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오래갈 줄 누가 알았을까.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그 괴질’ 말이다. 해외 토픽 단신으로 끝날 줄 알았던 괴질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와 유럽을 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한 폐렴’이라던 그 바이러스는 ‘코로나19′로 불리게 됐다.

지난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1월 30일 국제공중보건위기상황을 선포한 지 약 3년 4개월 만. 이 기간 세계에서 약 6억9000만명이 확진됐고 약 69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선 3100만 건의 양성 판정이 나왔고 3만4000여 명이 사망했다.

국내에서 코로나가 처음 대유행했던 대구 동성로 한 상가 정문에 ‘코로나가 안정화되면 문을 다시 열겠다’는 안내문이 여전히 붙어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확산된 백신 공포... 다음 팬데믹은 어쩌나

코로나가 앗아간 건 소중한 인명만이 아니다. 3년 넘게 이어진 코로나는 한국 사회에도 큰 상흔을 남겼다. 방역 전문가들은 “전 정권의 포퓰리즘 방역으로 인해 방역에 대한 불신과 백신에 대한 공포가 확산했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권과 지지층은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방역 정책을 성공이라고 자평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벌써 “다음 팬데믹이 걱정”이라는 말이 나온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과학적이지 않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장기간 이어지고, 이로 인한 피해를 제대로 보상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방역과 거리 두기에 대한 불신이 크게 퍼졌다”며 “다음 팬데믹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거리 두기를 시행하면 과연 자발적인 협조와 참여가 이뤄질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불완전한 코로나 백신 도입·접종 정책은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축인 백신에 대한 광범위한 공포와 불신이 커지는 시발점이 됐다. 마상혁 전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코로나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고, 강한 이상반응이 확인됐을 때 이를 제대로 알리고 부작용에 대한 대비를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탓에 백신에 대한 국민적 불안과 불신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백신 부작용에 대한 폭넓은 인정과 보상이 이뤄졌어야 했는데, 윤석열 정권의 대선 공약임에도 여전히 보상이 지지부진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팬데믹이 찾아오면 백신이 조기 개발·도입되더라도 접종을 꺼리는 현상이 나타날까 우려된다”고 했다.

◇영유아 절반이 언어·정서 발달 지연

외국과 달리 장기간 마스크 착용 의무화 정책이 이어지면서 영유아들은 언어와 정서, 사회성 발달이 지연되고 청소년들은 마스크 벗기를 거부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말 서울시가 25개 어린이집에 다니는 5세 이하 영유아 456명을 조사한 결과 약 33%가 언어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15%는 지속적 관찰이 필요한 것으로 진단됐다. 영유아의 절반 가까이가 발달에 문제가 있는 셈이다.

장기간 원격 수업 여파로 초등학교에서는 등교를 거부하는 부적응 문제, 중·고교에선 마스크 벗기를 거부하는 사회성 지연과 계층에 따른 학력 격차가 더 커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단순히 감염 우려가 아니라 얼굴을 드러내기 싫어 마스크를 쓰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고, 장기간 원격 수업으로 인해 공교육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학력 수준이 떨어지면서 학력 격차가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화이트칼라 신난 동안, 양극화 더 심해졌다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국세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들에 따르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소득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하위 40%의 3.9배로 코로나 직전(3.6배)보다 증가했다. 소득 상위 0.1%의 소득 점유율은 코로나 전 4.2%에서 4.8%로 늘어난 반면 중산층의 소득 점유율은 코로나 전 53.1%에서 52.4%로 감소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은 “대기업 중심의 고소득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이 재택 근무와 워라밸을 누리고 자산 시장의 호황 속에서 재테크를 즐긴 반면, 대면 노동과 서비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자영업자와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페업과 실업, 매출 감소 등의 피해를 보면서 노동시장 양극화가 극심해졌다”고 말했다.

엔데믹(Endemic·풍토병)이 된 코로나가 앞으로도 계속 60세 이상 고령층의 생명을 위협할 것이라는 점도 여전히 무서운 부분. 최재욱 교수는 “코로나와 공존하려면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1년에 1~2번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데, 백신에 대한 불신이 커져 난항을 겪을 전망”이라고 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