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키니스 장난감 병원’ 의사들은 내과·외과·정형외과 등 전천후다. 주변에 놓인 수많은 환자가 이를 증명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병원에 간다는 건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지난 2일 오후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서울 구로동에서 이송됐는데, 찰과상은 그렇다 치고 완전히 의식불명이었다. 의사는 곧장 심폐소생 및 개복(開腹)을 실시했다. 쇠붙이로 내부를 헤집자 원인이 보였다. 심장 쪽에 이물질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상처를 다시 봉합하니 기적처럼 환자가 움직였다. 유아용 장난감 ‘꼬마버스 타요’는 어린이날을 며칠 앞두고 이렇게 소생했다. 30분쯤 집도한 인천 주안동 ‘키니스 장난감 병원’ 심범섭(77)씨는 “이 정도면 빨리 끝났다”며 “수술이 3일간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난감 병원’은 어린이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을 무료로 고쳐주는 동심(童心)의 종합병원이다. 출산율 감소와는 반대로, 이곳을 찾는 발길은 늘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가 겹치며 살림살이가 팍팍해진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3일 기준으로 장난감 전문 판매 업체 ‘토이저러스’ 판매 순위 20위권의 평균 가격은 5만6790원. 애들 장난감 하나 마련하려면 5만원은 줘야 하는 것이다. 유아용 노래 마이크 등을 들고 이날 병원을 찾은 주부 이미경(38)씨는 “고장 날 때마다 버리고 새로 사자면 부담이 큰데 집 앞에 이런 곳이 있어 안심된다”고 말했다. “뿅뿅” 진료음과 함께 환자는 쉴 새 없이 몰려왔다. 매일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보통 15상자가 도착한다. 토이스토리, 세서미스트리트, 미니언즈…. “매년 수리 장난감 개수만 1만개”라고 했다.

◇아프면 병원으로

서울 서초동에 새로 들어선 장난감 병원 진료실을 찾은 한 아이가 다친 장난감의 증상을 의사에게 설명하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서초동에도 장난감 병원이 들어섰다. 지난달 1일 문을 연 ‘서리풀 장난감수리센터’다. 52㎡ 규모 1층짜리 건물, 진료실에는 뽀로로부터 로보카폴리에 이르는 익숙한 얼굴이 얌전히 대기 중이었다. 아침부터 동네 주민 박신우(5)군이 가장 애정하는 만화영화 ‘헬로카봇’의 변신 로봇 ‘폰’을 손에 꼭 쥔 채 병원을 찾았다. “쉬운 건 내가 고치겠는데 너무 어려워서요….” 폰의 갈비뼈 쪽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로봇이 부상하는 이유는 대동소이하다. “던지다가요!” 떨어뜨리거나 던지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니다.

진료비는 사실상 무료. 이곳에 상주하며 장난감을 고치는 사회적 기업 ‘뚝딱장난감’ 소속 이욱상(70)씨는 “부촌이라 누가 수리 맡기러 오겠나 반신반의했는데 예상이 틀렸다”며 “값도 값이지만 장난감에는 추억이 묻어 있으니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 입원 환자만 130명을 넘겼다. 무료 수리뿐 아니라 장난감 기부도 진행한다. 구청 관계자는 “자원 재순환의 의미를 알려주는 환경 교육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장난감 병원은 전국적으로 증가 추세다. 경기도 남양주시도 지난 3월 ‘장난감 병원’(토이 닥터)을 열었고, 춘천시청·의정부시청·영주시청 등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장난감 병원만 현재 10여 곳에 이른다.

◇어버이도 어린이였다

인천 '키니스 장난감 병원' 입구에 붙어있는 편지들. 장난감 보호자들이 이곳 의사들에게 보내온 것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다시 인천으로. 어른도 병원을 애용한다. ‘키니스 장난감 병원’ 내과 전문의로 불리는 이종균(80)씨는 이날 태양열 충전판 밑에 회전하는 보석이 매달린 정체불명의 승용차용 실내 액세서리를 수리하고 있었다. 이씨 뒤편에는 수퍼카 부가티(Bugatti) 피규어도 놓여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최첨단 장난감도 심심찮게 본다”며 “장난감이야말로 공학과 미학이 결합한 종합 예술”이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어버이는 어린이였다. 최근 수리 요청이 급증한 장난감 품목으로는 ‘응원봉’이 있다. 방탄소년단 등 아이돌 콘서트에서 가열차게 휘두르다 부러진 것들이라고 한다. 지하 상가의 20평 남짓한 공간에 어린이와 ‘어른이’들이 보내온 장난감이 빼곡하다.

그중에서도 응급 수술 1순위는 언제나 ‘모빌’이다. 갓난아기가 누워 바라보다 쉬이 잠들게 하는 장난감. 2011년부터 활동 중인 원년 멤버 김기성(77)씨는 “육아의 고충을 잘 안다”고 말했다. “아이가 잠들어야 부모들이 잠시라도 쉴 거 아닙니까. 그러니 제일 먼저 고쳐야죠.” 퇴직 교수 등이 모여 출범한 이 비영리 단체는 2018년 경기도 수원, 2020년 인천 서구에 분원을 내며 지속 확장하고 있다. 코오롱그룹 ‘우정선행상’, 현대중공업그룹 ‘아산상’ 등을 받기도 했다. “식대와 재료비로 월 100만원씩 나가는데 이곳저곳에서 후원금을 받고 상금·지원금 등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고 했다. 병원 입구에 보호자들이 쓴 편지가 여럿 붙어 있다. “의사 선생님, 많은 분의 추억을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형 병원도 있어요

허물어진 곰돌이(위)는 인형 병원에서 대수술을 거쳐 새 삶을 되찾았다. /토이테일즈

인형은 중환자가 대부분이다. 평생의 반려자, 고령이기 때문이다. 서울 역삼동의 인형 병원 ‘토이테일즈’ 김갑연(63) 대표는 “시간이 흘러 천이 상하는 데 20년 정도 걸린다”며 “그래서 주고객이 20대 후반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강아지가 물어뜯어 안면 성형을 해야 하거나 아예 전신을 복원해야 하는 상태도 있다. 수술비가 많게는 수십만원에 달해도, 매달 50~70건의 수술 의뢰가 들어온다. 인형은 유년의 추억 그 자체이기에, 인형 수술의 제1원칙은 ‘원형 보존’이다. “보기 싫게 튀어나온 실밥이 있어도 절대 손대면 안 된다. 그거 잘랐다고 난리 난 적이 있다.”

실밥마저 소중하기 때문이다. “뇌질환으로 중학교 때 갑자기 쓰러져 병원 생활을 오래 하신 손님이 있었다. 담당의로부터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애벌레 인형을 선물받은 모양이다. 그걸 대학원생이 돼서도 갖고 있더라. 자기 인형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우는 어른이 정말 많다.” 어떤 인형은 대물림된다. “아버지 유품이라면서 ‘헬로 키티’ 인형을 갖고 온 60대 남성이 있었다. 그걸 자기 딸한테도 물려준 모양인데, 원단을 건드리면 툭툭 터질 정도였다. 거의 복제하는 수준으로 고쳐드렸다. 예전과 너무 똑같다며 그 인형을 들고 아버지 산소에 같이 갔다고 한다. 이들에게 인형은 인형이 아니라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병원에 오는 것이고.”

◇장난감, 지구를 지켜라

지난해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이들이 한국에서 선물받은 장난감을 들고 즐거워하고 있다. 전국에서 수거해 깨끗하게 수리하고 소독한 것들이다. /그린무브공작소

끝내 버려진다면, 의외로 온전히 재활용하기 힘든 존재다. 대부분 플라스틱이지만 부품 중에 쇠·고무 등 혼합 소재가 많아 대개 태우거나 묻는다.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이유다. 전 세계에서 연간 약 800만톤에 달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이 중 장난감이 약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난감 전문 사회적 기업 ‘코끼리공장’은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봉사 단체로 시작해 지금까지 장난감 약 10톤을 기부했고, 울산·부산 등지에서 장난감 수리 교육 ‘아빠 장난감 수리단’도 진행 중이다.

2021년부터는 사업 범위를 폐장난감 파쇄·원료화로 확장했다. 700평 규모의 울산 공장에서 고장 난 장난감을 해체해 교구재 등의 새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2020년에는 현대자동차그룹·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그린무브공작소’ 설립에 참여했다. 수리·소독한 장난감을 복지시설에 보내거나 업사이클링으로 판매한 수익금을 기부한다. 지난해에는 망가진 장난감을 모아 대형 앵무새·물개·거북이 등을 형상화한 ‘정크 아트’(Junk art) 전시를 열었고, 아프리카 탄자니아 어린이들에게 장난감 2300개를 전달했다. 이채진(39) 대표는 “올해 인도네시아·쿠바 어린이들에게도 예쁜 장난감을 건넬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난감이 얼마간 세상에 미소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