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독자를 만난다. 계산 치르고 상품을 봉투에 담아 건넸더니 손님이 싱긋 웃으며 말한다. “신문에 쓰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찌릿, 온몸에 전기가 흐르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감정에 색이 있다면, 두둥실 날아갈 듯한 푸른 물감과 수줍어 숨고 싶은 분홍 물감을 뒤섞어 놓은 순간이랄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할 틈도 없이 손님은 보랏빛 미소를 남겨 놓고 떠났다.
때로 등장인물을 만나기도 한다. 언젠가 어느 칼럼에 편의점에 들어와 상품을 고르는 사이 쉼 없이 누구와 통화하면서 ‘이건 어때? 저건 어때?’라고 현장 중계를 하는 손님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신문이 나간 다음 어느 손님이 “그거 제 이야기 아니에요?”라고 물어 움찔했던 적이 있다. 내용에 등장하는 인물의 경우 당사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묘사를 약간 비틀어 나름의 블라인드 처리를 하는데, 우리 편의점의 손님이 워낙 고정된 탓일까, 금방 알아본 것이다. 죄송하다는 변명을 전할 틈도 없이 손님은 “재밌게 잘 읽었어요”라는 말로 도리어 응원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때로 열성 팬(?)을 만나기도 한다. EBS에서 라디오 중국어 강좌를 진행하는 홍상욱 교수는 내가 그의 강의를 열심히 듣는 ‘팬’이었고, 내가 쓴 책에 그런 사실을 소개한 인연으로 홍 교수가 내 팬이 된 ‘서로 팬’ 관계인데, 홍 교수의 팔순 노모가 조선일보 열성 독자이기도 하다. “아들이 아는 사람”이 신문에 글을 쓴다고 주말판이 오면 맨 끝장부터 읽어보신단다. 새벽에 꼼꼼히 신문을 정독하곤 ‘이번 주엔 봉달호가 이런 내용을 썼어’라고 알리며 아들에게 구독권을 넘기신다나.
그러다 지난주엔 좀 특별한 일이 있었다고 홍 교수가 알려왔다. 아들에게 신문을 건네며 “이번 봉달호 글을 읽으니 내가 너에게 좀 미안하구나” 하시더라나. 무슨 말씀인가 해서 ‘오늘도 편의점’을 살폈더니 어머니에게 어릴 적 회초리를 맞았던 기억이 에피소드로 실려 있었다. 홍 교수는 웃으며 “그런데 어머니, 왜 저에게 그렇게 회초리를 드셨던 거예요?”라고 짓궂게 물었단다. 어머니 말씀, “그게 나 잘되자고 그랬겠니….” 이제는 교수에, 자식 키우는 아비가 된 아들은 어머니의 거칠고 여윈 손을 꼭 잡아드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가끔은 뾰로통한 독자를 만나기도 한다. 전·현직 자영업자나 편의점 점주 독자들이 그렇다. 내 삶은 이토록 각박하고 힘든데, 편의점엔 온갖 이상한 손님들도 많은데, 왜 그렇게 ‘해맑은’ 이야기만 소재로 삼느냐는 것이다. “좋은 자리에서 매출 좋은 점포를 운영하다 보니 그런가 보다”라고 할퀴듯 말하는 분도 계셨다. 그럴 때 “아이고, 남의 속도 모르고…”라고 맞대응하는 것은 적절한 처세술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어둠을 꾸짖는 사람이 있으면 햇볕을 노래하는 사람도 있어야죠”라고 에둘러 말한다.
이런저런 사람들 가운데 세상을 살아간다. 남몰래 나를 지켜보고 있을 부끄럼 많은 독자가 있고, “그거 제 이야기죠?”라고 따지듯 물으면서도 “잘 읽었다” 응원하는 독자가 있고, “봉 작가 덕분에 어머니랑 한참 옛이야기를 나누었네요”라고 고마움을 전하는 독자 또한 있다. 내가 그에 대해 모르는 것만큼 그도 나에 대해 몰라 한참 엇나간 추측을 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저 그러려니’ 할 따름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그려야 할 일상의 풍경을 담담히 채워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일 뿐. 어느 한쪽에 휩쓸려 지나치게 우쭐할 필요 없고, 다른 한쪽에 매몰돼 더 따뜻한 일에 마음 쏟을 여유를 스스로 포기할 이유 또한 없을 것이다. 세상엔 미워해야 할 사람보다 감사해야 할 사람이 더 많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얼굴 본 지도 오래되었고 ‘어머니의 회초리’ 건을 핑계 삼아 ‘서로 팬’ 홍상욱 교수를 만났다. 방송을 함께 진행하는 송지현 교수까지 뭉쳤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한 접시 사이에 놓고 권커니 잣거니 남자 셋이 수다 삼매경을 이뤘다. 보문시장에서 ‘근대화연쇄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곁에 엎드려 받아쓰기 숙제를 했던 홍 교수의 코흘리개 시절과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태어나 엄한 교육을 받고 자랐던 송 교수의 청소년 시절이 빨강과 파랑으로 뒤섞여 다채로웠다.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라고 사전에 ‘선서’를 하였음에도 이야기는 돌고 돌아 꼭 정치 이야기로 빠졌고, 우리는 세상을 위로하는 소주잔을 씁쓸히 부딪쳤다.
지금쯤 홍 교수의 어머니 이계순 여사님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글을 읽고 계실 테지. 당신 성함 세 글자가 신문에 활자로 실리는 경험은 팔십 평생 처음일 수도 있겠다. 특별한 누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의 이야기를 누구의 이름을 잠시 빌려 전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펜을 듭니다. “이거 내 이야긴데?”라고 느낀 독자가 계셨다면, 맞습니다, 당신 이야기예요. 알고 보면 서로 다를 것 없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일상이 살랑살랑 내 마음을 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