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새 학기가 되면 떠오르는 ‘웃픈’ 삽화가 있습니다. 마흔이 다 돼 낳은 늦둥이 딸애 손을 잡고 도란도란 얘기하며 피아노 학원에 가던 길. 마주 오던 한 어르신이 반색을 하며 말을 겁니다. “할머니랑 손녀가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걸어오는 모습이 참 예쁘네요.” 순간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며 제 손을 꽉 잡더군요. 저는 민망하기도 하고 웃음도 나와 “할머니 아니고 엄마예요” 했지만 귀 어두운 어르신은 이미 지나간 뒤였습니다.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니 할머니로 오해받을 만도 했습니다. 3월 꽃샘추위였던 데다 부스스한 머리 감추려고 꽃무늬 털모자에 목도리까지 두른 뒤 갈색 스웨터를 껴입었으니까요. 딸애가 눈을 부릅뜨고 말합니다. “저 할아버지 나빠. 그리고 이 모자 절대 쓰지 마. 진짜 못생겼어.”
그래도 아이는 또래 엄마들보다 열 살은 늙은 엄마가 학교에 오는 걸 좋아합니다. 참관수업에 학부모 총회까지 꼭 오라고 신신당부합니다. 못생긴 엄마라도 뒤에 서 있으면 든든해서일까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직업인 줄도 모르고ㅜㅜ. 한번은 학부모 총회가 열리는 아이 교실에 앉아 기사를 마감한 적도 있습니다. 명품 가방은 없지만 젊고 세련된 엄마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제 딴엔 가장 공들여 입고 나선 날, 노트북 펴고 열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지요.
오늘 자 ‘이야기 할머니들’ 인터뷰를 읽으며 여러 번 웃었습니다. 제 꿈도 ‘이야기 할머니’거든요. 제 아이들에겐 빵점 엄마였지만, 손주들, 아니 우리 동네 꼬마들에게는 최고의 할머니가 되자 다짐했지요. 팔도의 K할매들이 주신 조언도 가슴에 이미 새겨두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것,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꾸짖지 않을 것, 그저 ‘잘하네, 잘하네!’ 찬사를 해 줄 것. 진작에 알았으면 꽤 훌륭한 엄마가 됐을 텐데요. 56세 이상이면 이야기 할머니에 도전할 수 있다니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봐야겠습니다.
이번 주 뉴스레터엔 초등 교사 32년, 유치원 원장 38년을 하면서 평생을 교육자로 산 김득실 원장 이야기를 배달합니다. “사랑을 주면 줄수록 아이는 빛난다”고 말하는 90세의 할머니는 “ ‘네가 제일 예뻐’라는 말 한마디는 말썽꾸러기도 변하게 한다”고 일러주시는군요. 한자 익히고 애국가 가르치는 별난 유치원의 원장님! QR코드에 휴대폰을 갖다 대거나, 인터넷 주소창에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45743을 넣으면 구독 창이 열립니다. ‘이메일 주소’와 ‘존함’을 적고 ‘구독하기’를 누르면 이메일로 뉴스레터가 날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