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상엽(왼쪽부터) 카이스트 교수, 김빛내리·현택환 서울대 교수. / 카이스트·조선일보 DB, 그래픽=송윤혜

한국 과학계는 10월만 되면 작아진다. 매년 10월 초에 생리의학·물리·화학 부문 순으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발표되는데 한국은 한 번도 이름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 노벨 과학상을 꾸준히 배출하는 미국(250명), 독일(86명), 일본(23명)과 비교당하며 ‘그 많은 인력·자원을 투입하고도 왜 노벨상 하나 받지 못하느냐’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한국은 영국·프랑스보다 과학 연구자가 더 많고, GDP(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에서도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2020년 기준)를 자랑한다. 임지순 포스텍 석학교수는 “그래서 노벨 과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은 한국 과학자들에게 1년 중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달”이라고 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최근 들어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 과학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 임지순 교수는 한국인 중 노벨 물리학상에 가장 근접한 학자로 거론된다. 1998년 미국 과학자들과 함께 ‘네이처’에 발표한 신물질 탄소나노튜브에 대한 논문 덕분이다. 그는 전도성이 높은 탄소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금속 성질이 없어지면서 반도체 성질을 띤다는 것을 최초로 규명했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집적도를 1만배 높인 차세대 반도체를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연 것. 임 교수는 1980년대에 모든 고체 화합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을 처음으로 개발해 물리, 화학 분야 발전을 크게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생물, 화학 분야에서도 세계적 석학이 나오고 있다. 김빛내리 서울대 석좌교수(생명과학부)는 우리 몸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리보핵산(RNA)의 작은 조각인 마이크로 RNA가 만들어지고 작동하는 과정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노벨 생리의학 부문 유력한 수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면 세포 증식, 분화, 노화 등 생명 현상의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암, 치매와 같은 난치병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것. 이상엽 카이스트 특훈교수(생명화학공학과)는 미생물의 유전자를 조작해 친환경 화학제품과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 대사공학을 창시했다. 예를 들어 유전자를 변형한 대장균에 폐목재를 먹이로 줘 친환경 플라스틱 원료를 만드는 기술이 가능하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석상일 특훈교수(에너지화학공학과)는 최근 태양광 발전이 각광을 받으면서 수상 가능성이 높아지는 화학자.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로 이 분야 세계 최고 발전 효율(26.08%)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화학생물공학부)는 균일한 형태의 나노 물질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로 매년 노벨 화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