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호 작가가 서울 잠실의 대형 빌딩 지하에 있는 편의점 앞에 앉았다. 스무 평짜리 이 작은 공간에서 손님을 맞고 제품을 진열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틈틈이 메모하는 게 그의 글쓰기 비결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소설가로서 심각한 직업적 위기감을 느꼈다.”

편의점 점주 봉달호(49·본명 곽대중)의 신간에 소설가 장강명이 이런 추천사를 썼다. 소위 ‘글밥’ 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현직 자영업자인 그의 글에는 삶의 현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재미와 감동이 있다. 스스로 “원래 본캐(본래 캐릭터)는 편의점주, 부캐(부캐릭터)는 작가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본캐와 부캐가 헷갈리기 시작한다”고 할 정도로 다작에 달필이다. ‘아무튼, 주말’에 기고하는 ‘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을 포함해 현재 6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그가 네 번째 에세이집 ‘셔터를 올리며(다산북스)’를 출간했다. 부제는 ‘나를 키운 작은 가게들에게’. 부모님의 구멍가게에서 출발해 농약 가게, 분식점, 갈비집, 오리탕집 등을 거쳐 지금의 편의점까지 가족이 운영해온 가게 9곳의 기억을 써내려 갔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현실판 가게 버전이랄까. 개인이 경험한 ‘가게’란 공간을 통해 광주민주화운동부터 서울아시안게임, IMF, 카드 대란 등 대한민국의 시대상이 오롯이 펼쳐진다. 작가들은 “한 집안의 장사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고 감명 깊을 수 있다니”(장강명), “세기말의 한국을 지나온 사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칠 만한 이야기가 즐비하다”(강원국)고 추천사를 썼다. 달필의 비밀을 캐내려 이 남자를 찾아갔다. 서울 잠실의 대형 빌딩 지하, 스무 평짜리 작은 편의점이 봉달호의 ‘글 공장’이었다.

봉달호 작가는 매일 일기를 쓴다. 사소한 것도 매일 기록하고, 실패한 장사에서도 뭐가 잘못됐는지 기록했다. 달필의 비결이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나를 키운 건 가족이 운영한 가게였다

-그동안 편의점에서의 일상을 책에 담았는데, 이번엔 ‘나를 키운 가게’가 글감이다.

“신문에 실린 제 에세이를 보고 출판사 팀장이 ‘회고록을 써보면 어떠냐’고 제안했다. 제 나이에 무슨 회고록인가 싶어 처음엔 거절했는데, 어차피 에세이는 자기 서사가 중심이니 내 인생을 통해 무언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를 키운 것, 인생의 주요 편집점은 부모님과 내가 운영했던 가게였다.”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느낌도 든다.

“사실 제가 2~3년 전부터 소설을 쓰고 있다. 에세이로 얘기할 수 있는 세계가 있고, 소설로 가능한 세계가 있지 않나. 첫 소설에 넣으려고 모아둔 소재들인데 이번에 다 풀어버렸다.(웃음)”

-이제 편의점 점주보다 작가라는 호칭으로 더 알려졌는데, 처음 어떻게 책을 냈나.

“편의점 카운터에서, 냉장고 안에서, 창고와 시식대에서 손님을 맞고 제품을 진열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라면 박스 귀퉁이, 휴대폰 메모장, 영수증 뒷면에 바쁘게 휘갈겼다. 인터넷 편의점 점주 카페에 하나씩 올렸던 글들을 묶어 출판사 세 곳에 보냈는데, 세 곳 모두에서 연락이 왔다. 가장 먼저 연락을 준 시공사에서 첫 책 ‘매일 갑니다, 편의점’이 나왔다.”

-왜 봉달호라는 필명을 쓰나.

“편의점 점주 카페 닉네임이 ‘복면달호’였다. 출판사에 투고할 때 줄여서 봉달호라는 필명으로 보냈는데, 편집자가 그대로 출간해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본캐, 부캐가 유행하던 때이기도 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잘한 선택 같다.”

봉달호 작가는 "각진 포장 상품으로 가득한 편의점에서, 내내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해 돌아봤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운동권에 실망해 사상적 이별

전남 나주가 고향이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는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쌍봉댁이 운영하는 수퍼랑 똑같았다. 상호도, 간판도 없는 가게. 주인이 없으면 손님이 노트에 ‘응삼이네 새우깡 하나’라고 써놓고 가는 가게. 어머니가 잡화를 떼러 들르던 광주 충장로 도매상 건물에서 계엄군이 몽둥이를 휘둘렀다는 건 나중에 광주로 전학 간 중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고교 1학년이던 1989년 전교조의 영향으로 운동권이 됐고, 고2 때 NL 계열 지하조직에 가입했다. 나중에 전향해 1999년 반(反)한총련 계열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별 준비 없이 학교 앞에 ‘소주 장학생’이란 술집을 열었다가 4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영업 종료’ 안내문을 붙일 때의 심정을 그는 “인생의 낙오자가 된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그 뒤로 상경해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편집장, 데일리NK 논설실장을 역임하며 7년간 북한인권운동을 했다.

-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NGO에 들어갔나.

“그동안 북한 정권을 추종했던 날들에 대한 내 나름의 속죄 시간을 갖겠다는 생각이었다. 부서를 선택해야 했는데 마침 소식지를 발행할 편집장 자리가 비어서 얼떨결에 하게 됐다. 말이 편집장이지 혼자 다 하는 1인 편집실이었고, 원고의 상당 부분을 내가 혼자 써야 했다. 글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는데 왜 이별한 건가.

“10대 후반과 20대엔 늘 어떤 이념이나 가치를 찾아 헤맸다. 아이러니하게도 전투경찰로 군복무를 하면서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던 입장에서, 막아내는 입장에 서보니 처음으로 ‘방법론’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내가 추종했던 이념이 현실과 어긋나고 있고, 여론의 상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반성이었다. 우리 학교 캠퍼스에서 청년이 죽은 채 발견됐다. 대학 총학생회 간부들이 청년을 경찰 프락치로 오인해 학생회실로 끌고가 고문한 사건이었다. 사람이 죽자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겨 사고사로 위장했다. 조작극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몇 명은 내가 알던 이름이었다. 그 무렵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굶어 죽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사상적 이별을 결심하게 됐다.”

봉달호 작가는 현재 6개 매체에 칼럼과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에서 글을 쓰지만, 급할 때는 편의점 카운터 뒤에 있는 이 작은 창고에서도 마감한다"고 했다.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장사는 실패까지 처절하게 복기해야

책엔 장사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모두 녹아 있다. 그가 중국 선양에 건너가 식당을 열었다가 벌어진 일은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몰락의 교과서다. 그는 “또 준비 없이 덤볐다가 대차게 실패했다”며 “서점에 가보면 성공 신화를 자랑하는 책은 넘치는데 실패의 경험을 절절히 기록한 책은 적다. 사람들은 실패했던 이야기를 감추려고 하고, 바깥 탓만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 했다.

-망한 이유가 뭘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준비 부족이다. 가게를 꾸준히 끌고 나가지 못한다는 자체가 준비가 부족해서다. 편의점 책을 낸 후, 창업을 하고 싶다고 찾아온 분이 많았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만나보면 할 만한 분인지 아닌지 보인다. ‘회사가 힘들어서 좀 쉬운 일을 해보려고 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난다.”

-국민의힘이 발표한 ‘민생희망특별위원회’ 명단에 들어갔다.

“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칼럼을 잘 보고 있다면서 전화를 했다. 자영업자의 현실을 대변해서 따끔한 얘기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제가 ‘좋은 말 안 할 텐데요’ 했더니, 그런 말 들으려고 하는 자리라고 했다. 편의점 운영하면서 느낀 얘기들, 자영업자의 애환을 솔직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글은 주로 언제 쓰나.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12시까지 집에서 글을 쓴다. 퇴근 후엔 매일 10㎞씩 달린다. 유일한 취미가 마라톤이다.”

-글 쓰는 재능은 타고난 건가.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게 싫지 않았다. 재능은 없었는데 빨리 쓰는 건 자신 있었다. 백일장에서 상 받은 적은 없지만, 다른 친구들 열심히 쓰고 있을 때 다 써놓고 노는 스타일이었다. 지금도 6개 매체에 연재를 하고 있지만, 한 번도 마감에 늦은 적은 없다. 글 쓸 때 압박감도 없는 편이다. 어떤 글감으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엮어야겠다고 구상을 해놓고, 일단 시작하면 그냥 술술 써진다.(웃음)”

-책을 많이 읽는 편인가.

“한 달에 완독은 5~6권, 발췌해서 읽는 건 50~60권 정도 된다. 국내에서 출간된 직업 에세이는 다 사서 읽고 있다. 다른 직업의 세계를 엿보는 재미도 있고, 이 사람이 직업의 어떤 측면을 어떤 방식으로 끄집어내는지 습득한다. 지금은 피아니스트 백혜선씨가 낸 책을 읽고 있다.”

그는 “제 첫 독자는 늘 아내”라고 말했다. “칼럼이든 책 원고든 무조건 처음에 읽고, 적나라하게 평을 해준다. 초고를 보고 좋다고 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깐깐한 독자”라고 했다. “다만 이번 책을 읽고 아주 좋아했다. 원고가 훌륭하다는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었달까. 당신 인생이 이제 다 맞아떨어진다고 하더라.”

-편의점 이후엔 무슨 가게를 하게 될까.

“아마 여기가 마지막일 것 같다. 편의점은 관계의 폭은 넓지만, 깊이는 얕은 공간이다. 깊지 않지만 얕은 강물을 하염없이 걸어가야 한다.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어야 한다. 글 쓰는 입장에선 관찰할 폭이 넓은 이곳이 최상의 공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