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청소하면서 듣는 음악’, ‘마감하면서 듣는 음악’, ‘식탁에서 듣는 음악’ 같은 책을 보면서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음악이 있고, 내가 닿기 어려운 세계가 있구나라고.
술 마실 때 듣는 음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도 취향은 있으니 듣기 싫은 음악이 나오는 곳에서 마시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음악을 들으면서 술을 마시고 싶다고 특정할 만큼 음악에 대해 알지 못해서. 한마디로 조예가 없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플레이 리스트가 궁금하다며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닌 분이 있다. 소위 별을 받은 그런 식당을. 물론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다. 별을 받는 데에는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각과 후각, 시각만이 아니라 청각을 위해서도 특별한 연출이 있을 거라고. 여기는 라운지 음악, 여기는 모던 재즈, 여기는 1980년대 팝, 이런 걸 알고 싶다고 했다. 더 정확히 음악을 기억하기 위해 녹음기도 가지고 다닌다고 그는 말했다. 역시 조예는 저절로 깊어지지 않는다.
어느 레스토랑의 음악이 가장 좋았느냐고 다시 만난 그에게 물었다. 한 달에 한 번, 삼 년 넘게 별을 받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을 다닌다고 들었던 것이다. 한두 군데가 괜찮았다고, 하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별을 받았다고는 해도 한국 레스토랑에서의 음악이란 아주 부차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다고. 일종의 백색소음으로서. 그는 그러고 나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 리스트에 대해 들려주었다. 단골 식당에서 본인이 만든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며 그가 식사할 수 있기까지의 이야기를.
단골 식당의 음악이 별로라 류이치 사카모토는 고통받았던 것 같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느 날 단골 식당의 셰프에게 편지를 쓴다. 식당도 좋고 당신의 음식도 좋지만 음악이 그저 그렇다는 내용이었다. 플레이 리스트를 드리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함께. 식당의 셰프는 수락했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 리스트가 그 식당에서 플레이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 리스트가 애플 뮤직에도 유튜브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일할 때 듣는다고 했다. 밥을 평온하게 먹으려고 만든 플레이 리스트인데 이상하게도 일의 효율이 좋다면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부음을 듣고 음악을 찾아 식당을 순례한 그를 떠올렸다. 그리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플레이 리스트도. 말로만 들었던 류이치 사카모토가 큐레이션한 단골 식당의 플레이 리스트도 플레이해 보았다. 알려준 사람의 말대로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 아직까지 찾아보지 않은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음악에 대해 관심도 조예도 없는 사람. 음악에 다소 무심한 사람.
일단은 좋아할 수 없어서 그렇다. 음악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어나 문장, 고유명사 같은 것들은 듣자마자 저절로 스며든다는 느낌이 있는데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 모래를 손에 쥔 것처럼 스르륵 빠져나간다는 느낌이랄까. 당혹스럽다. 문자의 세계와 달리 음악은 도저히 기억할 수가 없다. 멜로디도, 제목도, 아티스트도, 가사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정을 붙이기 어려울 수밖에.
미미하지만 나에게도 취향은 있다. 존 콜트레인보다 델로니어스 몽크가 좋다거나, 하지만 델로니어스 몽크를 아침부터 듣고 싶지는 않다거나, 드뷔시와 라벨은 비슷한 것 같지만 라벨을 들을 때만 라울 뒤피의 그림이 떠오른다거나, 모차르트를 들으면 느껴지는 광기 어린 귀여움에 전율한다거나 하는. 하지만 이런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고 싶지는 않다. 뭔가 적확한 그 어떤 음악이 있으면 주장하겠지만 내게는 그게 없다.
세 시간이 넘고 47곡에 이르는 플레이 리스트에는 처음 들어본 아티스트가 대부분이었다. 이름을 아는 건 요한 요한슨, 빌 에반스, 막스 리히터, 팻 메스니, 델로니어스 몽크 정도. 음악보다 글자에 반응하는 나라서 음악보다 플레이 리스트 영상에 달린 댓글이 더 흥미로웠다. 고백하자면, 댓글을 보는 재미를 유튜브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증오나 조롱 같은 건 없다. 해당 콘텐츠나 사람에 대한 애정을 발신하면서, 재치를 버무리거나 진심을 담아 쓴 글들을 보면서 웃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한다. 종종 TMI(too much imformation)도 있어 정보를 얻기도 한다.
이것들을 소개하고 싶다. 먼저 류이치 사카모토가 단골 식당의 셰프에게 쓴 문제의 편지부터. “To 히로키 셰프. 저는 당신의 음식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의 레스토랑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백그라운드 음악이 너무 싫습니다. (…) 당신 레스토랑의 음악은 트럼프 타워 같아요.” 이 문장을 보고 트럼프 타워가 상징하는 바도 알게 되었다. 몰취향 내지 끔찍함! 그 식당은 뉴욕의 ‘카지츠(Kajitsu)’라는 것과 작년에 영업을 종료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식당의 관계자로 보이는 분이 적은 것 같은데, 카지츠의 셰프가 다음 레스토랑을 준비 중이니 관심 가져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당신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당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흐르게 하겠다는 댓글을 오래 보았다. 이것은 슬픈 일인가 아니면 기쁜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류이치 사카모토도 없고, 류이치 사카모토의 단골 식당도 이제 없지만, 플레이 리스트가 존재함으로써 남겨진 것들에 대하여 말이다. 플레이 리스트를 들으면 나는 가본 적이 없는 그의 단골 식당과 거기에 앉아 밥과 술을 마시는 류이치 사카모토가 떠오르는 것이다.
그 공간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음악만 흐를 뿐. 플로팅 타임라인(floating timeline)의 세계랄까. 이야기는 진행되는데 그 안의 인물들은 나이를 먹지 않고 변하지 않는 일상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게 플로팅 타임라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 세계 안에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획기적으로 변해 지금의 내가 된 게 아니라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로 살고 있기에.
변한 듯하지만 변하지 않고 흐른 듯하지만 흐르지 않는 이 시간에 어울리는 술도 있을까? 고여 있는 한 잔의 술과 같은 그런 음악은? 내가 이런 음악을 하나라도 알게 된다면 ‘술 마실 때 듣는 음악’을 고민해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