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하 스즈메)’이 4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놀라운 일이다. 사실 ‘스즈메’를 보고, 잘 만들긴 했지만 과연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스즈메’는 일본인들의 집단 체험을 일본적 문화 코드에 담아 일본적 배경 속에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토록 ‘일본적’인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게 어필할까? 쉽지 않다고 봤다. 하지만 내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스즈메’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다. 불가항력적 자연재해 앞에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공포 그리고 슬픔이 테마다. 대형 지진이나 해일은 우리에겐 낯선 경험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공감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스즈메’는 또한 자연재해라는 테마를 일본적 기호들 속에 담고 있다. 이 영화에서 지진을 일으키는 괴물은 ‘미미즈’, 일본어로 ‘지렁이’다. 고대 일본인들은 땅 밑의 거대한 벌레가 지진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반면, 주인공의 이름은 ‘스즈메(鈴芽)’, 일본어로 참새를 뜻하는 ‘스즈메(雀)’와 발음이 같다. ‘미미즈’를 봉인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주인공은 바로 ‘미미즈’의 천적인 셈이다.
주인공 스즈메의 성(姓)은 이와토(岩戸·동굴)이고, 현재 규슈 동남부 미야자키현에 살고 있다. 실제로 미야자키현에는 아마노이와토(天岩戸)라는 신사(神社)가 있다. 일본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오오미카미(天照大神)가 이 동굴에 숨자 세상이 빛을 잃었고, 동굴에서 나오자 빛이 돌아왔다는 전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다.
스즈메와 함께 전국을 누비는 토지시(閉じ師·문 닫는 사람)의 이름은 무나카타(宗像). 길(道)의 안전을 책임지는 무나카타 세 여신(三女神)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영화 속에서 재난은 스즈메가 문 옆의 돌조각을 빼면서 시작된다. 이 돌조각이 바로 가나메이시(要石)이다. 고대 일본인들은 땅 밑에 커다란 메기가 있어 지진이 일어나며, 커다란 돌로 메기를 눌러야만 지진을 제압할 수 있다고 봤다. 이처럼 ‘스즈메’의 인물과 소재는 일본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스즈메’는 또한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고양이로 변한 가나메이시를 쫓아 스즈메는 규슈(九州)에서 출발하여 시코쿠(四国)의 에히메현, 관서(関西)의 고베, 관동(関東)의 도쿄를 거쳐, 드디어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도호쿠(東北) 지방, 후쿠시마, 미야기, 이와테현에 이른다. 가는 곳마다 스즈메는 문을 닫고 지진을 막는다. 그러나 이곳들은 모두 일본인들의 뇌리에 생생한 아픔으로 남아 있는 거대 자연재해들이 발생했던 장소이다. 현실에서는 재해를 막지 못했던 것이다.
스즈메의 여정의 절정, 도호쿠에서 스즈메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다. 어린 나이에 쓰나미로 엄마를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 자신을 스즈메는 위로하고 보듬어 준다. 일본 열도를 가로지르는 이 대장정의 목적은 바로 잊고 있던 자기 자신을 만나 스스로를 달래고 이해하여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일본인이 이 대목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이유는 아마 거기서 자기 자신을 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 성년인 일본인들은 2011년 3월 11일 자신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 텔레비전에서 물결에 휩쓸려 가는 사람들을 보며 두려움에 떨던 자신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스즈메’를 보며 그들 역시 과거로 돌아가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서 ‘스즈메’가 성공한 것은 한일 간 서로 다른 문화·역사·지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그려내는 일본인들의 체험,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일본인들의 무력감, 공포, 슬픔의 보편성에 한국인들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화해는 공감에서 비롯된다. 이 점에서 ‘스즈메’의 흥행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일 간 화해와 공감은 갈 길이 멀다. 지난주 일단의 국회의원들이 별 일정도 없이 후쿠시마로 건너가 일본 농수산물의 위험성을 부각하겠다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렇다.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무슨 문제랴. 세계 최고 원전 기술을 보유한 미국이 애초에 처리수 방류에 지지를 표했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한국 전문가를 포함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하여 조사 끝에 일본이 채택한 방류 방법들이 신뢰할 만하다는 1차 평가를 내렸다. 이젠 관련 분야 세계 최고 전문가들의 판단을 경청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동일본 대지진 후 10여 년. 일본인들은 그날의 슬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며 새로운 희망을 일궈보겠다 다짐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 가서 그 동네에 마치 역병이 창궐하기라도 하는 양 몰아붙여야 하는 걸까? 한국의 원전 근처 어느 지역에서 대규모 홍수로 희생자가 속출했는데, 일본 국회의원들이 와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방사선 수치만 재고 있으면 우리는 어떤 심정일까? 우리의 아픔에 공감을 받고 화해의 길을 열어 가자는 진정성이 있다면 이젠 우리도 그들의 아픔에 공감을 보일 때가 됐다.
몇 주 전 지인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제철 딸기를 선물받았다. 뚜껑에는 큼지막하게 ‘후쿠시마산’이라 적혀 있었다. 집에 가져와 가족과 함께 감사히 먹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아픔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밭을 일구어 가는 후쿠시마 농부들의 땀과 꿈이 알알이 담겨 있는 딸기는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