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세게 더 찰지게 때려야 스타가 된다. 지난해 미국에서 개최된 ‘뺨 때리기 대회’ 장면으로, 상남자뿐 아니라 무서운 언니들이 참전하는 여성부(왼쪽)도 있다. /슬랩파이팅챔피언십 유튜브
뺨따귀를 힘껏 후려친다. 상대가 기절한다. 받아야 할 것은?
① 벌금
② 상금

이른바 ‘뺨 때리기 대회’(Slap Fight)가 신종 스포츠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상금을 걸고 링 위에서 펼치는 일대일 토너먼트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상대의 뺨을 손바닥으로 가격해 승패를 가리는 단순 무식한 경기다. 동시에 맹렬한 시청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두뇌가 필요 없는 스트레스 해소의 가장 원초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격투기 대회 UFC 측이 따귀만을 위한 대회를 개최했고, 미국에서는 올해 TV 리얼리티 쇼로 제작해 방영했으며, 국내에도 유튜버를 통해 첫 시합이 성사됐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반했다

미국에서 열린 '뺨 때리기 대회' 출전자가 상대의 얼굴을 향해 타격 지점을 가늠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발단은 ‘상남자의 나라’로 불리는 러시아였다. 2019년 ‘시베리안 파워쇼’ 부대 행사로 뺨 때리기 대회가 열렸고, 얼떨결에 참가한 농부 출신 바실리 카모츠키(32)의 괴력이 영상을 타고 퍼지면서 붐이 시작됐다. 몸무게 170㎏, 마찰만으로 수박을 박살 내는 그의 손바닥에 닿으면 소형 트럭에 치이는 강도의 충격이 전해진다. “퍽” 소리와 동시에 거구의 남성이 픽, 고꾸라지는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열기는 곧 미국에서 본격화됐다. UFC 회장 데이나 화이트(54)가 뺨 때리기 대회 브랜드 ‘파워 슬랩’을 론칭 했고 네바다주(州) 체육위원회는 지난해 이 대회를 정식 스포츠로 허가했다.

종합격투기 헤비급 챔피언 출신의 팀 실비아(47) 등 유명 선수들도 속속 합류를 결정 지었다. 미국 방송국 TBS는 ‘파워 슬랩’을 제작해 방영했다. ‘터미네이터’로 유명한 근육질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꽂혔다. 매년 보디빌딩 등의 시합을 여는 ‘아널드 클래식’에 뺨 때리기를 종목으로 추가한 것이다. 아널드는 “내가 맞지만 않는다면 뺨 맞는 걸 보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미국 USA투데이에 말했다.

◇한국에도 진출… 불김치의 매운맛

탈북자 출신 격투기 선수로 유명한 장정혁씨가 '뺨 때리기 대회'에 출전해 타격을 기다리고 있다. /유튜브 캡처

공식 수출은 아니지만 한국에도 상륙했다. 격투기를 전문으로 삼는 한국 유튜브채널 ‘상남자 주식회사’ 측이 지난 1월 공개한 ‘제1회 뺨때리기 대회’다. 탈북 격투기 선수 장정혁(26)씨를 비롯한 남성 7명이 참가했다. “새해에 한 대 맞고 정신 차리고 싶어서 출전했다”고 말한 한 아마추어 복서는 장정혁의 손바닥 한 방에 곧장 실신해 뒤로 넘어갔다. “솔직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남긴 채. 응급 의료진으로 대기한 의사는 성형외과 원장이었다. “안전에 더 신경 쓰시라”는 댓글이 따라 붙었다.

사실상 뺨이 아니라 얼굴 전체, 특히 턱을 노려 뇌에 충격을 줌으로써 녹아웃(knock out)을 유도하는 게 이 경기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날아오는 손바닥을 피해서도 안 되고, 당연히 방어 수단도 없다. 그저 뒷짐 진 채 기도할 뿐. 선수가 타격을 받은 후 회복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60초. 가학성에 대한 비판이 따라붙는 이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쇼일 뿐 스포츠는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했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종류의 외상을 자주 경험하면 치매 및 만성외상성뇌병증, 과거 수십 명의 권투 선수와 미식축구 선수를 괴롭힌 퇴행성 뇌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여자가 더 무섭다

'뺨 때리기' 업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여자 격투기 선수 시나 바토리. /파워슬랩

상남자의 힘과 맷집을 자랑하는 무대이긴 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도 뺨 때리기는 여성에게 더 특화된 공격 기술이었다. ‘뺨 때리기 대회’에 여성 부문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 분야의 최강자로 우뚝 선 여자 따귀 선수 ‘헝가리 허리케인’ 시나 바토리(31)의 데뷔 무대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격투기 스타 코너 맥그리거(35)가 언급할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남자 선수의 뺨 때리기 코치로도 발탁됐다.

카타르시스를 판매하는 미디어, 벼락 스타가 되고 싶은 일부 인플루언서의 결합으로 시장은 커지고 있다. 죄책감과 쾌감을 동시에 제공하는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는 발 빠르게 변종을 낳고 있다. ‘엉덩이 때리기 대회’다. 상대방의 볼기짝을 손바닥으로 때려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게 하면 이기는 경기다. 뺨에 비해 비교적 덜 아픈 부위이긴 하나, 노림수는 확실해 보인다. 어느 뺨 때리기 대회 경기장에 붙은 표어가 이 논쟁적 싸움의 일면을 드러낸다. No pain, No gain. 우승 시 뺨값은 최대 1만달러(1300만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