 꼬마 손님들이 값을 치르는 걸 깜빡하고 무작정 뛰어나가는 것이다. 계산대 안에 있는 우리는 다른 손님에게 신경 쓰느라 그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있다가 부모의 방문으로 알게 된다. “저희가 살피지 못한 탓이죠.” 부모에게 말하면 정색하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한다. 그럴 때마다 40여 년 전 기억이 나를 소환한다.

여덟 살 때였나, 어릴 때 나는 물건을 훔쳤던 적이 있다. 무엇을 훔쳤는지, 왜 훔쳤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그 물건의 가격이 50원이었고, 학교 근처 문구점이었던 것만 기억에 분명하다. 엄마에게 귀를 잡혀 끌려가 문구점 아저씨에게 싹싹 빌었고, 그날 저녁에 회초리가 부러지도록 맞았다. “50원이 필요하면 달라고 하면 되지, 왜 남의 것에 손을 댔느냐.” 엄마가 꾸짖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내가 너를 도둑놈으로 키웠던 것이냐.” 울부짖던 표정도 생생하다.

정말 왜 훔쳤고 무엇을 훔쳤는지는 조금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되돌아 헤아려 보니 내가 무척 억울하게 생각했던 느낌이 또렷하다. 일부러 훔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도둑놈’이라는 세 글자가 머리에 맴돌아, 이날 이때까지 ‘남의 것’에 손대는 일은 그렇게 마음먹는 행위 자체를 질색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계명이지만 그렇게 깨달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시절엔 적잖이 맞으면서 컸다. 그렇다고 요즘 아이들에게도 체벌이 필요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쨌든 그리 엄격한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지금도 무슨 일을 하든 한번 돌아보게 되고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강산은 바뀌었어도 어머니들의 마음은 40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존재 자체였다.

10년 전 일이니 천호동에서 엄마랑 같이 우리 편의점에 찾아왔던 아이는 지금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바르고 착실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갖는다. 그의 미래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큰 도둑질을 하고도 당당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아이의 작은 실수 하나에도 죄송스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돌아본다. 방금 전 어머니에게 전화해 여쭸다. “그때 제가 뭘 훔쳤던 거예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씀하셨다. “네가 훔치긴 뭘 훔쳐야? 너같이 착한 놈이 어딨었다고….” 어머니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