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쫓아야 해요. 어째서 저게 오빠란 말이에요? 만일 정말 오빠라면, 사람이 저런 벌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스스로 집을 나가버렸겠죠.”

프란츠 카프카가 1915년 발표한 소설 ‘변신’. 주인공 그레고르는 어느 날 아침 거대한 벌레로 변한 채 잠에서 깨어난다. 가족 중 유일하게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였지만, 벌레가 되자 그레고르는 곧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여동생은 그를 내쫓자고 말하고,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아 생긴 상처는 악화된다. ‘벌레’ 그레고르는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일러스트=김영석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소외를 다룬 이 소설이 등장한 지 약 100년. 요즘 한국 10~20대 청년들 사이에선 자신을 거대 벌레 그레고르로 자처하는 이른바 ‘바퀴벌레 챌린지’가 유행하고 있다. 놀이는 간단하다. 엄마, 아빠에게 “내가 만약 갑자기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묻고, 엄마·아빠에게서 돌아온 답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공유하는 것.

‘요즘 엄마·아빠’들의 반응은 어떨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라!”는 고지식한 반응도 있지만, 황당함을 느끼면서도 정성껏 대답한다. “예쁘게 키워주마.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는데, 바퀴벌레라고 안 예쁠까?” “나는 엄마 바퀴벌레가 될거야. 같이 바퀴벌레로 살자. 네가 무엇으로 태어나든 내 영혼을 다해 사랑하거든.” “(집을) 어둡게 하고 신문지 깔아주고 먹을 것도 줄게. 아빠가 귀여운 바퀴로 키울게. 걱정 마.” 바퀴벌레가 돼도 변함없이 사랑해줄 거라는 부모의 답을 본 청년들은 “너무 감동적”이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금 쑥스러운지 짓궂은 농담을 섞는 부모도 있다. “잘 키워줄게. 그런데 지금도 바퀴벌레잖아.” “지금도 모습만 인간이지. 네 방이 바퀴벌레 소굴과 차이가 없어도 너를 사랑하는데.” “네가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보면 안 잡겠지. 그런데 안 그러면 너인지 모르니까 때려잡지 않을까? 주머니 하나 만들어서 애견처럼 데리고 다닐 거야.”

자식으로선 섭섭할 법한 쌀쌀한 답변이 오기도 한다. “때려잡아야지. 그럼 키울까?ㅋㅋ” “나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는데 어쩌지.” “바퀴벌레면 죽여야지. 바퀴벌레는 나쁜 벌레!” 짧지만 굵은, 섬뜩한 답변도 있다. “화형!”

바퀴벌레가 된 자녀를 재테크에 활용하려는, 자본주의적 농담(?)도 보인다. “에버랜드 보내서 퍼레이드 시켜야겠다.” “네가 바퀴벌레면 800마리가 집에 더 숨어 있다는 소리니까, 아르바이트를 굴려야지. 1마리당 20만원만 벌어와도 1600만원? 아니다. 1억6000만원이구나!”

지금 ‘바퀴벌레 챌린지’의 유행은 한국 청년들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목표로 한 대학 진학과 취업이 잘되지 않고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하는 불안한 처지에서, 부모에게 다시금 조건 없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갈망이 투영됐다는 것이다.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철학 전문위원은 “과거와 달리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가 권위적이지 않고 좀 더 수평적이고 친밀해지면서 이런 놀이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험난한 사회 경쟁에서 바퀴벌레가 가진 끈질긴 생존력을 갈망하는 동시에, 바퀴벌레처럼 부모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자식으로서 미안한 마음도 보인다”고 했다.

바퀴벌레 챌린지는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 사이에선 ‘팬들이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방식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부모가 아니라서 그럴까. 팬들의 질문에 스타들은 더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 특히 스타 손흥민의 몰입 실패(?)는 더 화제가 됐다. “그런데 바퀴벌레로 안 변하잖아요. 사람이 바퀴벌레로 변할 수가 있나? 제가 너무 현실형 스타일이라. 바퀴벌레로 안 변하니까, 지금 모습대로 사랑해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