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첫 금연 아파트 지정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진한 기자

MZ들은 알까. 과거 고속버스엔 좌석마다 재떨이가 붙어 있었다는 걸. 1980년대만 해도 관공서와 회사 사무실, 지하철 역내와 기차역에는 담배 연기가 뿌옇게 들어차 있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흡연 문화가 번성한 당시 풍경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본 MZ들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세상은 변했다. 이제는 ‘혐연’의 시대. 담배의 해악이 널리 알려지면서 흡연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아파트 곳곳에선 흡연을 둘러싼 갈등이 여전하다. 아니, 양상은 더 심각해졌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실내 흡연을 삼가 달라는 아파트 이웃의 호소문에 살벌한 답글이 올라왔다. “맹목적으로 삼가 달라고 하지 말고, 시간대를 알려주십시오. 안 그래도 흡연할 곳 없는데. X팔 3자들은 조심하시고 해당 분만 답해보시오.”

◇금연 아파트인데... 자다가도 ‘켁켁’

지난 2일 오후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로 차를 몰았다. 2016년 정부가 ‘금연 아파트(금연 공동주택)’를 시행하자 전국 최초로 금연 아파트로 지정된 곳 중 하나다. 안을 둘러보니 실제로 각 동 1층 입구에 ‘금연공동주택’이라는 푯말이 빠짐없이 붙어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내 벤치와 놀이터 곳곳에 평온하게 앉아 있던 주민들은 ‘층간 흡연’이라는 말을 꺼내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사 온 지 4년 됐다는 한 70대 주민은 “오밤중에 자다가도 갑자기 담배 연기가 목에 확 들어와서 캑캑대다 깬다”고 했다. 범인(?)은 이웃집 독거노인. 옆에 앉은 할머니가 “그 집이 담배를 억수로 피우는 걸로 유명하다”고 거들었다. ‘혹시 항의는 해보셨냐’고 묻자 할머니는 팔을 저었다. “에구, 혼자 사는 노인네한테 내가 뭐라 그러겠어. 말해봤자 소용도 없고. 기자 양반이 대책 좀 만들어봐.”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을 둔 40대 주부도 분통을 터트렸다. “요즘은 좀 덜한데, 작년만 해도 시시때때로 담배 연기가 올라와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관리사무소에 요청해서 안내 방송을 해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아랫집 윗집 다 찾아가 봤는데 피우는 사람이 없다고 하고. 지금도 어디서 담배 연기가 올라오는지 몰라요.”

금연 아파트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금연 아파트는 주민 절반 이상이 동의하면 각 지자체가 아파트 복도, 계단, 엘리베이터, 주차장 등을 금연 구역으로 지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5만~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아파트 가구 내는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지 않는다. 사유지이기 때문이다. 일부 흡연자들이 이웃의 호소에도 ‘내 집에서 내가 피우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큰소리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럼 집에서 흡연하지 않는 흡연자들은 어디서 담배를 피우는 걸까. 단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경비원에게 묻자 “단지 안에 흡연 구역은 따로 없다”고 답했다. “사실 밤에는 사람들이 몰래 아파트 뒤편 으슥한 곳에서 살짝들 피워요. 우리야 ‘꽁초만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정도지.” 폐쇄된 아파트 동 뒤편 입구 주변과 인도 옆 화단에 아무렇게나 버린 꽁초들이 적지 않게 보였다.

전국에 금연 아파트는 2021년 말 기준 2265곳. 최근에도 여러 지자체가 새로 지정된 금연 아파트를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린다. 금연 아파트 지정으로 금연하는 사람이 늘면서 흡연 민원과 갈등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에서 금연 아파트 효과를 분석해 보니 아파트 전반의 흡연 문제는 줄었지만 도리어 층간 흡연 민원과 갈등은 증가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애초에 금연 아파트 지정에 동의한 건 층간 흡연이 감소할 것을 기대해서인데, 실제로는 금연 아파트가 층간 흡연을 규제하지 못하니 결과적으로는 불만과 갈등을 더 증폭시킨 것”이라고 했다.

◇'민원 폭주’에 관리사무소도 골치

금연 아파트 정책이 시행된 이후에도 층간 흡연 민원이 끊이지 않자 정부는 추가로 대책을 내놨다. 국토교통부는 2018년부터 층간 흡연이 발생할 경우 관리사무소 등이 실태를 조사하고 문제가 된 가구에 흡연 중지를 ‘권고’할 수 있도록 공동주택관리법을 개정했다.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물으니 “실효성이 없다”고 답했다. 아파트 환기 시설이 이어져 있어서 담배를 피우면 연기가 쭉 따라 올라가니 민원이 들어와도 어느 집에서 피우는지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답답해서 경찰에 신고하는 분들도 있죠. 그럼 뭐 해요. 경찰도 집에 들어가서 확인할 권한이 없으니까 신고받고 왔다가 그냥 돌아갑니다.”

단지 내에 흡연 구역을 만들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일부 흡연하는 분들이 그런 요구를 하시는데, 여기가 공공 기관은 아니잖아요. 주민 중에 흡연 구역 자체를 싫어하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 그건 불가능해요.” 이성규 센터장은 “금연 아파트로 지정을 해도 단속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데다 별다른 지원도 없다. 정작 층간 흡연 갈등은 막지 못해 사실상 흡연자와 비흡연자 간 갈등만 조장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관리사무소들은 “금연 아파트의 효과가 있는지 체감이 안 된다. 민원은 여전히 많아 힘들다”고 했다.

◇법으로 ‘층간 흡연’ 막을 순 없나

그럼 법을 바꿔 아파트 가구 내에서도 흡연을 금지할 순 없을까. 여러 금연협회와 의료계를 중심으로 이런 주장이 나오긴 했다. 아무리 사유 공간이라 해도 타인의 건강권을 해치는 걸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흡연권’과 ‘혐연권’을 시민의 기본권이라고 인정하면서 혐연권이 헌법이 보장한 건강권과 생명권을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흡연권은 혐연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흡연권에 앞서 개인의 사유 공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건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너무 크기 때문. 아파트 가구 내 흡연 금지 법안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피해의 인과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원용 변호사(법무법인 심안)는 “지금도 층간 흡연으로 피해 보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법원이 피해를 인정해도 위자료 액수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소송으로 얻는 실익도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박민성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스)는 “가구 내 흡연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이 제정되더라도, 문제된 가구를 찾아내고 피해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법으로 층간 흡연을 근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성규 센터장은 “현실적으로는 흡연 구역을 활용해 피해를 줄이고, 아파트 내 환기 시설을 개선하는 쪽이 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5년부터 지어진 아파트는 가구마다 환기구에 역류를 방지하는 차단 장치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 아파트의 약 90%가 이에 해당되지 않는 상황. 이성규 센터장은 “담배 연기가 바로 빠져나가는 신형 환풍 시스템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게 가구 내 흡연 금지보다 현실성이 있다”며 “금연 아파트로 지정된 구축 아파트에는 환풍기 차단 장치 등을 피해 가구에 지원해 주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집에선 담배 냄새가 안 난다고 층간 흡연을 남의 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최근엔 실내에서 냄새가 적은 전자담배를 피우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액상형 전자담배 흡연율은 2.7%에서 3~4%로 조금씩 느는 추세다. 향이 없어도 실내 흡연을 하면 담배의 독성 물질이 윗집과 아랫집에 퍼질 수 있다.

아파트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 먼발치에 한 어르신이 아파트 뒤편 구석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고개를 휙 돌렸다. 좀 전에 ‘다들 몰래 뒤편에서 살짝들 핀다’고 알려준 경비원 아저씨였다. “에휴, 피울 데가 없는데 어떡해. 이거라도 피워야 답답한 게 가시는데.”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