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고, 마이도 자셨네. 정신 좀 차려보이소!”
“쭈워요… 쭈워(추워요… 추워).”
지난 16일 오전 8시 10분. 부산 연제구 부산의료원 응급실 별관 앞에 순찰차 한 대가 섰다. 뒷좌석에서 까만 점퍼에 하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비틀비틀 내렸다. 20분 전 부산진구 서면 거리에 누워있다 발견된 베트남 유학생. 머리카락에 토사물이 묻어 있었다. 경찰의 부축을 받고 들어온 이 취객을 병상에 눕히자 열 평(약 33㎡) 남짓한 실내에 술 냄새가 진동했다. 오들오들 떠는 그에게 소방대원이 이불을 덮어주고 혈압과 체온을 쟀다. “혈압,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 정상입니다.”
이곳의 이름은 ‘주취해소센터’. 때로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신다. 주취해소센터는 만취해 제정신이 아니거나 집을 못 찾아가는 사람이 술이 깰 때까지 돌봐주는 장소. 부산 시내 취객 가운데 ①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②외상(外傷)이 없으며 ③일행이나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고 ④난동을 부리지 않는 사람들이 온다. 환자도, 범죄자도 아닌 일반 취객을 잠시 보호하는 것이다. 경찰관 두 명과 소방대원 한 명이 한 조로 근무하고 부산의료원(시립)에서 병상과 기초 의료 장비를 제공한다. 다만 숙취해소제는 구비돼있지 않았다. 지난 11일 전국 최초로 문을 연 부산 주취해소센터의 이틀 밤 현장을 ‘아무튼, 주말’이 관찰했다.
◇일상과 함께 취객도 돌아왔다
“드르렁… 드르렁… 컥!”
14일 새벽에는 40대 남성 A씨의 코 고는 소리가 센터를 메웠다. 2시쯤 해운대 한 술집 앞에서 잠든 A씨를 지나가던 시민이 보고 112에 신고했다. 지구대 경찰관이 출동해 주민등록증에 적힌 오피스텔로 데리고 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A씨가 현관 비밀번호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자 이곳 센터로 옮겨왔다. 체온이나 맥박은 정상이었지만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90~99%)를 벗어나는 85%에 그쳐 코에 산소 줄을 꽂았다. A씨가 ‘드르렁’ 코를 골다가 이따금 ‘컥’ 하면서 숨 넘어가는 소리를 낼 때마다 근무하던 소방대원과 경찰관은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호흡에 맞춰 들썩이던 배가 멈추면 달려가 호흡을 확인하길 수십 번. A씨는 오전 11시 20분쯤까지 8시간을 자다 깨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귀가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잠잠했던 밤 거리가 다시 취객으로 차고 있다. 지난해 전국의 주취자 관련 112 신고는 97만6392건에 달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하게 한 2021년보다 18만건가량 늘었다. 술 취해 폭행하거나 물건을 부쉈다는 식의 ‘범죄’ 신고는 제외하고 ‘보호 조치’ 신고만 추린 통계다. “술 취한 사람이 길에 누워 있다” “비틀비틀 찻길로 걸어 다녀 위험해 보인다” 등 취객 보호가 필요하다는 신고만 하루 평균 2675건 들어온다는 뜻이다.
◇구토 치우고 화장실 수발까지
A씨처럼 잠만 자고 일어나 귀가하는 경우는 양반이다. 14일 오후 6시 50분쯤 사상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실려 온 20대 네팔 남성 B씨는 비를 맞은 데다 바지에 소변을 본 채 들어와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일단 환자복으로 옷을 갈아 입히고 병상에 눕혔지만 잠을 자지 않고 계속 물과 음식을 요구했다.
“워터… 찬물, 찬물.”
소방대원이 미지근한 물을 갖다 주자 B씨는 서툰 한국말로 찬물을 달라고 했다. 경찰관이 배를 문지르는 보디 랭귀지를 동원하며 “찬물 마시면 배가 아프다”고 말렸지만 떼를 쓰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찬물을 떠다 줬다. 물을 마시면 5분 만에 화장실로 달려가 게워 내고 돌아와 다시 물을 달라고 보채기를 20여 번 반복했다.
“배고파. 밥, 밥.”
이번엔 배가 고프다고 보채기 시작했다. “물도 못 마시는데 우예 밥을 먹습니까. 제발 한 시간만 주무시이소. 예?” 최광현 경위가 간청하듯 설득했지만 말이 안 통했다. 전화로 통역사를 연결해 ‘조금만 자고 일어나 괜찮아지면 물과 먹을 것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술에 취해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담배, 담배.”
급기야 담배를 사겠다며 밖으로 나갔다. 최 경위가 따라붙어 “편의점 없어” “가게 없어” 하고 말렸지만 막무가내로 병원을 한 바퀴 다 돌고 나서야 다시 센터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응급실 앞에 있던 구급 환자에게 “담배!” 하며 달려드는 것을 최 경위가 “스톱! 스톱!”을 외치며 겨우 막아섰다.
해 질 무렵 들어온 B씨가 한숨도 안 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갔다. 이때 60대 남성 C씨가 센터로 실려 왔다. B씨와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뒤에서 들려오는 “우웨엑” 소리. C씨는 오자마자 누운 자리에서 구토를 했다. 경찰관이 토사물을 닦아냈고 소방대원은 기도가 막히진 않았는지 살폈다. 두 시간 정도 잤을까. C씨가 새벽에 일어나 바지춤을 잡았다. 경찰관이 “화장실 가고 싶으세요?” 물으니 끄덕였다. C씨가 혼자서 바지를 벗지 못하고 헛손질을 하자 경찰이 바지와 속옷을 내려주고, 용변이 끝나고는 다시 옷을 입혀주며 옆에서 수발을 들었다고 한다.
극한직업 아닐까. 두 취객에게 시달린 최 경위에게 “그 정도면 난동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휘두른 건 아니라 난동이라고 보긴 어렵다”며 “이 정도는 술주정”이라고 했다.
◇”경찰이 여관이냐” 비판도
술 취해 인사불성인 사람은 누가 얼만큼 보호해줘야 할까. 지난 2000년 전국 시(市) 단위 이상 경찰서 150여 곳에 만취한 사람을 격리하는 ‘주취자 안정실’이 설치됐지만 유명무실하다가 2010년 전면 폐지됐다. 외관이 유치장과 비슷해 인권 침해 시비가 있었고 자칫 사고라도 나면 경찰이 책임을 뒤집어쓰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됐다.
대신 2012년부터 국공립병원에 취객 전용 응급실인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두기 시작해 현재 전국에 21곳이 있다. 경찰 매뉴얼을 보면 의식 없는 만취자를 응급센터에 이송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취객을 병원에 데려가도 ‘주취자는 환자가 아니’라며 거부하는 일이 많다. 주취자는 말이 안 통하거나 난폭한 경우가 많으니 의료진이 꺼리는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월 펴낸 보고서에서 “국내에는 응급 의료 대상이 아닌 주취자를 보호할 마땅한 시설이 없다”며 “단순 주취자의 경우 일선 지구대·파출소에서 술이 깰 때까지 대기하는 형태로 보호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단순 주취자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최근 잇따랐다. 전국에 한파 경보가 내린 지난해 11월 30일, 서울 강북구에서 경찰관 두 명이 술 취한 60대 남성을 자택인 다가구 주택 대문 안 계단에 앉혀 놓고 돌아갔다가 취객이 동사(凍死)한 일이 있었다. 올 1월에는 경남 창원에서 30대 남성이 지구대 탁자에 엎드려 자다 일어나던 중 넘어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같은 달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취객이 경찰 보호를 거부하고 찻길에 누워 있다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부산 주취해소센터는 응급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취객까지 수용하기 위해 마련됐다. 다만 ‘왜 세금을 들여 술 취한 사람 숙박을 해결해줘야 하느냐’는 부정적 시선이 적지 않다. 최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한 경찰은 “경찰이 택시입니까? 여관입니까?”라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주취해소센터에서 일하는 이들은 어떤 생각일까. “여기 실려오신 분들, 지구대나 응급실로 갔으면 경찰관이든 간호사든 두어 명은 발이 묶였겠지요. 그렇다고 밖에 그대로 계셨다가는 범죄나 사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데 누군가는 살펴줘야 하지 않겠습니꺼. 근데, 이거 생각보다 간단치는 않네예. 허허.”
24시간 교대 근무가 마무리될 즈음 경찰관이 “아침을 먹고 가라”고 했다. 주말이 끝나고 시계는 월요일 오전 8시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