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사형에 처할 만한 정도의 중대한 사건을 재판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형 선고는 한사코 피하고 싶지만, 재판은 법관 개개인이 가지는 주관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가 공감하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헌법이 법률과 함께 재판의 준거로 제시하는 양심의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판은 어느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고, 그렇게 되면 재판은 운수 보기가 되고 국민의 법원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것입니다. 저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사형 선고를 피하였기에 나중에 검찰총장이 되었던 공판 관여 검사로부터 “부장님 재판부 법전에는 사형 규정이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우스개 섞인 불평도 들었습니다. 부득이 사형 선고를 하는 경우에도 상급심에서 피고인에게 유리한 다른 증거나 양형 요소가 드러나 제 판결이 뒤집히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아마 모든 법관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일러스트=김영석

우리나라는 현재 법적으로 사형제도가 존재하고 60여 명의 사형 확정자가 있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 집행이 없어 국제 기준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형법 등에 사형이 규정되어 있고 가끔 사형 판결이 선고되는 모순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또 지금이라도 사형 집행이 가능하기에 사형 확정자들은 항상 불안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므로 더욱 불안해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로 저는 그럴 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대기업 총수의 후원으로 사실상 가족관계가 끊긴 사형수 모두에게 매월 일정액의 영치금이 지급되고 있다고도 들었습니다. 흉악한 범죄에 분노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을 보내주는 이런 행동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디딤돌입니다.

세계적으로 사형 폐지국이 사형 유지국의 2배에 이릅니다. 미국, 일본 등 일부 선진국도 사형 유지국에 속하지만 사형 폐지국이 문명 국가로 평가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유럽 국가들에서 그러합니다. 사형 폐지가 EU 회원국의 자격 요건입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의 하나로 중요한 요소가 인권이고 그 가운데 하나가 생명권입니다. 인류 역사의 발전에 한 증거가 사형제도 폐지입니다.

G20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저의 집무실로 찾아와 건넨 첫 질문도 한국 사형제도의 현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법제상으로는 지금도 사형이 존재하지만 사실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어 사형 폐지국이라는 설명을 듣고 메르켈 총리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아마 사형이 수시로 집행되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가 문명 선진국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한-EU FTA가 일본이나 중국에 앞서 체결된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더 긴밀한 경제협력국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형 폐지론자는 사형은 기본권인 생명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며, 범죄 예방을 통해 사회를 방위한다는 실질적 증거도 없다는 것을 이유로 듭니다. 사형 유지론자는 선량한 시민과 사회의 방위라는 더 큰 공익을 위해 불가피하며 사형제도가 그 존치에서 오는 공포로 실제로 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양쪽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나 사형제도 존치의 가장 큰 약점은 오판에 의한 사형 집행의 경우 그 회복이 불가능하며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입니다. 사형제도 폐지의 가장 강력한 근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사형 폐지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과반의 국민이 사형제도 존치를 찬성합니다. 사형 폐지 방향으로 여론이 움직이다가도 흉악한 범죄가 발생하면 여론은 다시 사형 유지 쪽으로 변하고 맙니다. 감성에서 벗어난 국민의 진지한 고민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내일,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113년 전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된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