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 때리기 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멍에 임하고 있다.

타닥타닥 툭툭. 눈앞에서 벌겋게 장작불이 타고 있었다. 불티가 날렸지만 얼굴이 뜨겁지는 않았다. 장작들은 부동자세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캠핑장은 아니고 2년 전 어느 영화관. 스크린 속에서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관객은 나 혼자였다. 감독은 영화를 거저 먹을 작정이었는지 카메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중간에 들어와도 앞뒤 장면이 100% 예측 가능했다.

그 영화 제목은 ‘불멍’. 코로나 사태로 신작 개봉이 뜸해진 시대의 발명품이랄까. 생존의 몸부림에 가까운 콘텐츠였지만 그날 불멍을 하며 마음이 평온해졌다. 타닥타닥 툭툭. 장작들(약 30개)에 주어진 대사는 그뿐이었다. 타닥타닥이 티딕티딕으로, 툭툭이 틱툭으로 들리기도 했다. 내가 장작불이 되고 장작불이 내가 되는 무아지경에 빠지면서 멍하게, 머릿속을 청소했다.

오는 21일 잠수교에서는 ‘한강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린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가치 있다’고 외치는 행사로 이번이 6회째다. 참가자들은 90분 동안 집단적으로 멍을 때린다. 한국인은 이 또한 경쟁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김연아에게 특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가 있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멍을 때리는지 15분마다 심박수를 측정하고, 구경꾼들도 현장 투표로 멍의 고수를 가린다.

주말이 좋은 이유는 마치 전원이 꺼진 OFF 상태로 빈둥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시간 낭비는 아니다. 거꾸로 말하면 평소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일이다. 불멍, 물멍, 반가사유상멍 등 멍은 다양하며 집중을 요구하지 않는다. 집중과 비집중은 기능이 다르다. 집중이 길 앞을 똑바로 비추는 좁은 광선이라면, 비집중은 멀고 넓은 곳까지 비춰 주변을 볼 수 있게 하는 광선이다.

3800명이 지원한 지난해 멍 때리기 대회 우승자의 소감은 불도장만큼 뜨거웠다. 10년째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팬이라는 30대 김모씨. “한화 경기를 멍하게 본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멍을 때렸어요.” 나는 30년 넘게 이글스 팬이다. 너무 일관성 있게 바닥을 기는 팀을 응원하다니, 멍 때리기 대회 우승 후보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출전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게 또 멍을 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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