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 인간과 인조인간이 존재하는 가상의 미래에서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라위자야)네 가족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카의 아빠 제이크(콜린 패럴)와 엄마 카이라(조디 터너스미스)는 중국계인 미카를 입양하고는 양육을 위해 역시 중국계 인조인간인 양(저스틴 H 민)을 중고로 사 온다. 그렇게 네 식구가 평온하고도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춘다. 영화에서 ‘테크노 사피언스’라 부르는 인조인간은 작동을 멈추면 부패할뿐더러, 미카가 오빠로서 크게 의지하는 양이기에 최대한 빨리 수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비쌀 게 뻔한 비용에 난감해하던 차, 제이크는 이웃의 소개로 저렴한 수리공을 찾아간다.
양을 진단한 수리공은 내부에 감시용 ‘스파이웨어’가 설치되어 있다며 작은 장치를 꺼내 제이크에게 준다. 그러고는 양을 수리하는 일이 능력 밖이라며 제이크에게 또 다른 기술자를 추천한다. 하지만 찾아간 테크노 사피엔스 박물관에 기술자는 없었으니, 제이크는 대신 연구자 클레오(사리타 초드리)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장치를 보여준다. 알고 보니 그건 ‘스파이웨어’가 아닌 기억장치로, 양이 매일 일상의 일부를 영상으로 저장하는 부속이었다.
한국계 미국인 감독 코고나다(드라마 ‘파친코’ 연출)의 영화 ‘애프터 양’은 기억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다. 제이크는 양과 기억장치를 박물관에 팔기로 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영상으로 기록된 양의 기억을 들여다본다. 그 속에는 놀랍게도 양이 어떤 여성과 연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는 실마리가 들어 있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기억의 주인공은 복제 인간 에이다(헤일리 루 리처드슨). 그는 양이 미카네 가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야기해주며 함께 박물관을 찾아간다.
그런데 왜 양은 에이다와 연애하게 되었을까? 양의 기억을 속속들이 들여다본 제이크는 몇 갑절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양이 이미 한 인간의 삶 이상에 해당하는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며 먼 옛날 또 다른 에이다라는 여성과 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알고 보니 그는 양이 현재 만난 복제 인간 에이다의, 자동차 사고로 요절한 고모 할머니였다. 말하자면 양은 오래전 자신이 좋아했던 여성과 똑같은 복제 인간을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 것이다.
“제게도 차(茶)가 그냥 지식이 아니면 좋겠어요. 차에 대한 진짜 기억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의 기억에는 차 전문점을 운영하는 제이크와 함께 나눈, 깊이 있는 대화도 있었다. 양은 차에 대한 지식을 줄줄 읊을 수 있지만 정작 맛은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제이크는 이 대화의 기억을 바탕으로 양이 인간처럼 삶을 누리고 즐기지 못하는 데 대한 아쉬움을 품고 살아오지 않았나 추측한다.
사실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때로 섬세한 차맛을 느끼기란 어려운 일이다. 음식 평론가인 나에게도 차는 어떤 식음료보다 진입 장벽이 높게 다가온다. 워낙 무궁무진한 세계인 데다가, 늘 마시는 커피에 관심을 쏟느라 시간과 노력을 제대로 배려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을 받더라도 아는 체조차 하지 않고 대신 책을 한 권 권한다. 바로 ‘차쟁이 진제형의 중국차 공부(이른아침)’이다. 차 관련 에세이 종류보다는 확실히 붙임성이 떨어지지만, 종주국 가운데 하나인 중국의 차와 문화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가르쳐준다.
제이크와 카이라는 틈틈이 양의 기억을 들여다보며 에이다가 말해준,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을 절감한다. 한동안 너무나도 당연한 존재, 또한 어쩌면 인간이 아니었기에 대체 가능한 개체라 여기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음을 새삼 느낀다. 그러다 보니 박물관에 그와 기억장치를 파는 것 또한 마뜩잖게 느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억도 보전될 수 없음을 알기에 씁쓸함과 망설임 속에서도 결정을 번복하지 않는다. 그러고 어느 새벽, 제이크와 미카는 거실에 나란히 앉아 양의 존재를 기억하며 고마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