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나 병고에 시달린 세 모녀가 주위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아파트 경비원이 관리소장이나 주민들의 갑질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아이들이 계모 등에게 학대받고 세상을 뜹니다. 우리가 요즈음 흔히 접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일이 없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무 많습니다. 우리 사회 공동체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일러스트=김영석

지난달 급한 돈이 필요한 취약 계층에게 최고 100만원까지 당일 대출해주는 소액 생계비(긴급 생계비) 대출 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출 신청자가 폭발적으로 몰렸다고 합니다. 당장 100만원을 구하기 어려운 저소득·저신용자가 그만큼 많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소액 생계비 대출 제도는 취약 계층을 배려하는 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 중 하나입니다.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 등 사회 각계가 나서야 합니다. 말로는 서민 보호 운운하지만 결국은 정파의 이익과 자기 보호를 위하여 궤변과 감언이설로 국민을 현혹하는 정치인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진정으로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고 노회찬 의원의 2012년 짧은 연설은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 감동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좀 길게 인용합니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서울 구로구 가로수 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그 버스와 4시 5분쯤에 출발하는 두 번째 버스는 출발한 지 15분 만에 신도림과 구로시장을 거칠 때쯤이면 좌석은 만석이 되고 버스 안 복도까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바닥에 다 앉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로운 사람이 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같은 사람이 탑니다. 그래서 시내버스인데도 마치 고정석이 있는 것처럼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타고 강남 어느 정류소에서 누가 내리는지 거의 다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이 버스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중략) 새벽 4시와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0~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을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이 청소하고 정비하는 것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중략) 이분들이 그 어려움 속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 있었습니까. 그들 눈앞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손이 닿는 곳에 있었습니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과연 있었습니까? (중략) 정치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치지만 이분들이 필요로 할 때 이분들이 손에 닿는 거리에 우리는 없었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이 연설을 보수냐 진보냐 하는 관점에서 재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따뜻한 보수이자 엉터리가 아닌 진정한 진보의 모습일 뿐입니다. 제가 갖고자 했던 ‘중도저파(中道低派)’의 마음입니다.

올해 초 서울 노원구 상계동을 출발해 강남구 신논현역까지 가는 146번 버스가 첫차 시각을 15분 앞당겨 새벽 3시 50분에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 버스도 6411번 버스처럼 강남 일대에서 일하는 분이 많이 타는 새벽 만원 버스입니다. 1월 2일 새해 첫 출근 날 그 버스에 탄 한덕수 국무총리가 승객들한테 받은 건의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그분들에게 새벽 15분은 금쪽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 투명인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