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부 시절 미 국방장관, CIA(중앙정보국) 국장을 지낸 리언 패네타(85)./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핵(核)·미사일·선동.’

북한이 중요한 시기마다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저지르는 이른바 ‘군사 도발 3종 세트’다. 오는 26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이 양상은 반복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보다 위협 수위가 한층 올라갔다는 점. 북은 지난달 말 미사일 탄두부에 총알 끼우듯 탑재할 수 있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처음 공개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물속에서 핵폭탄을 발사할 수 있는 핵어뢰 ‘해일’의 폭파시험을 진행했다. 핵탄두를 실어나를 수 있는 기술까지 확보했다는 걸 알리며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 지난 11일엔 김정은이 남한 지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핵무력을 공세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도 공개했다. 여기에 올 초 정찰 풍선 사건으로 미·중 간 갈등까지 고조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 어느 때보다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두 정상이 회담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동북아 정세가 크게 요동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2013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CIA(중앙정보국) 국장, 국방장관을 역임한 리언 패네타(85·Leon Panetta)를 최근 서울에서 만나 한미 동맹과 향후 한반도 정세 전망에 대해 물었다. 동북아 안보 관련 강연·포럼 참석차 방한한 패네타 전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동맹 7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양국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세계에 새롭게 알리는 중요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김정일 사망, 북 핵 개발 등 굵직한 사건을 경험한 동북아 안보 전문가로 꼽힌다. 현재는 바이든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정책 조언을 하고 있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부 장관, CIA(중앙정보국) 국장./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韓美 동맹,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

-70주년을 맞이한 한미 동맹에 대해 평가해 달라.

“한미 양국은 한국의 안보뿐만 아니라 한반도 지역 전체 안정을 위해 함께 부단히 노력해 왔다. 한미 동맹은 핵 보유국인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나올 성과를 예상한다면.

“엄중한 시기인 만큼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 첫날 환영 만찬 행사에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이라는 핵심 메시지를 밝힐 것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한미 동맹에서 중요한 건 양국이 어떤 나라보다 북의 핵 야욕을 단념시키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동맹에 가장 큰 위협은 무엇인가.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전 세계 핵 위협을 대표하는 국가로 지구상에서 가장 문제가 많고 위험한 국가다. 미국 정부가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핵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잠재적 위협을 예측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향후 한미 동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그동안 한미 동맹은 군사적 요소가 강했다. 앞으로는 ‘기술적 동맹’이 중요해질 것이다. 반도체 산업이 증명하듯 첨단 기술 분야에서 국가 간 협력은 군사 협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공지능(AI)·로봇·양자 컴퓨터 기술은 우리 안보를 지키는 핵심 분야가 됐다. 한국을 포함해 일본, 호주 등 주요 동맹들이 이런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선두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적대국들이 우리를 패배시키기 쉽지 않다는 걸 무겁게 받아들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평가해달라.

“윤 대통령은 최근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북에)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강한 의지를 잘 표명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앞으로도 한국이나 주변 지역을 위협할 수는 없다는 점, 그리고 한미 동맹이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일본과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위안부, 강제 징용 등) 양국 간 민감한 사안들은 한·미·일 동맹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긴장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윤 대통령의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다.”

-한국에선 ‘미국이 북의 핵 개발 등 주요 군사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양국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군사 도발에 긴밀하게 대응하려면 미국은 (군사 등) 기밀 정보를 적극 공유해서 신뢰 관계를 쌓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동맹국은 그 주요 정보를 철저히 기밀로 해야 신뢰가 유지된다. 적대국들은 이런 신뢰에 기반한 우리의 동맹 관계를 경계할 수밖에 없다.”

◇”北, 핵 포기 안 하면 종말 각오해야”

패네타 전 장관은 장관 퇴임 후인 2014년 출간한 회고록 ‘값진 전투들’(원제 : Worthy Fights)에서 알카에다 등 중동 테러 집단과 군사·기술력을 앞세운 중국의 부상, 한반도 정책에 대한 견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미 국방장관으로 활동하던 2011년 당시 이뤄진 오바마 대통령의 이라크 철군 결정에 대해선 “일부 미군을 잔류시켰다면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의 확대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북의 핵 위협에 대해 수차례 엄중 경고했다. 당시 북은 3차례 핵실험으로 핵폭탄 무기화를 마치고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고도화하는 상태였다.

리언 패네타 전 미국 국방장관, CIA 국장 회고록 값진 전투들(원제 Worthy Fights, 2014년 출간)./Penguin Books

-북은 이제 핵무기로 미국 본토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 위협을 어떻게 보고 있나.

“북한의 핵 위협은 10여 년 전 내가 국방부 장관으로 일하던 때보다 훨씬 커졌다. 단순히 핵무기 숫자가 많아진 게 아니라 핵무기를 실을 플랫폼(수단)과 발사 거리가 늘었다는 게 문제다. 북은 달리는 기차에서, 동굴에서, 호수에서도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고 미국을 포함한 태평양 지역 거의 모든 곳에 핵을 쏠 수 있게 됐다.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더 많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데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 북의 핵무기 위협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회고록에서 ‘한반도 유사시 한국 방어를 위해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한국에 전했다’고 밝혔다. 그 ‘핵우산’은 아직 유효한가.

“북한이 지금처럼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거나 핵폭탄을 남한과 미국을 상대로 사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모든 방면으로 대응할 것이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로 핵 공격을 시도하려고 할 때 미국이 결코 뒤에 물러서서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 정권에 확실히 주지시키는 게 중요하다. 북이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북은 정권의 종말(the end of their regime)을 맞을 것이다.”

-북핵 문제를 해소하려면 중국의 역할도 중요한데.

“CIA 국장과 국방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느낀 점은 북한 정권은 중국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2011년 중국 시진핑 주석(당시 부주석)을 예방할 당시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주변 지역 우방들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미국에도 위협이 된다’고 하자 시 주석도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면서 북한이 중국에도 골칫거리라고 했다.”

-중국 정찰 풍선이 미국 영토를 정찰한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나는 중국을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접근법은 힘에서 그들을 앞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아세안 등 동맹국이 힘을 강화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중국을 상대할 때 미국뿐만 아니라 태평양에 있는 다른 국가들도 미국 편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한다. 또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고, 대만과 관련해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는 게 필요하다. 무엇보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이 앞서가게 해서는 안 된다.”

2012년 1월 미 국방부 펜타곤에서 기자회견하는 오바마 대통령과 리언 패네타 (왼쪽) 국방장관./미 국방부

◇“근면한 한국인, 아버지 떠올리게 한다”

패네타는 미 국방장관과 CIA 국장을 역임하기 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비서실장, 연방 하원 의원(8선)을 지냈다. 바이든 대통령과는 40년 지기.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는 사실 출신만 보면 흙수저에 가깝다. 1938년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가난한 농부 집안의 ‘이민 2세’인 것. 아버지 카르멜로 패네타가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선의 3등석에 몸을 실을 당시 바지 주머니에는 25달러가 전 재산이었다. 미 서부 몬터레이에 정착한 패네타의 부모는 어렵게 돈을 모아 이탈리아 음식점을 열었고 두 아들을 길러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비결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던 부모님은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를 형과 내게 가르치셨다.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야 더 나은 삶을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은 분들이다. 그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 식당에서 유리잔 닦는 일을 하면서 컸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다.

“몬터레이에서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나처럼 이민 2세인 한국 청년과 친구가 됐다. 그를 통해 한국인의 문화가 이탈리아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한국인은 내게 뿌리(root)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을 중요시하고,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인들과 일하면서 그들의 근면한 모습에서 내 아버지를 떠올렸다.”

-경제나 문화 분야에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는데 어떻게 보는지.

“특히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강해졌다. K팝은 미국에서 큰 열풍을 일으켰다. 한미 양국이 문화 부문에서도 많은 교류가 있기를 기대한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아내 실비아와 1997년에 공동으로 설립한 연구소 ‘패네타 인스티튜트’ 운영에 집중하고 있다. 실비아는 세 아들을 모두 변호사로 길러낸 훌륭한 어머니다. 아내와 함께 연구소에서 향후 미국 사회를 이끌어나갈 민주주의 리더를 길러내고 있다. 사회 분열을 막고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일에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한국도 미래를 위한 차세대 리더 배출에 더 힘써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관심을 가진 K팝 가수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북핵, 중국 관련 무거운 주제에 대해 답할 때마다 근엄한 표정을 짓던 80대 노신사는 이 질문에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나는 실은 드라마 ‘오징어게임’도 못 봤고, BTS(방탄소년단) 노래도 잘 모른다. 내 아들, 손주들은 열광하겠지만. 나는 ‘마이 웨이‘의 프랭크 시나트라(미국 가수) 세대 아닌가. 그래도 한국의 열렬한 팬이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