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함부로 부르다간 베인다.

“아줌마.” 익명의 여인을 격분케 하는 강력한 한마디, 지난달에는 지하철 열차 안에서 칼부림까지 야기했다. 다른 승객이 휴대폰 소리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면서 자신을 아줌마라 칭했다는 이유였다. 휘두른 회칼에 세 명이 다쳤다. 어떻게 가방에 회칼을 소지하고 있었는지 합리적 설명은 어렵지만, 지난 18일 열린 재판에서 여성은 자신의 죗값을 부인했다. “소리를 줄여 달라고 하길래 ‘아줌마 아닌데요’라고 얘기했다”며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이다. 해당 여성의 나이는 35세다.

‘아줌마’는 우리 사회의 멸칭(蔑稱)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나이 들고, 부끄러움 없는, 그래서 수준 미달이라는 인격 비하의 의미로까지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비단 한국에서만 그런 건 아니다. 아줌마라 불렀다는 이유로 삿포로의 어느 버스 안에서 남자 중학생을 폭행한 20대 일본 여성, 우타르프라데시주(州) 시장 골목에서 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때린 40대 인도 여성의 사연이 해외 토픽으로 소개됐다. 물론 저마다 ‘발작 버튼’은 상이할 것이나 도화선은 한결같다. “아줌마”는 왜 주먹을 부르는 말이 됐는가.

◇나 아줌마 아닌데요… 60대도 발끈

본지가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해 30~60대 여성 2008명에게 물었다. ‘아줌마’ 호칭이 기분 나쁘시냐고. “그렇다”며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건 30대(64%), 40대(60%)였다. 50대부터는 본인을 ‘아줌마’로 인식하는 비율이 더 높아졌으나, 여전히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50대 응답자 500명 중 223명, 60대 응답자 500명 중 161명이었다. 광주에 사는 69세 여성, 경남에 사는 68세 여성 등 법적 노인도 다수 포함돼 있다. 기분이 나쁜 이유로는 “나는 아줌마가 아니라고 생각하므로”(31%)가 가장 높았다.

헷갈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줌마’를 결정 짓는가. ‘외모’(35%)가 1위였다. 결혼 여부(27%)와 나이(25%)를 앞질렀다. 겉으로 봤을 때 젊어 보이느냐, 아니냐가 호칭을 판가름한다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아줌마(아주머니)는 ‘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나이를 가늠한다는 것은 즉석에서 민증을 까보지 않는 한 외모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주관식 문제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 역시 캠퍼스 바깥에서는 ‘아줌마’로 불린다. 곽 교수는 “대부분 스스로에 대한 평가는 관대한 경우가 많기에 ‘남이 바라보는 나’와 격차가 발생하면 발끈하게 된다”며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특히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호칭은 매우 민감한 문제”라고 말했다. 응답자의 69%는 “호칭에 따라 태도가 달라진다”고 했다.

◇달라진 생애 주기, 호칭은?

배우 김희선이 억척 아줌마로 등장했던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식칼을 들고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드라마가 방영된 2015년 당시 김희선의 나이는 38세였다. /MBC

생체 나이는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 평균 초혼 연령도 매년 기록을 경신 중이다. 지난해 여성은 31.3세, 남성은 33.7세.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2002년에는 여성은 27세, 남성은 29.8세였고, 평균 산모 연령은 29.7세였다. 당시만 해도 사회 통념상 서른 살이면 얼추 결혼도 했고 애도 있겠거니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아줌마’라 불러도 되는 나이로는 ‘40세 이상’(30%)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뒤를 이어 50세 이상(23%), 45세 이상(14%), 60세 이상(11%) 순이었다. ‘30세 이상’ 응답률은 3%에 불과했다. 애도 낳지 않고 결혼도 늦다 보니 늙음의 유예 기간은 길어졌다. 그러나 아줌마가 내포한 이미지는 지금은 할머니가 된 ‘과거의 아줌마’에 머물면서 이른바 ‘호칭 지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에서 아줌마(아주머니)의 정의를 수정했다. ‘남남끼리에서 결혼한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에서 ‘남남끼리에서 나이 든 여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로. “달라진 사회 분위기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아저씨’는 어떨까?

'아저씨'의 대명사 배우 원빈. 물론 외모적으로 대부분의 진짜 아저씨와는 거리가 멀다. /CJ엔터테인먼트

30~60대 남성 2008명에게도 물었다. ‘아저씨’ 호칭이 기분 나쁘시냐고. “나쁘지 않다”가 70%로 월등히 높았다. 이런 반응은 전 연령대에서 관측됐다. 무엇이 ‘아저씨’라 부를지 말지를 결정 짓느냐는 질문에는 여성과 동일하게 ‘외모’(37%)가 1위를 차지한 만큼, 외모에 대한 타인의 판단에 여성보다 덜 민감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한 공기업 직원 박모(36)씨는 “남자들은 20대 군복무 시절부터 듣게 되는 단어라 큰 거부감이 없지 않으냐”며 “단어의 뜻보다 ‘아저씨’라고 부를 때의 태도가 거슬리는 경우는 있다”고 했다.

‘아줌마’는 기본적으로 낮춤말이다. 그래서 ‘아줌마’ 역시 단어 자체보다 부를 때 상황이나 말투가 빈정을 상하게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 나쁘다”라는 응답이 2위(22%)를 차지한 것도 같은 맥락. 외국계 기업 여성 직장인 한모(36)씨는 “격식 있는 자리에서 ‘아줌마’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아줌마’라는 말 속에 무례함이 내재돼 있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칭에서 성별 흔적 지워라

40여년 간 불려온 친근한 이름, 야쿠르트 아줌마. 2019년 '프레시 매니저'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국야쿠르트

호칭에는 특정 대상을 향한 사회적 인식이 담겨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창립 50주년을 맞아 ‘야쿠르트 아줌마’를 ‘프레시 매니저’로 변경했다. 지난해 대한항공은 스튜어디스(여자)와 스튜어트(남자)로 따로 불려온 기내 승무원 명칭을 통일해 ‘플라이트 어텐던트(Flight Attendant)’로 바꿨다. 호칭에서 성(性)을 제거한 ‘성 중립’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는 2021년 회장직을 뜻하는 체어맨(Chairman) 명칭에서 ‘맨’을 떼어내 ‘체어’로 바꿨다. 경쟁사 GM도 마찬가지다. “포용적인 기업이 되기 위한 많은 변화 중 하나”라는 설명과 함께.

기업에서 아예 직급과 호칭을 없애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여전히 과도기다. 대기업 직장인 허모(36)씨는 “평등 문화를 위해 수년 전부터 호칭을 ‘님’으로 일원화했지만 여전히 부하 직원에게 반말을 쓰는 상사가 존재하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 안에 뿌리 깊게 박힌 소통 문화를 바꾸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호칭 인플레이션… “저기요”가 편해요

지난해 알바천국이 배포한 설문조사 결과.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행하는 손님들의 갑질 중에는 야만적인 호칭도 포함됐다.

선생님, 사장님, 사모님, 이모님, 언니…. 아줌마·아저씨를 대신하는 여러 시도가 있지만 요령부득이다. 이름을 아는 경우 뒤에 ‘씨(氏)’를 붙여도 존칭이 되지만, 이 또한 무례한 용례라는 인식이 있어 사용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천국’이 MZ세대 아르바이트 직원 16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는 인상적이다. 가장 듣기 좋은 호칭으로 ‘저기요’(36.3%)가 꼽힌 것이다. ‘사장님’(22.3%)과 ‘선생님’(11.7%)을 앞서는 수치다. 국립국어원이 2020년 펴낸 언어 예절 안내서(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는 ‘저기요’를 사회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편안하게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이라 기술하고 있다. 가장 무난한 호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이랬다면 지하철 칼부림 소동은 피할 수 있었을지도. “저기요, 휴대폰 소리 좀 줄여 주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