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엔 시골에 살 생각이다. 흔히 말하는 전원주택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다. 그냥 공기 좋은 시골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은퇴하면 할 일이 없어서 우울해진다는데 시골에 살면 집안일만으로도 할 일이 차고 넘칠 것이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부동산 상담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은퇴를 앞둔 어떤 남자가 전화를 걸어 서울 어디에 신축 아파트를 갖고 있는데 대출이 많아 살림이 쪼들린다고 했다. 게다가 곧 은퇴하면 대출금 갚기가 더 어려워질 테니 지금 팔아서 일단 대출금을 갚은 뒤 다시 주택 청약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시골에 집을 살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부동산 전문가는 대뜸 “부인과 상의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부동산에 관한 한 아무것도 하지 마시고 이 프로그램도 보지 마세요. 그리고 시골 살고 싶으시면 아파트는 놔두고 혼자 가서 사세요.”

집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 시골에 산다는 건 죄악 같은 일이다. 시골집 값은 오르지 않는다.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 시골집은 이미 시골이 아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집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저승에 가서나 지어야 하는 걸까.

시골에 산다는 건 끊임없는 일거리와 씨름하며 산다는 것이다. 여름날 저녁 야외 데크에서 바비큐를 해 먹는다는 건 서울 모기와는 체급이 다른 시골 모기에게 다리를 죄다 뜯긴다는 뜻이다. 신경 써서 달아 맨 조명은 죽은 벌레들로 뒤덮이고 수입 외장재로 마감한 벽체엔 거미줄이 진을 친다. 결국 벌레 태워 죽이는 형광등을 달 수밖에 없다.

마당에 잔디를 깐다는 건 남은 인생의 일부를 잔디에 바친다는 것이다. 잔디는 오로지 예쁘다는 이유로 키우는 풀이지만 그걸 깎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여름 잡초는 일주일 만에 무릎까지 자라는데 쪼그려 앉아 일일이 뽑는 것 말고는 제거법이 없다. 시골 사람들이 괜히 마당을 ‘공구리’ 치는 게 아니다. 농삿일도 바쁜데 마당 관리할 틈이 있을 리 없다. 벽난로를 설치한다는 건 굴뚝을 청소해야 한다는 뜻이며 온돌방을 만든다는 건 장작을 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살고 싶다. 톱질을 하고 도끼질도 하는 육체노동을 하며 땀 흘리는 노년을 보내고 싶다. 비 오는 날 처마 밑에 우두커니 앉아있고 싶고 밤새 별자리가 움직이는 모습도 보고 싶다. 무엇보다 집안 살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았으면 한다. 아파트 거실에서 앞 동만 바라보다가 어느 날 병원에 실려가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