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무늬 교복이 사라지고 있다. 옷깃이나 소매, 교복 치마 등에 체크무늬가 들어간 전국의 중·고교에서 올해 입학한 신입생과 재학생 선배의 교복이 달라지기도 한다.

교복 디자인이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자사 브랜드를 상징하는 고유한 체크무늬와 교복 속 무늬가 유사하다며 상표권 침해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버버리와 유사한 체크 패턴이 들어간 교복들은 당장 내년 초까지 디자인을 변경해, 봄 신입생들부터 다른 교복을 입어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산하에만 106개교, 전국에는 200여 학교가 교복 교체 대상인 것으로 추산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체크 패턴을 디자인에 활용한 빈폴, 닥스 등은 물론, 의류 업체가 아닌데도 ‘버버리’ 명칭을 사용한 노래방 업주와 안동 지역에서 찰떡을 판매하던 소상공인까지 버버리와 소송전에 휘말렸다. 버버리는 어쩌다 ‘소송의 왕’이 됐을까?

◇체크무늬 전쟁

버버리가 자사의 ‘체크무늬 디자인’을 침해했다고 문제 삼는 배경엔 상표권이 있다. 버버리 특유의 체크무늬는 1998년 한국에서 상표권으로 등록됐다. 버버리의 체크무늬 자체가 디자인인 동시에, 침범할 수 없는 자산이라는 뜻이다.

디자인에 대한 권리와 달리 상표권은 해당 기업이 존재하는 한 사실상 ‘무기한’이다. 공앤유 특허사무소의 공우상 변리사는 “디자인의 경우 출원일로부터 20년이 지나면 더 이상 권리 행사가 불가능하다”며 “그와 달리 상표의 존속 기간은 10년이지만, 10년마다 갱신을 통하여 영구적으로 상표권을 존속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버리는 특유의 체크무늬를 상표로 등록한 만큼, 유사한 디자인에 대해 ‘상표권 침해’라는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버버리는 2002년 한국에 법인을 설립할 당시 패션 잡지에 “허가 없이 버버리 로고와 고유 체크무늬를 사용할 경우 우리 측 변호사의 연락을 받게 될 것”이라는 광고 문구를 게재하기도 했다.

결국 체크무늬 디자인들은 줄줄이 법정으로 갔다. 2006년엔 빈폴의 체크무늬, 2013년엔 닥스의 체크셔츠, 2014년엔 속옷업체 쌍방울의 사각 팬티가 소송에 휘말렸다. 이 중 빈폴의 체크무늬만 “한국 전통 가옥의 창살 무늬를 모방해 디자인했다”는 점이 인정돼 버버리를 상대로 승소했다.

버버리가 등록한 체크무늬 상표들./특허청 키프리스

◇안동 명물 ‘버버리찰떡’에도 불똥

패션과는 무관한 업체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충남 천안에서 ‘버버리’ 상호를 쓰던 노래방 업주가 버버리 측으로부터 ‘부정경쟁행위금지 등에 관한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2010년 1월 1심에서는 노래방이 이겼지만, 7개월 뒤 2심 법원은 버버리 측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피고(노래방)는 원고(버버리)의 등록상표를 중소 도시에서 다수인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노래방 업소의 상호에 사용함으로써 국내에서도 고급 패션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원고의 명성을 손상했다”며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방언인 ‘버버리(벙어리)’가 붙은 제품을 상표화하려다가 버버리 측이 제동을 건 사례도 있다. 경북 안동 지역에서 일제강점기부터 널리 팔린 ‘버버리찰떡’을 판매하던 업체가 ‘버버리 단팥빵’ 제품을 2013년 2월 상표화하려 했을 때, 특허청은 ‘영국 버버리의 상표권 침해’라는 이유로 상표 등록을 막았다. 결국 버버리찰떡이 특허심판원에 문제를 제기해 버버리를 이겼다. 당시 심판원은 “본 사건 출원상표의 지정상품은 단팥빵이고, 선(先)사용 상표(영국 ‘버버리’)의 지정상품은 의류와 가방 등 패션 관련 제품”이라면서 “두 상표의 지정상품이 달라 일반 수요자가 오인·혼동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브랜드 가치 보호 전략?

영국의 명품 브랜드가 소상공인 업체에까지 전방위적 소송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패션 업계 관계자는 “버버리 체크의 모티프가 된 영국의 전통 무늬인 타탄 체크가 다 비슷한 것처럼 보여도,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체크와 버버리의 체크가 완전히 다르다. 버버리 고유 체크무늬의 상징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하나의 생명체와도 같다. 세상에 나와 제 몫을 하고 성공하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브랜드가 노후화되지 않고 생동감을 지키려면 상표권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소송에 대해 비판적 의견도 나온다. 송재룡 경희대 특임교수(사회학)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색과 격자를 조합한 체크무늬에 대해 상표권을 등록하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조화롭다고 느끼는 색을 조합할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버버리 측 한국 법률 대리인은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는 언론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