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납니다. 더 이상 당과 당원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코인(가상 화폐) 의혹으로 평생 받을 스포트라이트를 한 주 동안 받은 김남국 의원이 결국 탈당을 선택했다. 이 탈당이 어이없는 건, 민주당이 자체 조사단을 꾸려 코인 의혹을 밝히는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사태 초기 수수방관만 하던 민주당은 연일 계속되는 김남국의 황당 해명으로 인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 5월 11일에야 당 차원의 조사단을 꾸렸다. 진상조사단 김병기 팀장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까지 의문이 제기된 것들을 조사하겠다. 코인 계좌 거래 내역을 살펴보면 의문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본다. 신속하게 진행하겠다.” 기사를 보면, 조사단이 아무 일도 안 한 건 아니다. 김남국이 신규 코인을 투자자에게 무상으로 주는 ‘에어 드롭’을 받았고, 코인 지갑이 최소 4개이며, 총 보유액이 당초 알려진 60억원을 훨씬 넘는다는 것 등을 밝혀내 최고위에 보고한 것이다. 민주당이 김남국더러 갖고 있는 코인을 모두 매각하라고 권고한 것도 조사 결과가 심각하다는 위기 의식 때문일 터. 김남국도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앞으로 진상조사단에 투명하게 자료를 공개하고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 당으로부터 가상 화폐 매각 권고를 받았다. 당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
하지만 조사단의 중간보고가 예정된 5월 14일, 김남국이 전격 탈당했으니, 국민은 물론이고 민주당에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김남국 혼자 뒤집어쓰는 건 억울할 수 있겠다. “조국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던 순진한 청년이 불과 3년 만에 닳고 닳은 정치인으로 변한 데는 주변 사람들의 탓도 있어서다.
물론 코인을 한 것 자체는 남 탓이 불가능하다. 한 달에 100만 원 버는 게 목표였다는 변호사 시절에도 김남국은 코인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로 60억 원대의 코인을 소유한 게 탄로 나자 그가 내놓은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불법적인 투자는 일절 없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의원이, 코인을 해서 재산을 불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은 없는 걸까. 2019년 법무장관에 지명된 조국을 쏙 빼닮았다. 그에 관해 갖가지 의혹이 터져 나오던 그 시절, 조국은 이를 걱정하던 모 인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법 아닌 건 하나도 없다.” 이 말조차 훗날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공정과 정의의 화신을 자처하던 이가 자녀 교육과 재산 형성 과정에서 온갖 편법을 동원한 것만으로도 그는 미안해 했어야 했다. 하지만 조국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아내와 자신 모두 유죄 판결을 받은 지금도 자신이 억울하다며 버티는 중이다. 이런 조국을 우상으로 섬긴 김남국이 “부당한 정치 공세에 끝까지 맞서 진실을 밝히고 소명하겠습니다”라며 결사 항전을 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이 밖에도 오늘의 김남국을 만든 이는 한둘이 아닌데, 몇 명만 예를 들어본다.
이재명 대표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가 “무능과 실패를 숨기기 위한 현 정권의 야당탄압이고 정치보복”이라고 했다. 김남국은 자신의 코인 의혹이 “윤석열 라인의 ‘한동훈 검찰’ 작품이라 생각된다”고 주장하더니, 한 유튜브에 나와서는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실정들을 전부 다 이 이슈로 덮어버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이재명 수행실장을 하던 세월이 아깝지 않다.
송영길 전 대표는 돈 봉투 의혹이 불거지자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탈당하겠다고 선언하더니, 검찰이 부르지도 않았는데 중앙지검에 나가 입장문을 발표했다. “주변 사람 대신 저 송영길을 구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압수수색할 때 자리에 없어서 휴대폰을 제출하지 못한 것을 기자들이 따지자 그는 “압수수색 다음 날 제출했다”고 해명했는데, 알고 보니 그 휴대폰은 귀국 후 새로 개통한 것이었고, 그나마도 통화 내역과 문자 등을 모두 초기화한 깡통폰이었다. 큰소리만 치더니 정작 검찰에 협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 이건 김남국도 마찬가지였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꾸려달라고 민주당에 요구하더니, 막상 조사단이 꾸려진 뒤엔 “코인 거래를 한 거래소, 전자지갑, 코인 종목, 코인 수입 및 거래 현황 등등 조사단이 요구한 핵심 자료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 뒤 바로 탈당해 버린 걸 보면, 순서만 바뀌었을 뿐 송영길과 판박이다.
조국의 딸 조민은 입시 비리로 인해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TBS에서 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갔다. 김어준의 배려 속에서 조민은 ‘자신이 봉사활동을 해서 표창장을 받았다’ ‘고졸 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시험은 다시 치면 되고, 서른에 의사가 못 되면 마흔에 되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그 뒤 조민은 고졸이 된 지금도 집요한 소송으로 여전히 의사 면허를 유지함으로써 자기 말을 배반한다. 김남국 역시 여론이 불리해지자 김어준의 유튜브에 나와 ‘국회 상임위 중 거래한 액수는 몇 천원 수준’ ‘미공개 정보를 얻을 생각도 기회도 없었다’ 등의 변명을 했다. 당시 방송 출연으로 조민이 조국수호대의 지지를 얻은 것처럼, 김어준의 세례를 받은 김남국에게도 개딸들의 지지와 후원금이 답지하고 있으니, 조민은 김남국의 스승인 셈이다.
다시 조국 얘기를 하자. 조국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무렵, 조국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10억원대 사모펀드는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익법인에 모두 기부한다. 신속히 법과 정관에 따른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 조국의 모친이 이사장으로 있는 웅동학원도 모친이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학원에 관한 모든 권한을 공익재단에 넘긴다고 했다. 물론 이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심지어 조국 모친은 2022년 10월, 이사장직에 연임되기까지 한다. 김남국은 어떨까. 당으로부터 받은 코인 매각 권고를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했지만, 탈당하면서 이는 없던 게 됐다. 거래 내역 제출에 대해선 “시스템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지만, 거래소 측은 “본인만 동의하면 모든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하는 걸 보면 이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정리하자. 조국, 이재명, 송영길, 조민 등은 오늘의 김남국을 만든 선배들이다. 2016년 조국은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한다’는 SNS 글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를 못하는 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잘못 배운 탓이라는 취지. 이 말을 조금 응용해 본다. “김남국,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