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들 머리는 똑같아요.”
“구별이 쉬워요, 버섯 같잖아요.”
남자의 외모는 머리발이다. 머리발은 동시에 여권(旅券) 기능도 한다. 외국인의 한국 남자 식별법을 보여주는 최근의 유튜브 영상들은 한결같이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왜 한국 남자는 앞머리에 집착하는가. 서양의 경우 성인 남성은 대체로 앞머리를 위로 넘겨 이마를 드러내는 게 일반적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수북이 눈썹 위를 덮는 스타일이 10년 넘게 대세이기 때문이다.
◇앞머리가 정체성?
20~40대 한국인 남성의 ‘표준’을 양산한 헤어스타일은 2010년대 등장한 ‘투 블록 컷’(two block cut)이다. 앞·윗머리는 길게, 옆·뒷머리는 짧게 잘라 머리카락이 두 부위로 나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이 상태에서 주로 앞머리를 내려 다소 앳돼 보이는 탓에, 해외에서는 “어른이 돼도 소년의 머리를 유지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추억의 만화 ‘톰과 제리’ 속 제리가 빗으로 앞머리를 내린 그림이 ‘South Korean Boys’라는 인터넷 밈(meme)으로 떠돌았을 정도다. 여기에 ‘뿔테 안경’까지 더해지면 외국에서도 옷 앞섶에 태극기를 부착하고 다니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두상 때문에?
인간의 얼굴은 장두(長頭)와 단두(短頭)로 구분된다. 서양인 두상이 앞뒤는 길고 좌우가 좁은 장두형이라면, 동양인은 그 반대다. 정면에서 보면 자칫 얼굴이 넙데데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앞머리로 이마를 가리고 있는 직장인 허모(36)씨는 “따로 손질하지 않아도 되고 머리카락 덕에 얼굴이 작아보이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나름 ‘가림의 미학’이 발휘되는 셈이다.
직모(直毛)는 또 다른 이유로 꼽힌다. 머리카락 힘이 강해 직선으로 뻗치는 통에 앞머리를 자연스레 위로 빗어넘기기 쉽지 않으니, 차라리 내린다는 것. 지난 7일 프랑스 파리 출국 당시 배우 박보검처럼, 유명 연예인들의 적극적인 앞머리 사수 역시 유행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이유다. 이 같은 ‘K헤어’는 옆나라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년 넘게 일본 남성의 두피를 지배해온 ‘섀기 커트’(깃털처럼 가볍게 쳐낸 뒤 왁스로 모양을 내는 손질법)가 변화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한 일본인 여성은 지난해 유튜브 영상에서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 남자들이 많아지면서 헤어스타일도 점차 한국식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陽氣 부족해서?
관상학에서 ‘관록궁(官祿宮)’으로 칭하는 이마는 직업 및 명성과 관련 있는 부위다. 한 역술인은 “남자의 이마는 양기를 의미한다”며 “남자가 이마를 가리고 다니는 시대는 양기보다 음기가 강함을 의미한다”는 이색 해석을 내놨다. 마초의 시대로 불린 1990년대에는 기장이 짧고 곧추선 이른바 ‘터프가이’ 스타일이 다수였으나, 길게 늘어뜨린 작금의 앞머리는 여권(女權) 신장으로 힘의 성별 역전이 일어난 현실이 투영돼 있다는 것이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박성준풍수연구소장 박성준씨는 “머리카락 길이나 굵기로 그 사람의 성격 등을 유추할 수는 있다”면서도 “안경을 관상의 요소로 고려하지 않듯 변화하는 헤어스타일 역시 관상과 직접적으로 연결짓는 건 무리”라고 했다. 머리카락이 관상의 근본을 뒤흔드는 요소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청년 탈모라는 재앙
이마를 까고 싶어도 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청년 탈모의 급속한 확산 때문이다. 이제는 40대가 돼도 외모상 청년으로 분류될 만큼 신체 나이는 젊어졌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예외다. 시장조사 전문 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올해 전국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헤어 관리 및 탈모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3%가 탈모를 경험했다. 30대(73.3%), 40대(72.5%), 20대(45%) 순이었다. 20대 탈모가 50대를 앞선 것이다.
앞머리는 모발의 북방한계선이 점차 높아지는 ‘이마반’ 시기의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수북한 앞머리의 답답한 느낌을 줄이기 위해, 커튼처럼 앞머리를 절반씩 열거나, 앞머리가 무거워보이지 않도록 숱을 일부 쳐내는 ‘시스루 컷’ 등이 유행을 타고 있다.
◇북한 남자는?
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물론 남한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통일부가 지난달 공개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남한 드라마 등에서 영향받을 수 있는 옷차림이나 생활방식 등에 대해서까지 2017년부터 단속을 확대·강화했다. “남자는 앞머리가 눈을 덮지 않는 머리 모양으로 깎도록 했다”는 증언도 수집됐다. 바로 ‘패기 머리’다. 옆·뒷머리는 짧게 올려 치고 앞·윗머리만 길게 남긴 것으로, 김정은식 헤어스타일이다. 한 탈북자는 “공식적인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죄다 패기 머리로 자른다”면서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이발소 가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