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야! 너 알았어? 골프장 여자 회원권이 더 비싼 거?”
50대 여성 A씨는 친구 3명과 함께 골프장 회원권을 사려다 분통이 터졌다. 인터넷에 올라온 회원권 가격을 보다 남녀 회원권 가격이 다르다는 걸 알게 돼서다. A씨는 “지금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며 “1억5000만원까지 차이가 나더라. 이게 말이 되냐”고 했다. A씨는 화가 나서 일부 골프장에 항의 겸 문의 전화를 돌렸다. 골프장들은 “개인 간 거래라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회원권 거래 업체는 더 황당했다. “회원님이 여자로 태어난 걸 어떻게 해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담이었다. A씨는 빈정이 상해서 회원권 매입을 그만뒀다.
골퍼들도 “처음 듣는 얘기”
골프장은 회원제와 퍼블릭으로 나뉜다. 회원제 골프장은 회원권을 산 회원들을 우대하는 멤버십으로 운영된다. 명문 골프장은 개인 회원권 가격이 수억원대로 책정돼 있다. 돈이 있어도 못 사는 회원권이 있을 만큼 매매 과정이 까다로운 골프장도 더러 있다. 회원권은 개인 간 거래가 많은데, 이 거래를 중개해주는 업체도 골프 산업이 호황을 이루면서 굉장히 늘어났다. 그래서 회원권도 집값처럼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런데 회원권에 남녀 차별이 있다는 사실. 수십 년간 골프를 쳐온 일반인 골퍼들도 “처음 듣는 말”이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9일 중개업체인 ‘마스터회원권’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세를 보면, 일부 수도권 골프장 회원권은 남자와 여자에게 따로 판매하고 있다. 그 가격도 많게는 2억원 이상이 차이가 났다. 같은 혜택을 받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돈을 더 줘야 회원권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서울CC는 남자 5억500만원, 여자 6억7000만원이었다. 남서울CC는 남자 2억6800만원, 여자 4억7000만원. 뉴코리아CC는 남자 1억9500만원, 여자 2억9500만원. 태광CC는 남자 1억6000만원, 여자 2억6000만원. 다른 업체에선 여자 회원권을 3억1000만원으로 팔기도 했다. 한양CC는 남자 2억6600만원, 여자 3억7000만원. 김포CC는 남자 1억2300만원, 여자 1억6000만원.
비교적 저렴한 천만원대 골프장 회원권도 마찬가지였다. 안성CC는 남자 6200만원, 여자 6900만원이었고, 은화삼CC는 주중권으로 남자 3900만원, 여자 4800만원이었다. 100만원이라도 더 내야 여자는 회원권을 살 수 있다. 지방에서도 남녀 차이가 존재한다. 부산의 동래베네스트는 남자 1억6500만원, 여자 2억6000만원. 창원CC도 남자는 1억4000만원, 여자는 2억1000만원이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 개장한 회원제 골프장들은 남녀 차별이 없다”며 “오래된 골프장들은 남녀 회원권을 구분해 거래해온 전통(?) 같은 게 있다”고 했다.
여자가 돈 안써서라고?
과거 회원제 골프장은 여자 회원권을 극소수만 분양했다. 그리고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만 매매할 수 있게 내부 규정을 만들었다. 1980년대, 90년대 초 개장한 골프장 일부가 이런 방식으로 회원권을 판매했다. 한 골프장 관계자는 “당시에는 여성 골퍼가 많지도 않았고 여성이 골프를 치는 것에 관대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여성 골퍼가 늘자 여자 회원권은 귀해지고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었다. 어느 골프장은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핑계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에 만든 남녀 구분 규정을 없애고 통합하면 될 일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여자 회원은 돈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규정을 바꾸는 일도 번거롭다”고 했다. 골프장은 클럽하우스 매출이 수익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식사, 주류 등을 일반 음식점보다 비싸게 받는다. 그래도 잘 팔린다. 이 관계자는 “여자 회원은 간식을 싸오고 클럽하우스에서 지갑을 잘 안 여니까 골프장은 여자보다 남자 회원을 더 선호하는 것”이라며 “여성 골퍼의 슬로(Slow) 플레이도 걱정 아니겠냐”고 했다. 오래된 골프장은 여성 라커 수가 남성의 10분의 1 수준인 곳도 있어서, 여성 회원을 더 받으면 리모델링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한다.
필드서도 ‘우먼 파워’ 커졌는데
골프 업계에서 남녀 차별은 오래된 일이다. 골프(Golf)라는 단어가 ‘신사만의 게임이니까 여자는 금지(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라는 뜻에서 나왔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골프 종주국인 영국, 미국, 일본의 영향도 받았다. 이들 국가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골프장이 여성 입회를 막았다. 라운딩은 할 수 있지만, 클럽하우스 출입이 안 되는 ‘황당한’ 곳도 있었다. 스코틀랜드 뮤어필드CC에선 ‘개와 여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골프장도 수년 전부터 차별의 벽을 스스로 허물고 있다. 일본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가스미가세키 골프장은 2020 도쿄 올림픽 경기장으로 선정되고도 여성 정회원을 받지 않아 논란이 됐다. 공휴일에는 여성 라운딩도 금지했다. 전통을 이유로 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그럼 경기장을 변경하겠다”고 일침을 날리자 결국 여성에게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2~3년 전까지 여자를 회원으로 받지 않던 골프장이 있었다. 개인 회원 자격을 ‘만 35살 이상의 내·외국인 남자’로 한정했다. 진정이 쇄도했다. 골프장 측은 “여성은 가족회원으로 등록하면 된다”며 “권익 침해 정도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작년 6월 평등권 침해, 차별이라고 결론짓고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최근 몇 년 새 여성 파워는 필드에서 영토를 확장 중이다. 그만큼 골프에 ‘진심’인 여성이 늘고 있다. 통계로도 입증된다. 지난 1월 발표한 대한골프협회 조사에서 신규 골프 활동 인구는 남성 65.2%, 여성 34.8%다. 골프를 할 의향이 있는 ‘잠재 골프 인구’도 남성은 58.4%, 여성은 55.8%다. 남녀 간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여성은 ‘큰손’다운 소비력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가 작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골프웨어를 구매할 때 회당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계층은 ‘30대 여성’이었다. 구매 빈도도 가장 높았다.
골프 관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현배씨는 “골프장들이 시대가 변한 줄을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며 혀를 찼다. “골프 영업을 하다 보면 아무리 성공한 회장님들도 ‘회장님 위에 회장님’이 계십니다. 결정의 순간에는 반드시 ‘그분’에게 허락을 받죠. 바로 ‘사모님’들입니다. 골프장들도 이걸 알아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