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호찌민, 다낭, 호이안, 냐짱, 달랏. 이 이름들이 낯설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한 번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을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의 여러 도시들은 훌쩍 떠나기 쉬운, 우리와 친근한 여행지가 되었다. 특히 다낭에는 한국 관광객이 많아 ‘경기도 다낭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이 익숙한 도시들이 베트남 여행의 기본편이라면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 여행은 심화편이라 할 만하다. 조금 더 깊이 베트남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괜찮은 답이 될 것이다.

◇아홉 줄기 메콩강으로 가는 길

메콩 델타는 베트남어로는 동방송끄우롱(Dồng Bằng Sông Cửu Long). 동방은 ‘평야’, 송끄우롱은 ‘아홉 마리 용의 모습을 한 강’이라는 뜻이다. 베트남 남부의 지역명이면서 메콩강 하류의 삼각주를 가리킨다. 메콩강은 중국 윈난성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인도차이나반도를 굽이굽이 흘러내려 오다 베트남 남부에 이르면 9개의 줄기로 갈라진다. 200㎞ 이상을 흘러 남중국해로 빠져나간다.

강물은 크고 작은 수로와 운하를 만들고 습지를 만들고 땅으로 스며 비옥한 평야와 그 환경에 맞는 삶을 만들었다. 메콩 델타로 가는 길은 그 삶을 보러 가는 여행이자 탐험이다. 모험심 가득한 여행자가 되어 베트남에서 넷째로 큰 도시 ‘껀터(Can Tho)’와 꽃의 도시 ‘사덱(Sa Dec)’, 그리고 캄보디아 접경 지역에 위치한 ‘쩌우독(Chau Doc)’으로 떠나보자.

껀터, 사덱, 쩌우독은 호찌민에서 각각 약 170㎞, 140㎞, 240㎞ 떨어져 있지만 도로 사정상 시간을 넉넉히 잡아야 한다. 버스로 4시간, 3시간, 6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호찌민 시내 여행자 거리에서 로컬 버스(FUTA Bus Lines 등) 표를 살 수 있다. 보통 ‘슬리핑 버스(Sleeping Bus)’를 이용하게 된다. 열차 침대칸처럼 1·2층으로 돼 있고 침대는 마련돼 있지 않지만 좌석이 180도 완벽하게 펼쳐져 누울 수 있다. 특이하게도 신발을 벗고 탄다.

두 발 쭉 뻗고 자리에 누우면 시내를 빠져나가자마자 메콩의 지류들이 나타나고 수십 개의 작은 다리들을 건넌다. 베트남어를 모른다고 해도 ‘꺼우(Cầu)’라는 단어가 표지판에 워낙 많이 나와서, 꺼우가 ‘다리’라는 뜻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황토빛 강물이 잔잔히 흐르는 수로, 쌀 포대가 높이 쌓여 있는 방앗간, 시원하게 펼쳐진 논. 그래서 나는 메콩 델타로 떠날 때 밤보다는 낮 버스를 이용한다. 창밖 풍경들 감상만으로 메콩 델타 여행의 워밍업이 저절로 되니 말이다.

◇껀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 까이랑 수상시장으로

수상시장 배들이 장대 끝에 판매하는 물건을 마치 간판처럼 걸어놓았다./진유정 여행작가

몇 해 전 게티이미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가 있는 도시 톱 10′을 선정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스웨덴 스톡홀름 등과 나란히 껀터도 이름을 올렸다. 껀터의 운하는 특히 수상시장이 열릴 때 그 아름다움이 최고조에 달한다. 대부분의 숙소가 도심에서 5㎞ 정도 떨어져 있는 ‘까이랑 수상시장’까지 데려다줄 뱃사공을 연결해준다. 보통 새벽 5시 전후 길을 나서야 하는데, 캄캄한 시간에 랜턴 불빛을 따라 선착장에 닿으면 마치 007처럼 중대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배의 모터 소리와 메콩강의 바람을 느끼며 40분쯤 달리다보면 점점 사위가 밝아지면서 놀라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막 떠오른 해가 야채며 과일들을 가득 싣고 둥둥 떠 있는 배 수십 척을 환히 비추면 탄성이 절로 터진다, 뱃머리를 맞대고 흥정 중인 배들에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을 태운 배들까지 더해져 러시아워도 그런 러시아워가 없다.

장관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는 ‘꺼이 베오(Cây Bẹo)’. 꺼이베오는 어떤 물건을 팔고 있는지 멀리서도 잘 보이게 세워놓은 장대를 뜻한다. 장대에는 간판도 깃발도 아닌 물건을 떡하니 걸어 두었다. 수박을 팔면 수박이, 양배추를 팔면 양배추가 걸린다. 수상시장은 오전 10시 전까지는 열려 있지만 물건을 흥정하는 활기찬 모습을 보려면 최대한 일찍 가는 게 좋다. 메콩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까이랑 수상시장은 2016년 베트남 국가 무형문화유산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쩌우독: 소원 하나 품고 그곳으로

쩌우독의 케이블카 승하차장. 호찌민 노트르담 성당을 본뜬 독특한 생김새로 유명하다./진유정 여행작가

쩌우독으로 나를 이끈 사진 한 장이 있다.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성 같은, 메콩 델타 풍경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이 호기심을 일으켰다. 초록 논들에 둘러싸인 건축물은 케이블카 승하차장. 호찌민 시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을 본떴다고 한다. 케이블카는 메콩의 너른 평원 위에 봉긋 솟은 ‘삼산(Núi Sam)’을 오간다. 삼산(山)은 산 전체가 사원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여러 절들이 모여 있다.

쩌우독뿐 아니라 베트남 남부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바쭈아쓰(Bà Chúa Xứ)’ 사당이 삼산에 있다. 어떤 소원도 다 들어준다는 여신 바쭈아를 모신 사당이다. 설이 꽤 지난 뒤 방문했는데도 음식과 과일을 올리고 기도하러 온 사람들로 꽉 차서, 여신상의 얼굴은 멀리서만 봐야 할 정도였다. 기도하는 사람들 표정들이 사뭇 진지해 어떤 소원을 빌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곳에 간다면 우리도 소원 하나쯤 품고 가도 좋겠다. 음력 4월 22일부터 27일에는 바쭈아 여신을 모시는 축제인 ‘바쭈아쓰 페스티벌’이 사당에서 열린다.

삼산의 다른 기슭에는 동굴 사원 ‘쭈아항’이 있다. 위쪽으로 향해 있는 동굴을 통과해 밖으로 산 위로 나오면 메콩 델타의 비옥함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쪽에는 푸른 논이, 다른 한쪽에는 추수를 기다리는 누렇게 익은 논이 보이고, 그 사이를 흐르는 수로와 물가 주변에 모여 있는 마을들이 정겹다.

쩌우독 여행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곳이 또 있다. 베트남 전통 고깔 모자 ‘논라’가 아닌 무슬림 여성의 히잡을 쓴 사람들이 사는 짬족 마을. 베트남 남부에 사는 짬족은 이슬람을 믿는 소수민족이다. 둘러보는 동안 만난 여러 개의 모스크가 이국적이다. 이 외에도 시내에서 30㎞ 떨어진 곳에는 나룻배를 타고 숲과 새들을 관람하는 ‘짜스생태보존구역’이 있는데 5~10월 우기에 방문하면 풍부한 수량에 물풀들이 잘 자라 물길을 초록색 카펫처럼 덮은 장관을 볼 수 있다.

◇남부의 정원 사덱을 산책하다

‘남부의 정원’으로 불리는 사덱 꽃마을의 아침 풍경./진유정 여행작가

껀터에 아름다운 수상시장이 있고, 쩌우독에 삼산과 평야가 있다면 사덱에는 꽃과 낭만이 있다. 사덱은 크메르어로 ‘물의 신’이라는 뜻이다. 동탑성(省) 대표 도시로 2000여 종의 꽃을 생산, 인근 도시는 물론 해외로도 수출해 ‘남부의 정원’이라 불린다. 메콩강 유역 도시답게 땅에서뿐만 아니라 작은 수로에서도 꽃을 재배하기 때문에 걸어서, 그리고 배를 타고서 꽃 재배 마을을 산책할 수 있다.

사덱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소설이자 영화 ‘연인’에 등장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나룻배를 타고 메콩강 지류를 통과하던 때의 일이다. 강줄기는 빈롱과 사덱 사이에 펼쳐진 넓은 진흙 평원과 코신신 남부 ‘새들의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뱃전으로 갔다. 그리고 강을 바라보았다. 이따금 어머니는 나에게 메콩강과 그 지류만큼 아름답고, 유유하고, 야성적인 강은 아마 내 평생 다시 못 볼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소설 ‘연인’ 중에서)

꽃과 ‘연인’의 도시라니, 이렇게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게다가 뒤라스의 첫사랑이라고 알려진 후인 투이 레의 집이 아직도 강가에 남아있다. 1895년 건축된 집에 들어서면 소설 속 슬픈 사랑을 상상하게 된다. 또한 사덱에는 역사적인 장소인 쎄오뀟이 있다. 구찌 터널처럼 베트남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군사시설을 숨겨 두었던 밀림과 수로를 역사 관광지로 개발한 곳이다. 보트 투어가 가능한데 해가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나무 덩굴 사이를 지나갈 때면 뱃사공의 노 젓는 소리와 새소리만 존재해 역설적이게도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새벽 다섯 시 잠옷 입은 바리스타가 끓여주는 커피

메콩 델타의 맛
커리와 코코넛밀크로 만든 생선 국수 분느억껜./진유정 여행작가
◇국수로 여는 아침

메콩 델타는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답게 생선 국수가 흔하다. 맑은 국물의 분까는 노란색 ‘디엔디엔’ 꽃 고명을 올려 먹는다. 쩌우독에서는 ‘분느억껜’이라는 생선 국수를 기억하자. ‘껜’은 크메르 말로 ‘코코넛 밀크’다. 카레와 코코넛 밀크를 넣어 만든 국수가 달콤한 아침을 열어준다.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 ‘반미’와 함께 먹기도 한다. 사덱은 돼지뼈 국물에 건면을 쓰는 ‘후띠에우’가 유명하다.

◇메콩의 저녁: 구울까 끓일까 볶을까

굽기를 원한다면 가물치류의 생선을 통째로 구운 ‘까록느엉쭈이’를 추천한다. 생선살을 야채, 라이스페이퍼에 싸 먹는데 전혀 비리지 않다. 커다란 소고기 완자에 고기 지방을 그물 모양으로 말아 굽는 보느엉머짜이도 독특하다. 뜨거운 국물파라면 새콤달콤한 생선국 깐쭈아와 젓갈로 국물을 낸 전골 ‘러우맘’을 맛보자. 쩌우독은 ‘맘(젓갈)의 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종류가 많다. 볶는 것을 원한다면 민물게를 타마린드 소스로 요리하는, 껀터의 ‘바키아랑메’가 있다.

소고기 완자에 고기 지방을 그물 모양으로 말아서 굽는 보느엉머짜이(왼쪽)와 껀터와 사덱의 대표 간식 반꽁./진유정
◇메콩의 간식과 디저트

껀터와 사덱의 대표 간식은 ‘반꽁’이다. 녹두, 돼지고기, 채 친 타로와 반죽을 국자처럼 생긴 틀에 부은 뒤 새우를 얹어 튀긴다. 영락없는 컵케이크 모양으로, 야채에 싸서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는다. 쩌우독에는 폭신한 식감의 ‘반보톳놋’이 있다. 보통의 야자보다 작고 껍질이 검은 톳놋이 쩌우독의 특산품인데 반죽에 톳놋 즙을 섞어서 찐다.

◇메콩의 커피: 잠옷을 입은 바리스타

베트남에서는 새벽 5시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쩌우독에도 오래된 새벽 카페가 하나 있다. 다른 상점들은 아직 문 열기 한참 전인데 홀로 불 밝히고 모닥불 피워 물을 끓인다. 늙은 바리스타가 컵을 뜨겁게 데우고 날카로운 눈으로 연유의 양을 조절하고 천으로 걸러낸 커피를 내준다.

새벽 다섯 시 커피를 내리는 떠우독의 오래된 카페 바리스타(왼쪽)와 연유 커피./진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