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건물 4층에 해당하는 16m 높이의 거대한 책 다섯 권이 양옆 건물 사이에 꽂힌 듯한 이색적인 외관이 멀리서부터 눈길을 잡아챈다. 지난 4일 정식 개장 전부터 화제가 된 이 건물의 이름은 ‘아테네학당’. 1층에는 헌책방 3곳이 있고, 2~4층은 카페가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아테네학당 김대권(48) 대표가 애초 책방골목에 있는 낡은 건물을 사들인 건 원룸 오피스텔을 짓기 위해서였다. 건축·인테리어 업체도 운영하는 김 대표는 충남서점·우리글방·국제서점이 입주해 있던 기존 건물을 허물고 원룸 52~54개가 있는 오피스텔 건물을 새로 지어 올릴 계획이었다. 설계까지 마치고 구청에 인허가 서류를 접수하기 직전, 김 대표는 돌연 마음을 바꿔 오피스텔 신축 계획을 백지화했다. 건물을 부수는 대신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왜 적지 않은 이익이 예상되는 오피스텔을 포기하고 ‘돈 안 되는’ 헌책방을 지키기로 했을까. 그 이유를 들으러 지난 14일 부산 책방골목으로 그를 찾아갔다.
◇손해 보면서까지 헌책방 지킨 이유
-오피스텔을 지으려던 계획을 왜 포기했나.
“2021년 11월 오피스텔을 지으려고 건물을 샀다. 지난해 초 소유권을 이전하고 오피스텔 설계를 마무리하고 인허가 접수를 시키려던 시점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이 없어진다’는 기사가 신문, 방송 뉴스로 빵빵 터졌다. ‘이게 뭐지?’ 싶었다. 책방골목이 부산시 미래유산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우리를 막으려고 ‘보수동 책방골목 보존과 미래 포럼’도 결성됐다. 미리 알았으면 건물을 안 샀을 거다(웃음).”
-그래도 밀어붙였으면 헌책방 내보내고 새 건물을 올릴 수도 있지 않았나.
“물론 그랬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책방골목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 2주쯤 고민하다 지난해 4월 중순쯤 헌책방을 내보내지 않고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결심했다. 리모델링 설계를 마치고 6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지난 2월 마쳤다.”
-주변에서 반대는 없었나.
“회사 직원들, 투자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오피스텔로 30억원 정도 이익을 예상하고 있었다. 내가 공부만 하다가 사회에 늦게 나왔다. 좋게 말해서 때가 덜 탔달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 같다.”
-사회에 늦게 나왔다니.
“부산에서 대학 졸업하고 서울 신림동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오래 했다. 결국 안 돼서 32살에 사회에 나왔다. 나이가 드니까 갈 데가 없었다. 만만한 게 부동산 쪽이었다. 부동산을 하다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갔다. 부동산업을 계속 하면서 2~3년 인테리어를 배워 업체를 차렸고, 2017년 지금의 회사(신양건설)를 세웠다.”
◇그림에서 현실이 된 아테네학당
김 대표는 “건물을 소개해 드리겠다”며 앞장섰다. 1층 입구에 들어서자 로비에 높이 2.3m 아폴론 전신상이 보였다. 그는 “고철·폐품·잡동사니를 소재로 작품을 만드는 정크아트(Junk Art) 작가 김후철씨에게 의뢰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4층에는 역시 김 작가가 작업한 아테나 전신상이 놓여 있다.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에 있는 라파엘로의 벽화 ‘아테네학당’을 보면 작품 양쪽 끝에 아폴론과 아테나 대리석상이 있다. 처음엔 그림 속 대리석상과 비슷하게 석고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지만, 헌책을 다시 본다는 의미를 담으려고 정크아트로 눈을 돌렸다. 평소 로봇을 주로 제작하던 김 작가도 의뢰를 받고 잠시 놀랐지만 취지를 말씀드리니 흔쾌히 수락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가운데가 뻥 뚫린 카페가 등장한다. 4층 천장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김 대표는 “일당 주고 미대생들을 불러다 그렸다”고 했다. “건물 내부 벽들도 미대생들이 붓으로 아트 물감을 칠했다. 헌책과 어울리는 낡은 듯하면서도 중후한 색감과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3층에는 라파엘로의 ‘자화상’이 벽에 걸려 있었고, 4층에 올라가니 그림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인·학자 54명 중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피타고라스·하이페티아 5명의 흉상이 아테나 전신상과 함께 전시돼 있었다. 건물 투어를 마치고 2층으로 내려와 김 대표와 마주 앉았다.
-건물 외관을 책으로 한 이유는.
“오피스텔 지으려다 포기하고 지역과 상생하자는 마음을 먹었다. 책방골목에 도움 되는 걸 해야 할 것 같았다. 1층에는 헌책방을 그대로 두되 2층에는 수익성을 위해 카페를 집어넣었다. 책을 세울까, 눕힐까, 덮을까 고민하다가 시공이 용이하면서 임팩트가 있는 디자인으로 결정했다.”
-이름부터 천장화까지 온통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이다.
“오피스텔을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하기로 하면서 책방골목과 어울리면서 그 가치와 상징성에 걸맞은 리모델링 콘셉트를 고민했다. 평소 좋아한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학당’이 떠올랐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자, 인문학자, 과학자들이 학당에 모여서 학문과 이성의 진리를 추구하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만큼 책방골목과 어울리는 콘셉트는 없을 듯했다. 그림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들의 저서 ‘티마이오스’와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각각 들고 있으니 더욱 그랬다. 두 책은 건물 외관에도 그려 넣었다.”
-어떻게 이 그림을 바로 떠올렸나.
“미술을 좋아한다. 사시 준비하던 시절 막바지에는 사실 공부는 별로 안 하고 철학, 미술 분야 책을 많이 읽었다. 인테리어에 반영할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그림을 수시로 본다.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등 미술사 고전들도 읽었다. 여러 작가 중에서 특히 라파엘로가 좋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거장인 라파엘로는 선배 격이던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수없이 모사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확립했다. 아테네학당에 등장하는 고대 철학자들의 얼굴에 자신이 평소 존경한 레오나르도 등 동시대 예술가나 궁정 서기관 등 유명인사들을 그려 넣었고, 사이가 나빴던 미켈란젤로는 비관론자인 헤라클레이토스로 그리는 등 정말 재미난 사람이었다.”
-철학도 좋아하나.
“철학에 관심이 많다. 어려서부터 공부는 좀 못했지만 책을 많이 읽었다. 지금도 독서한 뒤 산에 가서 읽은 내용을 되새김질하고 사색하는 것을 즐긴다. 무언가를 깨우치는 쾌감이 정말 좋다. 사물의 본질을 보고 싶었고, 아름다움이 뭘까, 세상은 어떻게 구성됐을까 등 근본적인 질문을 좋아했다. 그리고 미술도 크게 보면 철학의 범주에 들어간다. 미학(美學)이 가장 어려운 철학이라잖나.”
-54명 중 5명만 끄집어내 흉상으로 전시한 이유는.
“밋밋하지 않게 꾸미려고 흉상을 만들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알 만한 유명한 인물들이 좋을 듯해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를 선정했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하이페티아는 그림 속 유일한 여성이라 의미가 있다고 봤다. 다섯 명으로 한정한 건 금액이 거기에 맞았기 때문이다(웃음).”
◇문화가 돈 벌어주고 밥 먹여준다
김대권 대표가 “우리 카페 시그니처 메뉴”라며 커피와 빵을 쟁반에 담아왔다. 커피의 이름은 ‘밀다원’. 6·25전쟁 당시 부산 광복동에 있었던 다방으로, 김동리·황순원·이중섭·김환기 등 당시 부산에 피란 왔던 문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에스프레소 커피 원액에 물을 적게 부은 밀다원은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의 중간쯤 되는 맛이다. 과거 밀다원에서 내던 것처럼 우유와 크림을 반씩 섞은 ‘하프앤하프’와 각설탕이 딸려 나온다.
책을 펼친 모양으로 구운 빵은 ‘보수동책빵’이다. 페이스트리에 사용되는, 종이처럼 얇은 파이지를 겹쳐 책 모양을 만들고 초콜릿과 견과류, 과일절임으로 글씨와 그림이 인쇄된 것처럼 표현했다. 김 대표는 “카페를 열어 영업하는 건 문화공간이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테네학당이 돈이 될 거라고 보나.
“문화가 곧 돈이라고 본다.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서 ‘부강한 나라보다 문화강국이 되고 싶다’던 김구 선생의 말을 제일 좋아한다. 문화는 아무리 전파하더라도 누군가 다치거나 손해 보는 일이 없지 않나. 문화로는 남을 해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돈 벌 수 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 부동산 경기가 1년 만에 급격하게 나빠졌는데, 만약 오피스텔을 지었으면 분양이 잘 안 됐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금보다 훨씬 큰 손해였을 거다.”
-커피를 얼마나 팔아야 30억을 벌까.
“얼마 전 경남 창원 한 건물주에게 리모델링 의뢰가 들어왔다. ‘무조건 이렇게만 지어달라’더라. 아테네학당이 일종의 모델하우스가 된 셈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건물 짓거나 발주할 때 믿을 만한 사람인지가 중요한데, 나 같은 경우는 이미 검증이 끝나버린 셈이다(웃음).”
-아테네학당뿐 아니라 책방골목 전체에 도움이 될까.
“옆 건물 1층 가게 자리가 3년 가까이 비어 있었는데, 얼마 전 햄버거 가게가 들어오기로 계약했다고 한다.”
아테네학당을 나와 건물 뒤편 책방골목에 갔다. 보수동 1가 대청사거리에서 보수사거리를 조금 지나는 200m가량의 좁은 골목길에 서점들이 빼곡하다. 6·25전쟁 때 피란민들은 생계를 위해 헌책을 내다 팔았고, 노점이 하나둘 늘고 가게가 모이면서 책방골목이 형성됐다. 1970~1980년대 70개 넘는 서점이 번성했으나 대형·온라인 서점 등장 등으로 침체가 깊어지며 지금은 30곳 정도가 남았다. 원형이 많이 훼손됐지만 그마저도 사라질 위기다. 얼마 전에도 책방골목 초입에 있는 건물이 재개발을 위해 헐리면서 책방 여럿이 사라졌다.
아테네학당 1층에 있는 ‘충남서점’이 바로 이 헐린 건물에서 2년 전 옮겨왔다. 충남서점 남명섭 대표는 “이 건물도 오피스텔로 바뀐다는 소식을 듣고 ‘10만 권 넘는 장서를 또 어디로 어떻게 옮기나’ 고민했는데 그대로 있게 돼 다행”이라며 “아테네학당이 언론과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에는 확실히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아테네학당이 책방골목에 가져온 활기다. 따뜻한 봄바람이 골목을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