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전문가 백종원, 국민 엄마 김혜자, MZ 대표 주현영. 이들이 이름을 걸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터는 텔레비전도 유튜브도 아니다. 치솟은 외식 물가에 지갑 사정 팍팍해진 이들이 몰려드는 곳, 편의점 도시락 냉장고다.

올해 1~3월 CU·GS25·세븐일레븐의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각각 37.2%, 40.9%, 40.0% 올랐다. 믿고 먹는 맛집(백종원), 정성 집밥(김혜자), 건강 트렌드(주현영)를 내세운 3파전이 치열해지면서 맛과 구성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7년째 편의점 신제품 후기를 올리는 구독자 63만 유튜버 ‘맛상무’ 김영길(49)씨는 “재료의 신선도가 지금만큼 좋지 않던 과거에는 자극적인 양념으로 맛을 냈지만 최근에는 염도·당도가 웬만한 식당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고, 영양 성분이 정확하게 표기되기 때문에 섭취량을 조절해서 먹기에도 좋다”고 했다. 때우기용이 아닌 어엿한 한끼 식사로 진화한 편의점 도시락. CU·GS25·세븐일레븐에서 올 1분기 가장 많이 팔린 9종을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으로 먹어봤다.

◇가격·맛·양 삼박자 갖췄다

첫입부터 편견이 깨진다. 씹을수록 단맛이 올라오는 흰쌀밥이 꽤나 차지다. 올 들어 CU에서 가장 많이 팔린 ‘백종원 완전 한판 정식’(4500원)은 11가지 반찬이 조금씩 들어 있는 정찬 형태 도시락이다. 계란말이나 동그랑땡, 닭강정, 크로켓 등 전형적인 가공육 반찬들은 평범했지만, 마늘쫑맛살볶음과 유채나물무침 등 제철 나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백종원 제육 한판’(4500원)은 간장·고추장 돼지 불고기와 볶음 김치, 감자볶음, 두부 부침 등이 들었다. 돼지고기 앞다리살로 만든 고기가 퍽퍽하지 않고 진한 양념 맛이 입에 붙는다. 밥을 싸 먹을 수 있는 슬라이스 햄까지, 고기가 먹고 싶은 날 고민 없이 집으면 된다.

지난 3월 출시된 ‘백종원 바싹불고기 한판’(4500원)에는 손바닥만 한 언양식불고기가 턱 올라가 있다. 돼지고기 함량이 81.2%. 누구나 좋아할 만한 달착지근한 간장 양념에 은은한 불향이 느껴졌다. 불고기 밑에는 양념 안 된 생양배추·양파채가 깔려 있는데 전자레인지로 데운 뒤에도 아삭함이 살아있었다. “이게 얼마라고?” 뜯은 겉포장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돌아온 혜자 도시락

‘혜자스럽다(가격 대비 푸짐하다)’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김혜자 도시락은 2017년 단종됐다가 지난 2월 6년 만에 도시락 대전에 재참전했다. 올 2~3월 GS25 도시락 매출은 특히 인근 사무실이 많은 매장(90.7%)과 학원가 매장(78.4%)에서 더 크게 올랐다고 한다. CU의 백종원 도시락이 ‘백반 맛집’에 못지않은 맛과 구성을 뽐낸다면 GS25의 김혜자 도시락은 엄마의 정성을 담은 ‘집밥’을 내세웠다. 모든 메뉴에 구수한 흑미밥에 노른자가 촉촉한 반숙 달걀 프라이가 올라가 있다.

‘혜자로운 집밥 너비아니닭강정’(4900원)은 닭강정이 퍽퍽하지 않고 남녀노소 좋아할 달착지근한 칠리소스가 버무려져 있다. 어묵볶음과 새콤한 볶음 김치, 시금치나물 등 밑반찬도 빠지는 것 없이 맛의 균형이 좋았다. 이 도시락은 나트륨 함량이 1031㎎으로 9종 가운데 가장 적었다.

‘혜자로운 집밥 제육볶음’(4500원)도 자극적이지 않은 제육볶음에 별첨된 참기름으로 풍미를 살렸다. 부반찬인 떡갈비는 은은한 불향에 쫄깃하게 씹는 맛이 있었다. ‘혜자로운 집밥 오징어불고기’(5000원)는 주 반찬이 오징어 볶음과 간장 불고기 두 종이다. 오징어가 질깃했지만 매콤한 양념과 달걀 프라이, 볶음 김치를 비벼 먹었더니 물리지 않고 밥을 싹 비웠다.

◇제육볶음 질린다면, 반값 비빔밥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친구 ‘동그라미’답게 주현영은 25×20㎝의 네모진 도시락 용기를 동그랗게 바꿔버렸다. 돼지고기 위주의 한식 정찬 도시락이 물린다면, 산나물이 들어간 세븐일레븐 대표 도시락 비빔밥은 어떨까. ‘주현영 전주식비빔밥’(4500원)은 햅쌀밥에 달걀지단, 당근, 콩나물, 취나물, 표고버섯, 도라지, 애호박, 소고기 등 8가지 고명이 올라가 있다. 별첨 참기름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 넣고, 특제 고추장은 절반 정도 넣은 뒤 입맛에 따라 더하는 게 좋다.

‘주현영 바싹불고기비빔밥’(4500원)은 전주식보다 소불고기가 두 배 많고 콩나물·취나물 대신 무나물과 아삭아삭한 로메인 상추가 들어있다. 고추장이 아닌 달콤한 간장 소스로 색다른 맛을 냈다. 재료가 밥보다 많은 푸짐한 양푼 비빔밥이나 돌솥 비빔밥만큼은 아니지만 짜거나 느끼하지 않아 ‘건강한 맛’이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 정보 서비스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지역 평균 비빔밥 가격은 1만192원.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을 생각하면 합격점을 줄 만하다.

11찬 도시락(5900원)은 함박스테이크와 생선 가스, 제육볶음, 감자볶음, 어묵소시지볶음, 두부조림 등 반찬 가짓수가 11개로 최다인 세븐일레븐의 스테디셀러다. 양파 피클과 김치, 참나물, 깻잎절임 등 차갑게 먹는 밑반찬을 따로 빼놓고 나머지만 전자레인지로 데워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 가장 비싸긴 했지만, 마치 한식 뷔페에서 푸짐하게 떠 온 한 접시 같았다. 전자레인지에 데웠더니 생선 가스에 발려 있는 타르타르소스까지 따뜻해지는 점은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