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토끼와 자라’ 이야기를 해줬더니 5살 아이들이 자기네끼리 속닥거려요. ‘야, 근데 물속에 집이 있는 거 진짜야? 이상하지 않아?’”
강원도 홍천에서 8년째 ‘이야기 할머니’로 활동하는 양인옥(65)씨가 이 얘기를 꺼내자, 옆에 앉은 다른 할머니들이 박꽃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14일, 전국에서 가장 이야기 잘한다는 ‘이야기 할머니’ 5명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모였다. 양인옥씨를 포함해 서울 지역에서 10년째 활동하는 이인수(80)씨, 경남 진주에서 온 8년 차 유명숙(72)씨, 전남 영광에서 온 4년 차 박선옥(70)씨, 충북 충주에서 활동하는 5년 차 한미자(63)씨다.
이야기 할머니는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노년층을 선발·교육해 전국 유아교육 기관에 파견, 아이들을 대상으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업이다. 전국 평균 경쟁률이 4.4:1로, 지금까지 6490명이 배출됐다. 선발된 이야기 할머니는 매주 기관 2~3곳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활동비 4만원을 받는다. 지난해는 전국 8617개 기관에서 52만명의 아이가 이야기를 들었다. 오는 6월엔 대한민국 최고의 이야기 할머니를 겨루는 경연 예능이 tvN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베테랑 ‘이야기 할머니’답게, 이목이 집중된 순간 양인옥 할머니가 얘기를 이어갔다. “그런 아이들이 6살 2학기가 되니, ‘할머니 우리 집에서 하루만 좀 자고 가요’ 그래요. ‘얘, 할머니는 할아버지 있어서 안 된다!’ 했죠, 하하!”
◇할머니를 공주로 그려 주는 아이들
–어떻게 해서 이야기 할머니가 되셨나.
이인수(이하 이): “나는 다른 아이보다 10% 정성을 더 쏟아야 하는 특별한 아이를 키웠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다, 2012년부터 내 시간을 갖게 되면서 구연동화, 수지침 등에 시간 나는 대로 계속 도전했다. 그러다 같이 동화 구연을 배웠던 친구에게 ‘이야기 할머니’ 소식을 듣게 됐다. 한 번 떨어졌다가, 두 번째에 붙었다, 하하!”
유명숙(이하 유): “나도 재수생이다(웃음). 2002년부터 수필을 쓰고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가, 글 쓰는 걸 좋아하니 이야기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미자(이하 한): “가정주부로 지내며, 배식 봉사도 하고, 좋아하는 사진도 찍으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보육학을 전공했기에 늘 아이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아이들에게 사랑 주는 일은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양인옥(이하 양):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독서 지도를 했다. 내가 지내는 곳은 강원도 홍천에서도 오지라, 유아교육 기관에 외부 강사들이 들어오기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야기 할머니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박선옥(이하 박): “공직 생활만 40년 넘게 했다. 어떻게 하면 제2의 인생을 가치있게 보낼까 고민하다 도전하게 됐다.”
–이야기 할머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양: “시골에서 자식 다 키운, 그러나 아직 손주는 없는 노부부끼리 할 얘기가 뭐가 있겠나. 무미건조하게 지내다가, 이야기 할머니 하면서 오히려 내가 일주일 치 이야깃거리를 벌어 온다. 남편한테 일주일 동안 아이들하고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삶이 풍성해졌다. 요즘은 남편이 내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늘도 여기까지 우리 매니저가 데려다줬다, 하하!”
박: “아이들은 머리 모양만 조금 바뀌어도 금세 ‘할머니 파마하셨네요!’ 한다. 옷도 예쁘다고 칭찬을 얼마나 잘하는지 모른다(웃음). 유아기 특성상 조금 산만한 것 같아도, 귀로는 다 듣고 대답도 정말 잘한다.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아이들이 나를 그려준 그림이 있다. 근데 실제보다 너무 예쁘게 그려준다(웃음). 누가 나에게 이렇게 왕관을 씌워주겠나.”
이: “난 이렇게 짧은 머리에 80대 노인인데도, 아이들 그림 속 나는 긴 생머리에, 드레스 입은 공주다, 하하!”
◇기다려 주고, 칭찬해 주니 변하더라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변하는 것도 느끼시나.
한: “혼자서 율동도 안 따라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아이가 있었다. 늘 그 아이와 눈을 마주 보며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애들 안 볼 때 안아주고, 칭찬도 많이 했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맨 앞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듣더라. 유치원을 졸업할 땐 내게 묻더라. ‘할머니 집 어디예요? 무슨 아파트 살아요?’ 아이 눈을 보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와 만난 작은 시간들이 아이에게 기쁨이 된 것 같아 뭉클했다.”
유: “한번은 동네 목욕탕에서 아무개 엄마라고 하며 ‘이야기 할머니시죠?’ 하더라(웃음). 내가 그 아이 유치원 졸업할 때, 이야기 잘 들어줘서 고맙다는 내용과 함께 너의 장점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써 준 적이 있다.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됐는데도 아직 그걸 책상에 붙여놓고 있다는 거다. 실은 그 아이 때문에 유치원 선생님들이 고생을 좀 했다(웃음). 삐뚤어지지 않고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 편지를 적어 줬는데, 아직 그걸 간직하고 있을 줄이야.”
–힘든 점도 많으실 텐데.
이: “매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새 이야기를 받는다. 10년을 해도 베테랑이란 건 없는 것 같다. 새 이야기를 입으로 읽고, 이걸 녹음해서 테이프로 수시로 듣는다. 일주일에 수백번은 듣는 것 같다. 그래야 산만한 아이들 앞에서도 술술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막힐 때만큼 속상할 때가 없다.”
박: “아이들은 솔직하다. 재미없으면 금방 ‘할머니, 오늘은 재미없는데 언제 끝나요?’ 한다(웃음).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아이들 앞에 설 수 없다.”
–아이들을 집중하게 하는 비결이 있으신지.
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게 첫째다. 돌아다니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를 보면, 무관심한 척하며 눈은 계속 그 아이를 따라가다, 내 주변에 오면 얼른 옆에 앉힌다. 그 아이를 가만히 다독다독거리면서 이야기하면, 그다음 주엔 으레 거기가 내 자리다 싶어 거기에 또 앉아 있는다. 이상행동 하는 아이 중엔 실은 외로워서 그러는 아이가 많다.”
한: “이야기 할머니는 교육 신조가 ‘무릎 교육’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꾸짖지 않는다는 게 첫째 원칙이다. 내가 잘 쓰는 건 ‘찬사법’이다. 말썽부리는 아이들에게도 머쓱할 정도로 ‘잘하네, 잘하네!’ 하면서 찬사를 해준다. 정말 효과가 있더라.”
◇올해 우리 동네 유치원엔 한 명도 안 와
–자녀 키울 때 생각도 나시겠다.
양: “이야기 할머니 하면서 아이들 관찰하는 눈이 많이 생겼다. 그런데 내 아이 크는 건 이렇게 객관적인 눈으로 보지 못했다. 뒤늦게 ‘아, 저럴 땐 내 아들도 속상했겠구나’를 깨닫는다. 주변 지인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아이들한테 잘하라더라, 하하!”
유: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 키울 땐 ‘이렇게 컸으면’ 하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이 : “그만큼 이제 우리 마음에 여유가 생긴 걸 수도 있다.”
–저출산이 현장에서도 느껴지시나.
유: “올해 내가 나가는 유치원엔 신입생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다. 한 반에 7명 있는데, 학생 중 2~3명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다.”
양: “홍천도 올해 어린이집 5세 반이 3명뿐이다. 우리 땐 셋 낳은 사람은 부끄러워서 말도 못 하고, 건강보험 혜택도 안 줬다. 몇 십 년 만에 이렇게 세상이 바뀔 줄이야.”
박: “영광은 합계출산율이 전국 1위인데도(1.81명), 면 단위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계속 통폐합되고 있다. 동창생이 5명밖에 없는 학교엔 보낼 수 없다고 해, 읍 단위에만 아이들이 몰린다.”
한: “충주는 시내 유치원도 한 반에 15명 정도다. 유치원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줄어드는 게 매해 보인다. 그래도 워낙 젊은이들 사는 게 치열하니 미안해서 아이 낳으라고 말 못 하겠더라.”
박: “서울 사는 아들한테 둘째 낳으라고 하니, 집이 좁아서 못 낳는단다. 워낙 서울 집값이 비싸니. 아이 낳으면 국가에서 다 키워준다는 정도가 돼야 젊은이들이 마음을 바꿀 것 같다.”
–이야기 할머니를 하며 바뀐 점이 있나.
유: “남편이 내가 이야기 할머니 하면서부터 표정도 온화해지고 인사성도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지나가다 애들만 보면 그렇게 막 손을 흔든단다(웃음).”
박: “얼마 전 내가 칠순이었다. 아들·며느리가 제주도 여행 계획을 세워왔는데, 도저히 안 되겠더라. 이야기 할머니를 결석할 수가 없어, ‘미안한데, 다음으로 미루자’고 했다. 벌써 예약까지 다 해놨다며 입이 이만큼 나왔더라. 그래도 어쩌겠나. 지금은 이야기 할머니가 내 일 순위인데. 여행은 됐으니 용돈만 달라고 했다, 하하!”
양: “이야기 할머니 하기 전엔 ‘그래, 그랬구나’ 이런 단어를 써보질 않았다. 이야기 할머니 하면서 이런 말이 습관이 되니까, 우리 아들하고 대화가 잘되더라. 아들이 무슨 얘기 하면 일단 ‘그랬니?’ 하니까(웃음).”
한: “우리 나이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몸도 마음도 안 따라 준다. 그런데 이야기 할머니를 하며 일주일 내내 공부하며 매달린다. 우리가 다 고급 인력이 됐다, 하하!”
이: “아직도 마스크를 끼고 활동하는데도 아이들은 신기하게 다 알아본다. 동네 마트에서도 저 멀리서부터 ‘이야기 할머니’ 하고 달려와 안긴다. 내겐 이 일이 ‘인생의 로또’ 같다. 너무너무 추억거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