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은 달궈진 두 철판 사이에 밀가루 반죽을 올리고 눌러 굽는 일종의 즉석 빵이다. 음식의 기원을 찾기란 김치찌개에 참치 통조림을 누가 처음 넣었는지를 밝히는 것처럼 어렵고 때로는 의미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와플이 언급된 문헌과 기록을 찾다 보면 프랑스와 벨기에 두 나라가 원조 격인 듯싶다. 특히 벨기에는 지금의 와플을 완성형으로 만든 나라다.
대학 때 매점에서 사 먹던 즉석 와플은 벨기에보다는 미국에서 먹는 쪽에 가까웠다. 미국식 와플은 벨기에 것보다 얇고 조직이 성기며 아이스크림, 잼 등 토핑이 올라갔다. 마치 카페에서 팔던 파르페처럼 조금 촌스럽지만 정감 있는 그 예전 모습을 확인하려면 숙대 입구에 있는 ‘와플 하우스’에 가야 한다.
1989년 문을 열었다는 이곳은 숙대 정문까지 쭉 둘러 있는 좁은 일방통행로 1층에 있었다. 도로변으로 통창을 낸 이 집은 위치가 위치이니 만큼 손님들, 심지어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도 모두 여자였다. 바쁘게 주문을 받는 젊은 여자의 말투는 똑 부러져서 두 페이지 가득한 메뉴들을 아무리 많이 시켜도 주문이 잘못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빙수 하나에 와플 몇 개를 시켜 나눠 먹고 있었다.
뭘 시켜야 할지 모를 때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종업원에게 물어본다. 대부분 답을 알고 있다. 주변을 둘러본다. 모두가 먹고 있는 메뉴가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메뉴 제일 위에 있는 것부터 시킨다. 이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 메뉴 오답 확률은 10% 이하로 떨어진다.
클래식이란 부제가 붙은 버터&잼 와플은 왜 메뉴판 맨 위에 적혀 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는 맛이었다. 갓 구워 바삭한 와플을 한입 베어 물면 버터의 고소한 향이 비강 전체를 그윽하게 채웠고 시차를 두고 달콤한 잼이 혀를 간지럽혔다. 둘째 순위로 올라와 있는 시나몬&허니 와플은 처음 마셨던 카푸치노의 기억처럼 향긋하고 나른한 도취감을 안겨줬다. 아이스크림과 딸기가 한껏 들어간 딸기 빙수는 한입 먹는 순간 대학 때 먹던 빙수 생각이 났다. 시럽에 절인 딸기는 본래 가진 향이 더 진해졌고 아이스크림은 얼음과 어우러져 차갑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맛을 냈다.
여러 와플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버전을 꼽자면 리에주 와플을 들 수 있다. 버터와 우유를 거의 밀가루 중량에 가깝게 넣어 반죽한 리에주 와플은 그 덕분에 프랑스식 페이스트리처럼 고소하고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더불어 무엇보다 리에주 와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재료 중 하나인 ‘진주설탕(Pearl Sugar)’이다. 별사탕같이 큼지막한 이 설탕은 와플이 익을 때 겉으로 녹아 나와 얇고 바삭한 캐러멜 층을 만든다. 미리 만들어 놓으면 팔기는 편하지만 버터의 풍미가 떨어지고 캐러멜도 녹거나 눅눅해진다. 즉석에서 구울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만들어 먹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이래서 만들기는 비교적 쉽지만 제대로 팔기는 까다롭다.
2007년 처음 문을 연 ‘와플잇업’은 리에주 와플을 그때그때 구워주는 곳 중 하나다. 신촌 기차역 근처 뒷골목, 잘못 보면 건물과 건물 틈이라고 생각할 만한 좁은 길가에 ‘와플잇업’이 있었다. 가게 지붕 밑으로 작게 테라스 좌석도 놓아 이곳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유럽의 노천 카페에 온 것 같기도 했다. 벽돌과 원목으로 마무리한 가게 내부는 낮은 조도의 조명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그 조명 아래 널찍하게 놓인 테이블에 앉은 여학생들은 모두 편안한 얼굴과 복장으로 수다를 떨거나 과제를 했다. 말끔하게 셔츠 유니폼을 차려입은 종업원은 손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노트에 필기하듯 신중하게 들었다. 5분 남짓 지난 후 나온 와플은 여느 와플보다 조금 묵직했다. 한입 베어 무니 살얼음을 씹은 것처럼 표면이 섬세하게 바삭거렸다. 굳이 다른 소스를 바르지 않더라도 달콤한 맛이 산뜻하게 입안에 퍼졌다. 그 뒤로는 버터의 풍성한 향이 커다란 곰인형처럼 푸근하게 다가왔다. 메이플 시럽을 뿌리니 코팅된 캐러멜의 맛이 더욱 강해졌다.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젤라토 아이스크림은 쫀득한 식감에 각 재료의 맛이 정확했다. 가게가 생기고 16년이란 시간 동안 이 와플을 먹으며 대학 생활을 한 이들이 꽤 많으리란 상상을 했다. 그들이 대학 생활을 되돌아볼 때 이 와플을 먹던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으리란 것은 확신에 가까웠다. 그 기억을 위해 이 집은 아직도 반죽을 그때그때 구워낸다. 편의가 아닌 의무다. 이유를 따지지 않는 원칙이다. 이유는 하나다. 본래 그래야 하는 음식이니까.
#와플하우스: 버터&잼 와플 3500원, 허니&시나몬 와플 4000원, 딸기 빙수 1만500원.
#와플잇업: 와플 2개 1세트 2600원, 젤라토 1스쿱 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