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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수백만원씩 써가며 산후조리원에 꼭 가야 하나요? 옛날에는 산후조리원 없어도 다 문제없이 애 낳고 살지 않았나요?”

“애 낳고 몸 회복하기도 힘든데 아기까지 보려면 산모가 너무 힘들죠. 옛날에도 산후조리원이 있었으면 다 갔을걸요?”

오는 7월 아내가 출산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아내와 산후조리원을 이용할지 여러 번 상의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A씨는 “아내는 산후조리원에 가면 편할 거 같다면서도 2주 동안 혼자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답답할 것 같다고 한다”며 “온라인 커뮤니티에 물어보면 불필요한 사치라는 말도 있고, 가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는데 집단 감염도 걱정된다”고 했다.

0.78.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에서 산후조리원은 논쟁적이다. 특히 지난달 서울 강남 최고급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들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에 집단 감염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산후조리원의 효용과 안전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집단 감염이 발생한 조리원은 2주에 이용료가 2000만원이 넘는 초고가에 각종 호화시설과 ‘바이러스 케어 시스템을 갖췄다’는 홍보도 했지만, 조리원에 있던 신생아 12명 중 5명이 RSV에 감염됐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산후조리원은 안전하지도 않고 값비싼 사치일 뿐”이라는 비난이 일었지만, 한편에선 “한국의 현실에서 산후조리원은 꼭 필요한 복지시설”이라는 주장도 팽팽하게 맞선다.

◇친정·시댁 대신 조리원 가는 산모들

한국에 산후조리원이 등장한 건 1990년대 후반 무렵. ‘친정·시댁 도움 없이 출산 후 편하게 쉴 수 있다’는 입소문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9년 전국에 418곳, 2016년에 612곳까지 늘어 정점을 찍고 2017년부터는 해마다 조금씩 줄어 작년 말 기준 전국에 475곳이 있다.

시설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출산 후 퇴원한 산모와 신생아가 2~3주간 머물며 산후조리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신생아들은 신생아실에 한데 모여 조리사로부터 수유와 수면 관리를 받고, 산모는 조리원이 제공하는 식사, 청소, 마사지 등의 서비스를 받으며 객실에서 산후 후유증 회복에 집중한다. 조리원을 이용한 여성들은 “집에서는 야간에도 수유를 직접 해야 하지만, 조리원은 야간에 수유를 맡기고 푹 잘 수 있는 게 큰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유부남들 사이에서도 “아내와 아이가 2~3주간 조리원에 있는 기간이 나에겐 육아 전 마지막 휴가였다”는 긍정적 반응도 적지 않다.

조리원을 이용한 여성들은 “조리원에서 마냥 푹 쉬다 오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모유 수유를 하는 산모는 신생아가 배고파 울면 신생아실 콜을 받고 수유를 하러 분주히 객실과 수유실을 오가야 한다. 오전, 오후 두 차례 2~3시간가량 ‘모자동실’ 시간에도 아이를 보살피고 기본적인 육아 교육을 받는다. “푹 쉬다 올 줄 알았는데 수유하고 이것저것 배우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쁘더라”는 후기도 적지 않다.

저출산과 지방 소멸 영향으로 폐업하는 곳이 늘고 있지만 산후조리원 이용료는 도리어 증가하는 추세다. 2017년 전국 평균 이용료(2주·일반실 기준)는 241만원이었지만 작년에는 307만원을 기록했다. 산후조리원에 대한 수요는 도리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은 저출산 대책 일환으로 경쟁적으로 공공산후조리원 조성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2021년 통계청의 산후조리원 실태조사에서 산후조리 장소로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비율은 2018년 75.1%에서 2021년 81.2%로 늘었다. 반면 친정이나 시가를 이용했다는 비율은 2018년 22.2%에서 15.2%로 줄었다. 출산 후 친정이나 집에서 몸조리를 하던 풍습이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한국 산모는 서양 산모보다 회복이 더디다?

조리원에 만족하지 못한 산모도 적지 않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감염 관리가 더 철저해지자 “객실에서 혼자 있으니 외롭고 답답해 오히려 더 힘들었다”는 반응이 크게 늘었다.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다 중도 퇴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둘째 자녀를 낳는 경우 첫째 자녀도 함께 돌봐야 하고 육아 노하우도 갖춘 부모들이 정부가 지원하는 산후 도우미 서비스만 이용하며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단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산후조리원 회의론이 꾸준히 제기됐다. 가장 크게 지적된 건 바로 집단 감염 문제.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5년간 산후조리원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신생아는 1165명에 이른다. 보통 RSV와 로타바이러스 감염이었지만 드물게 잠복 결핵에 걸리거나 구토·설사를 하다 숨진 신생아도 있었다. 모자보건법에 따라 산후조리원도 감염 관리 의무 등을 부과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신생아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감염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육아적 관점에서 산후조리원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아이들은 제각각 수유 간격이나 수유량, 수면 시간이 다른데, 태어난 직후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 엄마가 아이의 특성을 빨리 파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전문의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하더라도 24시간 모자동실을 하는 것이 감염 관리나 육아의 관점에서 바람직한데,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문 걸로 안다”고 했다.

산후조리원이 정말 산후 회복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일부 전문가들도 “다른 나라는 조리원 없이 산후 회복을 다 하는데, 왜 한국 여성들은 꼭 산후조리원에 가야 회복이 잘된다고 믿는지 의아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산후조리원은 중국·대만 일부 지역과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시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근거로 산후조리원을 “한국 여성들의 불필요한 사치”라고 공격한다. 2~3주 이용에 수천만원이 들어가는 호화 조리원의 경우 여성들 사이에서도 “과도한 사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은 한국의 상황에선 꼭 필요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오래 쓰기 어려운 근로문화 탓에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후유증에서 회복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 등 동아시아 여성들은 산후 회복이 어려운 인종적 특성이 있다”는 설도 널리 퍼져 있다. 체구가 크고 골반이 큰 백인·흑인과 달리 한국 등 동아시아 여성은 체구와 골반이 작고 태아의 머리는 서양권보다 동양권이 더 크기 때문에 출산이 힘들고, 그만큼 산후 회복도 더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사실로 보긴 어렵다. 인종적 차이와 산후 후유증의 인과관계는 명확히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정진훈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산후 후유증은 진통 시간이 길수록, 난산을 했을수록 심하게 나타난다”며 “몽골의 경우 태아의 머리가 동양권에서도 큰 편임에도 산모들이 출산 후유증에서 빨리 회복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고령 출산 늘어난 한국, 산후조리원도 늘 수밖에”

그럼에도 산부인과 전문가들은 “한국의 출산 트렌드를 보면 산후조리원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고령 산모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초산 평균 연령은 32.3세로, 미국(27.1세), 영국(29.1세), 일본(30.7세) 등 주요 선진국보다 3~5세 높다.

정진훈 교수는 “산후 후유증이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가장 큰 영향은 산모의 나이”라고 말했다. 산모의 체격이 클수록, 산도(産道)가 클수록 산후 후유증이 적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이지만, 무엇보다 산모가 젊을수록 출산도 쉽고, 회복도 빨리 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한국 여성들의 사회 진출과 결혼이 늦어지면서 35세를 넘은 고령 출산이 급증했다”며 “그럴수록 산후 후유증 회복도 힘들기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대한 수요도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핵가족화가 맞물린 것도 산후조리원의 수요를 늘리는 요인이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고령 출산이 늘면서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도 산후조리를 돕기 힘든 고령이 돼 전통 방식의 산후조리를 하기 어려워졌고, 젊은 부부들은 친정·시댁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선진국은 남편에게도 출산 휴가를 3개월 이상 부여해 부부가 같이 산후조리를 집에서 할 수 있지만, 한국은 남편들이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길게 보장받지 못하는 분위기라 산후조리원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조기에 결혼과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는 파격적인 주거 지원 등을 해야 지금처럼 부모의 노후자금을 기반으로 취업과 결혼, 출산이 늦어지고 고령 인구의 빈곤화까지 심해지는 퇴행적 현상을 단절시킬 수 있다”며 “저출산과 고령출산 문제는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인 만큼 다른 복지적 문제보다 최우선 순위에 두고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