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ㅁㅊㄴ.”

작년 서울의 어느 초등학교 6학년 담임교사는 카카오톡 말풍선 하나를 두고 고심에 빠졌다. 반 학생이 다른 학생을 단체 대화방에 초대해 뜬금없이 초성(初聲)으로 욕을 했고, 이후로 이유 없이 따돌리기 시작했다는 신고를 받았다. 메시지를 보낸 학생을 불러 왜 욕을 했냐고 물어보니 깜찍한 답이 돌아왔다. “욕한 게 아니라 학원 ‘마쳤냐’고 물어본 건데요? 선생님, 뭐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일러스트=비비테

비슷한 일이 법정까지 갔다. 지난달 서울북부지법에서 단체 대화방에서 “ㅂㅅ”이라고 한 게 모욕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럼 앞으로, 초성으로 욕해도 되는 걸까?

사건은 이렇다.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인 단체 대화방, 단체 대표 A씨가 말다툼을 하던 회원 B씨에게 “군대 근처에도 못 갔을 것 같다”고 하자 B씨가 “ㅂㅅ 같은 소리” “(그게) 이 문제에서 뭐가 중요한데 ㅂㅅ아”라고 받아쳤다. A씨는 ‘ㅂㅅ’이란 말에 모욕감을 느꼈다며 고소했다.

1심은 ‘ㅂㅅ’이 ‘병신’이라고 한 것과 같아 모욕죄가 성립된다며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ㅂㅅ’과 ‘병신’은 문언상 일치하지 않으므로 완전히 동일시하기 어렵다”며 “오히려 직접적인 욕설을 피하면서 이를 연상할 수 있는 초성만 추상적으로 기재했다”고 판시했다. 검찰이 상고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소셜미디어에서는 “ㅂㅅ은 욕이 아니란다” “앞으로 판사 욕할 땐 ㅂㅅ이라고 하면 되겠다”는 말들이 나왔다.

‘ㅂㅅ’을 ‘박수’나 ‘복사’라고 굳이 우기지 않더라도 엄연히 다르다는 견해는 이전에도 있었다. 국립국어원은 2017년 ‘청소년 언어문화 실태 심층 조사 보고서’에서 “초성체 사용은 표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온라인의 특성이 반영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비속어나 욕설 사용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신발’이나 ‘개나리 십장생’처럼 욕설을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초성으로 욕하면 문제가 없는 걸까. 반대로 초성 욕설이 모욕죄로 인정된 경우가 있다. 2018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행을 폭로한 김지은씨 관련 기사에 안 전 지사 측근 C씨가 “ㅁㅊㄴ”이라고 단 댓글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C씨는 법정에서 “단순히 초성을 나열한 것이라서 모욕적인 표현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통념상 일반인들은 피해자에 대한 욕설로 받아들이기 충분하다”며 모욕 혐의를 인정한 것. C씨는 항소했으나 곧 취하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전문가들은 초성체가 구어(口語)도 문어(文語)도 아닌 인터넷·모바일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생겨난 또 다른 차원의 언어 표현 방식으로, 이와 관련된 윤리와 규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조성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초성 표현은 본래 단어와 같다고도 다르다고도 단정할 수 없고 해석이 다양할 수 있어 독특한 문화”라며 “초성체가 유행하고 일반화하면서 다툼도 많아질 수 있다”고 했다. 윤현석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는 “욕을 초성으로 했느냐 아니냐가 유무죄를 가른다기보다 맥락이 더 중요하다”며 “명백하게 남들 앞에서 비방하려는 의도로 쓰인 경우 ‘ㅂㅅ’이라는 표현도 모욕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