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영석

지금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둘러싼 논의가 한창입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특별시 등 광역지방자치단체나 지하철 이용자 등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다양한 견해가 넘쳐납니다. 모든 견해가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무임승차 제도가 처음 도입된 1980년 당시에는 만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요금을 50% 할인해주었습니다. 이듬해 기준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되었고,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65세 이상 전액 면제’로 변경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지원이었습니다. 당시 대한노인회 회장이 대통령의 장인이었으니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되기도 합니다. 1980년대 초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 정도였지만, 지금은 17%를 넘어섰습니다. 그간 평균수명도 20년 정도 늘어났습니다. 지하철공사의 적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는 총리로 취임한 초기에 기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예를 들어 장차 복지제도의 나아갈 방향을 언급하였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지원해야 한다는, 즉 국민 개개인의 형편에 따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에 대한 지원을 줄여 이를 여유 없는 계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선별적 복지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건강보험이나 실업보험과 같이 제도의 취지상 경제적 여유 유무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적용해야 하거나, 시대 상황이나 국가 재정 형편의 변화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원해도 무방할 경우에 행하는, 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필요성이나 가치를 무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를 당장 폐지하자는 취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거룩한(?) 뜻은 오간 데 없이 노인 단체와 야당으로부터 십자포화 공격을 받았습니다. 저의 본래의 뜻을 밝히고 오해와 혼란을 드린 것을 사과하여 사태는 바로 진정되었으나, 저의 복지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복지가 포퓰리즘의 정치와 뒤섞이면, 남유럽이나 남미의 일부 국가에서처럼 재앙이 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무분별한 복지 포퓰리즘은 국가 부채를 증대시켜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훼손시킵니다. 국가 부채비율의 증가는 국가 신용 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주어 국채 금리 상승과 해외 차입 차질을 가져옵니다. 그리되면 원화 가치는 떨어지고 외국 자본이 떠나면서 금융시장은 불안정해집니다. 우리나라는 해외 의존도가 높고 원화는 달러, 유로화나 엔화와 달리 안전 자산이 아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복지 증대와 그에 따른 재정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증세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빚을 내어 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자손들 명의의 신용카드를 부모나 조부모가 멋대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비유는 2010년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한 말인데, 저는 이를 곧잘 인용하였습니다. 상속인인 개인은 상속을 포기하면 피상속인의 채무를 상속하지 아니하며, 한정승인(限定承認)을 하면 상속받은 재산 범위 내에서만 채무를 상속하지만, 국가 채무는 다음 세대가 꼼짝없이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장난삼아 챗GPT에게 이 문제를 물었더니,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는 ‘지하철공사의 영업적자와 노인 복지 증진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공자 말씀으로 회피성 답변을 하였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선별적 복지의 편에 선 것으로 보입니다만. 물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충분하면 보편적 복지의 대상으로 삼아도 무방하지만, 우리 형편은 이에 이르지 못했고 오히려 현행 정책이 서울특별시 등 재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득 수준과 나이 등을 고려하여 무임승차 비율을 줄이거나 할인을 해주는 등 정책을 재설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전이라도 자진하여 요금을 내고 타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후세대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