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유현호

오타니 쇼헤이는 기념비적인 선수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야구 선수가 양쪽 모두 탁월한 성적을 내는 일은 베이브 루스 이후 처음이다. 스포츠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시속 160km대 강속구를 뿌리는 선발투수면서 동시에 걸핏하면 담장을 넘기는 홈런 타자인 초특급 선수가 나타나 일본을 WBC 우승으로 이끌어낸 사건 앞에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중이다.

‘오타니 신드롬’은 그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상냥하며, 진지하게 스스로를 갈고 닦는 구도자 같은 모습이 야구 팬을 넘어 일반 대중에게도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동료들이 음담패설을 나누면 인상을 찌푸리며, 술은 마시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야구 선수로서 활동하는 것,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훈련하는 것이 최대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부족한 것이 보인다. 아직도 잘할 수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아직 할 일이 많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타니의 머릿속에는 야구밖에 없다. 온종일 야구를 하거나, 야구 연습을 하거나, 야구를 잘하기 위한 훈련을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재미없고 단순한 인생이지만 본인은 늘 충만한 행복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런 사람은 오타니뿐만이 아니다. 국수(國手)로 통하는 이창호 9단은 ‘직업이 바둑, 취미도 바둑’이었다. 평생 그림을 그리던 앙리 마티스는 말년에 암 투병으로 붓을 쓸 수 없게 되자 가위를 들고 색종이를 오려가며 미술 작업을 해나갔다. 이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자기가 사랑하는 어떤 분야에 푹 빠진 채, ‘몰입’(flow) 상태로 평생을 산 것이다.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낄까? 이탈리아 태생 미국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파고든 질문이었다. 그는 피험자들에게 삐삐와 종이를 나눠주었다. 하루 중 임의의 시간에 삐삐가 울리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행복한지 기록하라는 것이었다. 경험 표집 방법(Experience Sampling Method)이라 부르는 이 혁신적 연구 방법론 덕분에 칙센트미하이는 행복의 본질에 대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행복’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흔히 해변의 휴양지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하염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술, 마약, 섹스 등이 제공하는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행복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칙센트미하이의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역시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불시에 울리는 삐삐에 맞춰 ‘내가 뭘 하고 있지? 난 얼마나 행복하지?’라는 질문을 던지자,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말초적 쾌락과 유희를 즐길 때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가장 큰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따로 있었다.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 사람들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혹은 흐르는 물에 온몸을 내맡기고 자유롭게 떠내려가는 것을 연상시키는, 의식의 최적 경험을 하고 있었다. 본인을 괴롭히던 자질구레한 고민 따위는 떠오르지도 않고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잊어버리는 완벽한 집중. 그것이 바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몰입이다.

물론 행복이 드물듯 몰입도 흔한 경험은 아니다.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몰입의 대상은 ‘기술을 요구하는 도전적 활동’이다. 여기서 핵심은 어떤 적당한 선을 찾는 것이다. 수행해야 할 과제가 너무 어려우면 도전 의식이 꺾이면서 좌절감에 빠지고 몰입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과제가 너무 쉬워도 몰입은 일어나지 않는다. 적당히 어려운 과제, 명확한 목표가 있고 해결할 수 있겠다 싶은 무언가에 도전할 때 우리는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된다.

그래서 도달하게 되는 또 다른 역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여가 활동은 즐기기 어려운 반면, 지긋지긋한 것으로 치부하게 마련인 직업 활동,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큰 행복을 준다는 것이다. ‘몰입’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보자. “왜냐하면 직업은 플로우 활동과 마찬가지로 자체 안에 목표가 있고 피드백·규칙·도전 등을 갖추고 있어서 당사자로 하여금 일에 더욱 열중하고, 그 가운데서 자신을 잊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은 어떨까. 노동 개혁과 관련한 담론이 오가는 모습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노동 개혁은 주 69시간이냐 52시간이냐 같은 숫자 놀음으로 이야기할 사안이 아니다. 69시간이 너무 길어서 52시간으로 줄여야 한다면, 52시간도 너무 기니 40시간으로 줄이고, 결국 노동 시간이 0시간이 될 때까지 끝없는 파업과 투쟁을 하는 결론 외에는 도달할 곳이 없으니 말이다.

노동 개혁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일 수 없다. 그 누구도 일을 안 하는 세상은 있을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동 ‘속에서’, 몰입을 통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노동 시간 단축 논의만 있지, 노동 강도를 높이고 몰입하는 노동의 질적 향상에 대한 논의를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우려스러운 이유다. 한 시간 몰입하면 끝낼 수 있는 일을 30분 회의하고 15분 담배 피우고 와서 두 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근로자들의 문제도 테이블에 올려놓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노동 개혁이 가능해진다. 그래야 기업의 생산성이 향상될뿐더러 근로자들 역시 몰입을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맨, 오타니 쇼헤이로 돌아와 보자. 그는 왜 투수와 타자 겸비, 소위 ‘이도류’의 길을 걷고 있을까? 어쩌면 야구에 더 몰입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큰 부담을 지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동년배에 비해 월등한 체격, 체력,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한쪽만을 택해 전념했다면 야구가 너무 시시해져서 몰입이 깨질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행복의 길은 단순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더 어렵게, 조금 더 열심히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오타니처럼 성공할 수는 없겠지만 오타니와 같은 행복을 맛보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일하는 사람, 일을 통해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을 위한, 진정한 노동 개혁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